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9일 오늘의 책
밀란쿤데라 | 까치 | 2009.06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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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민음사, 1999) 뒤를 보면 이런 말이 써있다. “사람들은 나이 삼십에 늙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멋진 일이다. 삼십 이전에는 고통과 격정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고통과 격정에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을 수도 없다. 죽는다는 것은 마지막 헌신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에게는 이 말이 소설 쓰기에 관한 기묘한 주술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나이 삼십 이전에는 소설을 쓰지 말라!”고 하는 계명처럼. 두 말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데, 어째서 나는 루이제 린저의 말을 저렇게 받아들인 것일까? 나는 지금도 내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계명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생은 다른 곳에』의 원래 제목은 ‘서정시대’였다고 한다. 서정시대란 곧 젊음이다. 그렇다면 젊음이란 무엇인가?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집 『커튼』에서 그는 젊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젊은 시절은 서정적 시기라고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해서 한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이행은 서정적 태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소설가는 자신의 서정 세계의 폐허 위에서 태어난다.” 쿤데라는 플로베르의 예를 끝으로 젊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집필할 무렵 그는 서른 살이었다. “자신의 서정성의 번데기를 찢고 딱 나올 그 시기”다.
『생은 다른 곳에』는 서정시대를 지나는 한 시인의 이야기다. 야로밀은 시를 쓰기에 시인이지만, 젊기에 시인이기도 하다. 시인은 유아기를 지나고 어머니의 세계를 떠나 진짜 세상으로 나간다. 날것의 세상은 너무도 위험하고 잔인해서 그에겐 시라는 방패가 있어야 세상에 맞설 수 있다. 그는 시로 세상을 이해하고 시로써 타인을 만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시는 세상에 맞서는 방패가 아니라 나의 연장에 불과했음을. 그는 세상과 맞선 게 아니라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것뿐이다. 그는 시에게, 자신에게 배신당한다. 죽음 직전에 이르러 그는 물속에 비친 누군가의 환영을 본다. 두려움에 질린 자신의 얼굴이었다.
이 소설은 계속 자라지만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주인공의 성장 소설로 볼 수도 있겠다. 그는 끝내 알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지 못했다.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상(李箱)을 떠올렸다. 이상은 도시를 견디지 못했다. 서울도, 동경도 모두 권태로웠다. 그는 결국 태어난 지 스물일곱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서울이나 동경이 권태로웠던 것이 아니라 이상 자신이 권태 안에 있었다고. 권태는 그의 등 뒤에 붙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는 이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림자는 주인을 질식시켜 버렸다. 이상은 젊음 때문에 죽었다.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전적으로 나에게만 집중하고, 주변 세상을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며,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고 있을까? 쉽게 부인할 수 없는 것을 보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젊음을 부러워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젊음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랐다. 서른은 지나야 소설을 제대로 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기를, 단지 비유적으로만 젊어질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의 속도가 흘러갈까? 나는 주어진 젊음을 살아가고, 살아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의 젊음은 언젠가 폐허가 될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위에서 과거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젊은 내가 원했던 삶의 다른 곳에 서서, 젊은 내가 있었던 삶의 다른 곳을.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밀란 쿤데라 | 『불멸』
청춘이나 젊음에 관한 얘기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밀란 쿤데라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생은 다른 곳에』가 언급된다.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갓 스무 살이 됐을 무렵,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웠을 적에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
이상 | 『이상 전집』
여러 출판사의 판본이 있지만 가람기획의 판본을 가지고 있다. 이상의 모습에서 야로밀이 떠오른다. 시인이라는 것도 그렇고, 요절했다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이상과 공통점이 많다.
평생 읽고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 작가지망생입니다. 되도록 적게 글을 쓰고 많이 책을 읽으려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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