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8일 오늘의 책
정희진 | 교양인 | 2020.02
분류 : 인문/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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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만난 나는 운이 좋았다.” 정희진은 비평, 칼럼, 논문 등을 통해 ‘남성 언어’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통념과 상식을 뒤흔드는 논쟁적인 글을 쉬지 않고 써 온 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의 어려움에 관한 저자의 솔직한 고민을 만날 수 있다. 머릿속 생각이 손에 이르러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고통스러운 과정, 처음 쓴 글의 망신스러움 등 글쓰기의 어려움에 관해 털어놓는 저자의 고백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
정희진은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몸이 슬픔에 ‘잠긴다’, 기쁨에 ‘넘친다’, 감동에 ‘넋을 잃는다’…… 텍스트를 통과하기 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라고 썼다. 그때부터 나는 작가의 독서에 대해 많은 관심, 아니 엄밀히 말하면 열혈팬이라고 할 정도로 일부러 찾아다니며 따라 읽곤 했다. 정희진의 책에 대해 말한다면, 최소한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어떤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를 읽은 건 필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반갑게도 정희진은 ‘정희진의 글쓰기’라는 시리즈를 쓰겠다고 밝히며 그 첫 번째로 이 책을 선보였다. 제목이 강렬하다. 나쁜 사람이란 무엇인가. 그래,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다. 약자를 짓밟는 존재, 죄의식 없이 뻔뻔한 그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도 그렇고 ‘정희진’도 그렇다. 그래서 정희진은 쓴다. 그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지지 않기 위해서다.
인문학 도서부터 김영하의 에세이 등에 대해 쓴 63편의 글을 담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를 읽다 보면 지지 않기 위해서 ‘쓴다’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간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희진은 말마따나 세월호 비극으로 아이들을 잃어도 뻔뻔한 소리만 하는 그들 앞에서, 장애인을 노골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하는 시선들 앞에서 ‘약자’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글쓰기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쓰기가 정녕 ‘겨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다. 정희진은 글은 흐릿하게 만드는 온갖 생각들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과 확신이 있다. 레닌에 대한 책과 정치적 올바름 논쟁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만 올바름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正)을 두고 정치가 숨을 막는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최대의 선이 아니라 최소의 잘못이다.”라고 쓰는 것에서는 후련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그것이 반갑다.
여성, 환경, 평화에 대한 논의와 관련 책을 이야기하면서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버림받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위로. 나는 그런 평화를 기원하고 믿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평화다.”라고 쓴 문장은 어떤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약자의 시선으로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약간이지만, 분명하게 생각이 바뀌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어떤가. 정희진의 글을 읽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읽기의 효능이다.
정희진이 읽은 책, 그리고 정희진이 그것에서 사유하며 쓴 이 글들은 단번에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진지하고 묵직하다. 그럼에도 손에서 쉽게 놓을 수 없다. 속이 꽉 찬,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 읽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이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이 책이 그랬다. 확신을 준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희진의 글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무슨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책이다. 이런 책이 있어,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리고 용기를 얻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iconmh'님은?
반디앤루니스 월간 서평 이벤트 “2월의 리뷰어”에서 ‘참 좋은 리뷰’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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