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8일 오늘의 책
리처드 세넷 | 김영사 | 2020.01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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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인간에게 무엇이고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가 공간 속을 움직이고 장소에 거주하며, 삶을 짓고 세계를 건설하려 분투하는 인간을 위한 도시사회학 《장인》 《투게더》에 이은 호모 파베르 3부작 완결편 노동과 도시화 연구의 세계적 석학 리처드 세넷의 도시 독법. 이 책에서 그는 고대 아테네에서 21세기 상하이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도시에 대해 사유하고 제안한다. 파리, 바르셀로나, 뉴욕이 어떻게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제인 제...
‘장인’, ‘투게더’로 유명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는 도시에 대한 책이다. 정확히는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인 ‘짓기’와 ‘거주하기’는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두 개의 척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짓기’는 도시를 만드는 것을 말하며 ‘거주하기’는 형성된 도시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걸 뜻한다. 리처드 세넷은 그걸 프랑스어인 ‘빌(ville)’과 ‘시테(cite)’로 명명한다.
『짓기와 거주하기』는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가 처음으로 형성된 19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빌’과 ‘시테’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추적한다. 최초에 세 가지 실험이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의 파리였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으며 마지막으로 미국의 뉴욕이었다. 파리는 오스만 남작이, 바르셀로나는 세르다가 그리고 뉴욕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도시 전체를 계획했는데 이 셋은 모두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파리는 나폴레옹 3세의 집권 하에 다시 왕정으로 복고하고 있던 시기라 프랑스 대혁명 같은 일이 재발했을 때 보다 손쉽게 그것을 진압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되었다.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좁은 골목들이 모두 가로 폭이 넓은 대로로 바뀌었는데 그건 오직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만들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로 주변에 모두 상류층이 사는 저택들이 들어서게 한 것도 시민들이 쉽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파리는 철저하게 ‘빌’에게만 초점이 맞춰신 도시였다. 시민들의 삶은 고려되지 않았으며 프랑스가 부여한 질서와 관리만이 통용되는 도시였다. 세르다의 바르셀로나는 파리와 정반대였다. 세르다는 ‘빌’ 보다 ‘시테’를 더 중시했고 전체적인 계획보다는 블록을 하나씩 추가해 나가는 것으로 도시를 계획했고 그 블록엔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가 한데 모여 살도록 했다. 파리는 사회 계급에 따라 아래층과 위층으로 엄격하게 분리했지만 바르셀로나는 겉으론 그가 어느 사회 계급에 속하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하는 것에 힘썼다. 지금도 바르셀로나에 가면 볼 수 있는, 내부에 공동 마당이 있는 정사각형의 아파트 블록은 세르다의 작품이다.
옴스테드의 뉴욕은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는 ‘시테’를 위해 ‘빌’을 무시하지 않았다. 시민들을 노동의 공간에서 여가의 공간으로 이끌어 인종적 화합을 이루는 것으로 오히려 ‘빌’을 통하여 ‘시테’를 더 증진시키려 했다. 현재 뉴욕을 대표하는 장소인 ‘센트럴 파크’는 그런 옴스테드의 비전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리처드 세넷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도시란 ‘빌’과 ‘시테’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도시인들에게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곳이다. 하지만 20세기의 도시들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시테’와 ‘빌’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도시 내부에 자신들과 다른 부류는 일단 배척부터 하는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가 많이 형성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도시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같은 단지 내에 있는 임대아파트에 출입문을 달리하는 것으로 격리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같은 건물에 있는 임대아파트 사람들까지 아예 층으로 구분하여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위층으로 절대 올라오지 못하게 했던 일도 있지 않았던가.
세넷은 무엇보다 도시가 빗장 공동체가 되어가는 걸 가장 우려한다. 왜냐하면 자아는 자신과 다른 타자를 통한 단절을 이해함으로써, 특히 현존과 부재, 지금과 그때라는 두 차원에서 살아감으로써 강해지는데 이러한 빗장 공동체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만 만나고 친숙한 경험만 양산하여 그러한 단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의 대표적인 예로 구글 플렉스와 우리나라의 송도를 거론한다. 안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 바깥을 전혀 나갈 필요가 없는 구글 플렉스와 도시의 모든 것을 모니터링하며 중앙 집중화된 송도는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지 않는, 송도를 직접 찾아가 연구한 연구원의 말마따나 한 마디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스마트 시티’라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시드 토크빌은 이러한 빗장 공동체로 가득한 도시가 가져올 삶에 대해 이렇게 예언한 바 있다.
‘동료 시민들과의 관계에서 그들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그들을 보지는 않는다. 건드리기는 하지만 느끼지는 않는다. 그는 혼자서,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그의 머릿속에 가족 의식은 있을지 몰라도 사회의식은 더 이상 없다.’
빗장 공동체가 양산되고 있는 오늘날의 도시에서 성별, 인종, 계급, 세대를 이유로 각종의 차별과 혐오가 늘어가고 있는 건 보노라면 토크빌의 예언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미국은 흑인의 인종차별로 인해 시위의 불길이 뜨겁다. 오랜 시간 해묵은 인종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런 도시의 특성과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기에 리처드 세넷은 우리의 도시가 좀 더 타자들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또한 시간 속에서 생겨나고 축적될 수밖에 없는 ‘빌’과 ‘시테’ 사이의 비틀림에 대해서도 사유하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리처드 세넷은 ‘투게더’에서 도시란 원래 다양한 이방인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그 타자성의 융합 덕분에 성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세넷이 추구하는 도시는 그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의미의 명료함보다는 의미의 풍부함을 중시하는 도시’로 말이다.
늘 도시에서 살아가면서도 도시 속의 삶에 대해 막연하기만 했던 내게 ‘짓기와 거주하기’는 그걸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도시와 건물을 사례로 들어 직접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지를 설명하기에 더욱 수월하게 읽혔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 숙고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기꺼이 권해주고 싶다. 세넷에 따르면 이 책은 ‘장인’과 ‘투게더’에 이어 ‘사회 속에서 호모 파베르가 있는 위치를 탐구하는 3부작’의 마지막 권이라고 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책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분명 의미의 풍부함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단절을 가득 가져다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카모스'님은?
모호하고 혼돈 투성이인 세상을 책을 통해 이해해보려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