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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2015년 11월 18일 오늘의 책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 돌베개 | 2014.05

분류 : 역사/신화/문화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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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열광적인 호평과 그만큼의 격렬한 반박을 산 책 “여기 히틀러가 소파에 누워 있다. 그의 삶, 성과, 성공, 잘못된 생각들, 잘못된 행동들, 범죄, 배신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것이 잘 정리되고 빛나는 설명이 붙어 있다.“ 골로 만, 요아힘 페스트, 귀도 크노프 등이 격찬한,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히틀러 관련 책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1907~1999)가 사후 15년 만에 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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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도 결핍이 있다


히틀러는 실업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미술 아카데미 입학시험에도 떨어졌다. 스물다섯 살까지 변변한 직업도 없었다. 딱히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저 연금이나 받아먹으며 하루하루를 때웠다. 그러나 1919년, 서른 살 히틀러는 작은 극우파 정당에 가입한다. 그의 정치 경력이 비로소 시작한다. 이윽고 히틀러는 모든 세계사 교과서에서 언급되었다. 그는 56년을 살았다. 전반 30년과 후반 26년은 전혀 다른 삶이었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히틀러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기 보다, 히틀러가 중요한 국면에서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꽤 독특한 분석도 있다. 작가 하프너는 히틀러가 유능한 정치인이었다고 평한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경제 기적'이 일어난다. 히틀러가 제국 총리가 된 1933년 독일에는 600만 명의 실업자가 있었다. 불과 3년이 지난 1936년에는 완전고용이 이루어졌다. 대량 빈곤이 사라졌다. 소박하나마 편안한 복지도 실현되었다. 불황에서 경제적 번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도 없었다. 임금과 물가가 안정되었다. 덕분에 노동자 계층은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에서 히틀러에게로 돌아선다.

경제적 성과뿐만이 아니다. 히틀러가 총리가 되었을 때만 해도 현대적 무기나 공군이 없었다. 그저 10만 명의 군대뿐이었다. 그러나 1938년,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와 공군력을 보유한 국가였다. 전차군단도 창설되었다. 외교적 성과도 많았다.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베르사유 조약은 죽은 문서가 되었다. 1933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는 그렇게 시작했다. 독일 국민의 90% 이상이 총통의 열렬한 신자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고작 10년 만에 민족 전체를 자신의 지지자로 만들었다.

히틀러의 성과를 인정해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너는 나치에 찬성한다는 거냐?"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프너는 용감하게 히틀러의 성과를 성과대로 인정한다.

어쨌든 히틀러는 실패했다. 실패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하프너는 히틀러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강령주의자'였다고 평한다. 이른바 '히틀러주의'를 정리해보자면 대충 이렇다. 역사는 민족들이 싸우는 과정이다. 민족은 전쟁을 통해 생존 공간을 확보한다.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민족이 강자다. 강자는 약자를 박멸하거나 지배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민족은 이러한 전쟁을 통해 세계 지배를 지향한다. 1930년 11월 13일 자 히틀러의 연설이다. "모든 존재는 확장을 지향하고, 모든 민족은 세계지배를 지향한다."

그에게 정치는 전쟁이거나 전쟁을 위한 준비였다. 히틀러는 국가에 관심이 없었고, 국가를 하찮게 여겼다. 국가는 그저 전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독일은 국가의 속성을 모두 잃어버렸다. 헌법은 작동되지 않았다. 국가기관의 기능은 정지되었다. 그가 유대인을 마뜩잖게 여겼던 것은 당연했다. 유대인은 종족인지, 민족인지, 종교 공동체인지 불분명했다. 유대인은 국제적인 존재였다. 히틀러에게 '유대인'과 '국제적'이란 말은 거의 동의어였다. 생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각 민족은 치열한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유대인은 민족성을 희석하고 있었다.

여기서 히틀러의 두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는 유능한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잔혹한 살인마였다. 그는 독일의 세계 지배를 꿈꾸면서, 동시에 열등한 민족을 청소해버려야 한다고 믿었다.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날 무렵, 히틀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선택을 내린다. 가령 러시아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1941년 12월 6일 자 국방군 전쟁일지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41~1942년 겨울의 파국이 닥쳐왔을 때 이 최고 절정으로부터 이제 어떤 승리도 더는 쟁취할 수 없다는 사실이 총통에게 분명해졌다."그러나 5일 후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포고한다.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팠다. 아직 영국과 러시아를 이기지 못했고, 대치상태에 있었다. 여기에 더 강력한 미국까지 끌어들였다. 자살행위였다. 심지어 그 스스로 패배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프너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정치가 히틀러가 1941년 12월에 마침내 물러나면서 대량학살자 히틀러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독일군의 모스크바 진격이 저지당했을 무렵이었다. 히틀러는 기묘한 말을 남겼다. "이 시점에서도 나는 역시 얼음처럼 차가워요. 도이치 민족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피를 흘릴 만큼 충분히 강하고 또 희생의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민족은 스러져서 더욱 강한 다른 세력에게 파괴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도이치 민족을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오." (196쪽) 그는 도이치 민족의 세계 지배를 꿈꿨다.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진다면 도이치 민족은 파괴되어야 한다. 그러니 도이치 민족이 절멸되어도 그는 눈물 흘릴 생각이 없다.

그가 유대인에게 적용했던 적자생존의 논리는 이제 날을 돌려 도이치 민족을 향해 있었다. 마치 네로가 불타는 로마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처럼(사실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이제 그는 독일을 파괴하는 것에 노력을 쏟았다. 1944년 국민과 히틀러 사이는 틈이 벌어져 있었다. 대다수 국민은 히틀러가 바라는 전투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차라리 서방세력이 전쟁을 종지부 찍고 독일로 들어오길 바랐다. 히틀러는 그런 독일 국민 모두를 죽일 수 없었다. 그러니 아예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독일국민은 이제 미국군과 영국군의 구원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전쟁에 패배한다면 민족도 패배하는 것이다. 도이치 민족이 가장 원시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반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스스로 파괴하는 편이 낫다. 민족이 허약하다는 판정이 났고, 미래는 더욱 강한 동쪽 민족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 뒤에 남는 것은 어차피 열등한 자들이다. 우수한 자들은 전사했으니까." (249쪽)

이것이 하프너가 "정치가 히틀러가 물러나고 대량학살자 히틀러가 등장했다"고 말한 까닭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도이치 민족의 패배가 확실하게 되자, 히틀러는 이제 도이치 민족을 박멸하려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히틀러는 해충을 박멸하듯 특정 인종을 박멸한 사람이다. 정상적인 사람보다 자신의 신념에 훨씬 더 강박적인 사람일 수 있다. 하프너의 말대로, 그는 '강령주의자'다. 그렇다면 독일의 패배가 거의 확실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신념을 곧이곧대로 독일에 적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다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소한 잘못에 불과하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던 시절은 없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상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21세기에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쳐들어가지 않았나. 전쟁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기에, 지금 이 시각에도 모든 국가가 국방비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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