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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2015년 10월 2일 오늘의 책

네메시스

필립 로스 | 문학동네 | 2015.05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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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현대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 절필을 선언한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 “죽은 자들의 무덤에까지 가닿는, 문학과 인생에 대한 마스터클래스.” _가디언 모두가 입을 모아 “이제 노벨문학상만 받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필립 로스는 작가에게 허락된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한 작가다. 1959년 『굿바이, 콜럼버스』로 데뷔해 50여 년간 서른한 권의 작품을 발표했고,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펜/포크너 상, 펜/나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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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


2015년이 4개월여나 남은 상황에서 조금 이르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 대한민국의 이모저모를 되짚어본다면, 단연 ‘메르스’가 다른 이슈를 압도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이야 완전 종식으로 가닥이 잡힌 듯하지만, 메르스로 이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당시 나는 TV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는 시골에 박혀 생활하느라 세상 소식에는 까막눈이었는데, 안부 차 전화를 걸어온 친구가 “서울은 지금 메르스 때문에 난리야.”라고 했을 때도 “메, 뭐?”라고 되물어봤을 정도였다. 그러다 TV도 있고 인터넷도 되는 세상으로 나오고 보니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왠지 우리나라와는 연이 멀 것 같은 이 낯선 이름의 질병이 초래한 불안과 공포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연일 메르스 관련 통계를 전해주고 대처법을 알려주고 안일한 정부 대응과 허술한 병원 관리를 까대는 매체들 속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메르스 사태와 연관 지은 소개보다 저자 이름에 더 눈길이 갔다. 그리고 나는 다른 어떤 매체의 이야기보다 이 거장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1944년 여름, 호흡기 근육 마비로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폴리오’라는 유행병이 미국 뉴어크를 엎친다. 매년 여름철이면 발병하는 병이긴 해도 이 해 발병 건수는 유독 심상치 않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 약이나 백신도 없는 데다 전염성까지 강한 이 병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는 우리나라의 메르스 사태와 확실히 닮았다. 그런데 무언가 내 생각과 다르다. 소설 『네메시스』는 유행병으로 혼란에 빠진 사회를 일부분으로 그릴 뿐이다. 그 대신 ‘느긋하고, 친절하고, 공정하고, 사려 깊고, 안정적이고, 상냥하고, 정력적이고, 늠름하고, 확신에 찬 젊은 남자’(276쪽)-버키 캔터가 유행병과 전쟁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망가지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 캔터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는지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교묘하게도 소설 말미에 캔터와 비슷한 아픔을 겪었지만 캔터와 달리 그 아픔을 이겨낸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캔터와 비교해 그 인물의 삶은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다. 나는 그 인물이 우리네와 같은 보통 사람의 대변인이란 생각을 했는데, 놀이터 아이들과 여자친구에게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사람이 ‘우연’으로 일어난 일에 죄의식을 느끼고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누군가 그 인물과 같은 말을 캔터에게 건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끝끝내 그 인물처럼 살 수는 없을 캔터가 답답하고 안쓰러우면서도 작가가 견고하게 쌓아 만든 캔터의 생은 그런 그를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다. 한 사람이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종국에는 자신에게 천벌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인생을 보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타인버그 가족이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존중하고 싶었고, 거기에는 비록 그 자신은 할아버지-그에게는 종교가 의무가 아니라 의무가 종교였다-와 마찬가지로 별 관심 없이 따르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들과 공유한다고 할 수 있는 종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진심으로 존중하는 일은, 제멋대로인 코퍼먼 아이들을 포함해 폴리오를 앓고 있는 모든 아이들 때문에 분노가 끓어오른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이탈리아인이나 집파리나 우편물이나 우유나 돈이나 악취가 나는 시코커스나 무자비한 더위나 호러스가 아니라, 도무지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두려움과 혼란 때문에 유행병을 설명하기 위해 내어놓은 그 모든 원인이 아니라, 심지어 폴리오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원천, 그 창조자-바이러스를 만든 신이었다. (130쪽)

그때 갑자기 허비와 앨런, 뉴어크에서 여름을 보내는 바람에 죽은 아이들이 떠올랐고, 그 아이들은 인디언 힐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꽃처럼 피어나는 같은 또래의 실라, 필리스와 비교하게 되었다. 그가 이 원기 왕성한 아이들과 함께 여름 캠프의 이 시끄러운 유원지 같은 곳에서 안락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프랑스 어딘가에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제이크와 데이브도 있었다.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은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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