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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자서전

2016년 4월 18일 오늘의 책

빨강의 자서전

앤카슨 | 한겨레출판 | 2016.01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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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놀라운 책이다. 몇 년간 이렇게까지 나를 흔들어놓은 글은 없었다.” _앨리스 먼로 “매혹적인 성취… 앤 카슨은 과감하고 지적이며 감정을 동요시키는 작가이다.” _수전 손택 ‘실연의 철학자?’, ‘캐나다의 천재 시인’ 앤 카슨의 대표작 2종이 국내 초역으로 소개된다. [뉴욕 타임스] ‘올해의 주목할 책’,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 앤 카슨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은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12과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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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연이 많아요


착한 놈이 있고 나쁜 놈이 있다. 착한 놈이 착한 놈인 이유는 나쁜 놈을 때려잡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대개 그렇고, 요즘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도 그렇다. 좋은 예로 어벤저스를 필두로 하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이 있다. 착한 놈, 나쁜 놈의 구도는 그대로 어린 꼬마들의 놀이로 이어진다. 꼬마들 모두 손에 정의의 칼을 쥐고 있어도 한 명쯤은 나쁜 놈이 되어야 놀이가 가능하다. 좀처럼 나쁜 놈 역할을 맡으려는 아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되려 하지 않는다. 착한 놈들은 저마다 멋진 이름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반면 나쁜 놈에게는 없다. 나쁜 놈들이 갖춰야 할 능력은 오직 빠른 스피드로 삼십육계 줄행랑에 능해야 한다. 나쁜 놈이 되는 순간 착한 놈들 여럿이 동시에 공격을 가해 올 게 분명하다. 그들의 무력에 맞서 칼을 휘둘러봤자, 나쁜 놈이 그러는 게 어딨냐는 착한 놈들의 민원만 들어올 뿐이다. 나쁜 놈의 이야기는 들어주는 이도 없고, 그 분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영웅담은 대개 착한 놈의 이야기다. 한 명의 위대한 영웅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쁜 놈들이 찔리고, 베이고, 쓰러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표적인 영웅 헤라클레스가 '불멸자가 되기 위한 12가지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죽인 필멸자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면서 수많은 형태의 리메이크가 있었다. 늘 주인공은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에게 희생된 괴물의 입장을 다룬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다보니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앤 카슨이 쓴 소설 『빨강의 자서전』이 시선을 끌었다. 이 책에서만큼은 헤라클레스가 중심이 아니다. 등장하기는 하지만 영웅의 모습이 아니며, 주인공은 신화 속 'One of them'이었던 괴물 게리온이다.

신화에서 게리온은 몸과 머리가 전부 세 개씩 달린 거인으로, 붉게 물든 섬 '에리테이아'에서 붉은 소떼를 기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소떼를 훔치러 온 헤라클레스에게 화살을 맞고 죽는다. 『빨강의 자서전』의 게리온은 사뭇 다르다. 배경은 현대의 캐나다이며 게리온은 붉은 깃의 날개를 가진 소년이다. 동성애 성향을 지니고 있고, 남들과 좀처럼 잘 어울리지 못한다. 홀로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묘사되는 모습만 보면 괴물보다는 천사 쪽에 더 가깝다. 새롭게 각색된 게리온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기에, 그는 자신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간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곧 괴물이라 여긴다. 소년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영웅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12가지 과제를 수행했다면, 『빨강의 자서전』의 게리온은 날개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성장통을 겪는다. 이야기는 자그마한 노트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노트는 게리온이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부터 쓴 자서전이다.

"그날은 그가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게리온은 이 작품에 내적인 모든 것들을 특히 자신의 영웅적 자질과 공동체에 큰 절망을 안겨줄 이른 죽음에 대해 썼다. 외적인 것들은 멋지게 생략했다." (40쪽)

나 또한 나머지 줄거리들은 멋지게 생략하기로 한다. 문장에 숨어있는 수많은 메타포들에 대한 해설 역시 마찬가지다. 후일담이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펼쳐보길 권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게리온의 빨강은 어딘지 아련한 색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One of them'이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The only one'인 존재다.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다면, 당신은 그 존재를 '영웅'이라 칭할 것인가? 아니면 '괴물'이라 칭할 것인가? 부디 단순한 이분법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길 바란다. 먼저 내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 펜벗 인터뷰

1. ‘착한 놈이 있고 나쁜 놈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서평을 시작하셨죠. ‘착하다’와 ‘나쁘다’는 무슨 기준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악은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가 가장 중요하죠. 머리 속에서 먼저 판단하고, 이후부터는 마음이 머리를 대신합니다. 그래서 선악에 대해서는 처음에 내린 판단을 뒤집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2. 헤라클레스의 영웅적 면모를 돋보이게 하고자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한 괴물들처럼, 악당은 영웅을 돋보이게 하는 존재죠. ‘빛’의 존재를 위한 ‘어둠’의 희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이라기보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역할 설정이죠. 때로는 ‘어둠’의 존재를 위한 ‘빛’의 희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 설정은 말하는 이의 의도이기에, 듣는 이는 늘 신중하게 판단해야합니다.

3. ‘녹색양말’님의 색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스스로가 시멘트 색에 가깝습니다. 앞으로는 녹색, 그것도 아주 진한 녹색이고 싶습니다. 오래 보아도 편안한 느낌의 그런 색 말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녹색양말'님은?
자질구레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가 봅니다.



| [녹색양말 님의 테마북 – 영웅들]

| 펜벗 큐레이션 Vol.11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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