2008년 10월 20일 오늘의 책
황석영 | 문학동네 | 2003.12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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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심청.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 사람 저 사람 동네 아낙들의 동냥젖을 먹고 자란 청이, 열다섯 나이에 중국 상인에게 팔려가 황해 바다 인당수에 뛰어든 그 ‘심청’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 ‘심청’이 새로 태어났다. 그저 심성 고운 효녀 심청이 아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이고, 또 세상과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여자로! 그...
여성의 역사는 '억눌림'과 '빼앗김'의 역사다. 노동력은 물론, 性과 계급, 역할과 전망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근대에도 그러하였으며 현대에서도 역시 다르지 않다. 심지어는 그 '수탈'당하는 사실조차도 부정당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착취는 세계에 있어 엄연한 '환경'으로 존재하고 있다.
'착취'는 아래로 갈수록 더 증폭된다.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일을 한다. 가장 힘든 일을 하고, 가장 더러운 일을 맡는다. 이 구조는 2008년 지금까지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 수탈의 방법과 단계가 더 세련되어졌을 뿐, 착취의 시스템은 가장 약한 곳에서 가장 많은 수탈을 짐지운다. 서양보다는 동양, 남성보다는 여성, 화이트컬러보다는 블루컬러에 착취는 집중적으로 강한 타격을 가한다. 그래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장 힘없는 나라의 여성들은 性과 노동력, 아이와 장기까지 모두 내주고서도 병과 폭행으로 불행하게 죽는다.
남성의 목소리로 세상살이의 불합리와 강팍함을 이야기해 온 황석영이, 옛날 이야기를 되짚어 위와 같은 여성의 역사를 노래했다. '장애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목숨을 던진' 유명한 설화에서 강압된 '충효'의 커튼을 걷어내고 시대와 착취의 구조 속에서 심청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여성들이 어떻게 착취받다 죽었는가를 그렸다. 힘과 권력으로 채색된 남성신화가 밑바탕에 감추고 있던 '매춘의 오디세이아'를 밝혔다. 그것은 당연히 눈물과 고통과 한과 고락의 그늘이었다.
이야기는 연대순을 따른다. 봉건왕조에 의해 수탈당하던 동방의 조선, 천민계급의 여자아이가 계모의 착취로 중국 배에 팔린다. 왕래를 위해 바다에 제물로 바친다는 명목 뒤로는 이미 고착화된 성상품화의 단계가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부자의 첩으로 팔려 '주인'이 죽을때까지 노리개로 삼아지다가 '구조'에 눈을 떤 렌화(심청의 새 이름, 그녀는 팔릴 때마다 이름을 새로 부여받는다. 그녀는 매번 새롭게 상품이 되기 때문)는 힘있는 남자의 첩을 자처하고, 국난과 서양의 동방 공격 속에서 기녀로 팔리며 동양의 온갖 곳을 전전한다. 그녀가 빚없이, 성착취없이 먹고 살 수 있을 때에서도 그녀의 삶은 여전히 착취의 중간단계에서 끊임없이 남편과 동료와 전망을 잃는다. 한국과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와 일본, 다시 한국을 잇는 지난한 여정 속에서 심청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고 평안하게 죽는다. 물론, 세계의 여성에 대한 수탈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일단 굉장히 빠르게 읽었다. 당시 세계사와 낯선 이방의 풍경이 정밀하게 그려졌으면서도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어 부담없이 읽혔다. 성착취를 근간으로 쓴 탓에 성묘사는 과도한 측면이 있었으나 눈감아줄만 했다. 무엇보다 이 설화를 이렇게까지 재편할 수 있구나 하는 데 이르러서는 읽는 내내 머리끝이 쭈볏거렸다. 더구나 남성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데 일가를 이룬 이 작가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역사를 말할 수 있었던 데에 대해서는 경탄을 표하고 싶다.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에 대한 비중이 높아진다거나 마무리가 다소 어정쩡한 건 아닌가에 대한 지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겠다. 그러나 그 시대 수탈의 구조를 명확하게 짚어내면서 무리없이 묘파하는 필력이나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성 화자들의 생생함은 이전에 우리 문학에서 보기 드문 것들이었다. 거친 방법이긴 하지만 이 소설에 점수를 주라면 A 이상을 매기고 싶다.
서사의 작가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 문학의 21세기, 그가 지금 모습 그대로 한국 문단에 오래 뿌리박아주길 바란다. '길이 사라져버린 곳에서 여행은 시작' 된다는 루카치의 혜언을 그가 짊어지고 가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꼭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 꾸준히 세계와 시간을 소통해주는 이야기꾼으로서의 황석영이 자랑스럽다. 그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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