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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듣는 밤

2017년 1월 18일 오늘의 책

철학 듣는 밤

김준산, 김형섭 | 프리렉 | 2016.12

분류 : 인문/교양/철학

정가
$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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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가볍지만 공허하지 않은 수다로서의 철학, 철학으로서의 수다 이 책은 거창하게 철학을 토론하는 장이 아닌 소소한 수다의 장소예요. 수다. 쾌활한 수다가 다른 삶의 안내자가 될 수 있죠. 차분하게 가라앉는 깊은 밤에 우리 이야기를 벗 삼아 삶을 다시 설계하는 연필을 들게 하고 싶어요.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입맛이 쓰더라도 나를 예민하게 다듬을 수 있는 순간들을 기쁘게 잡아낸다면 철학을 시작하는 근육이 생길 수 있겠죠. 밀려 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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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투명하게 보는 시간


지금까지 읽은 철학 교양서들이 먹기 좋게 씹어서 주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친절하게도 이 요리를 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재료 손질법, 온도 조절 방법까지 일러준다. 철학을 하는 자생력을 길러주는 셈이다.

총 7명의 철학자를 다루고 있는데 300페이지에 달한다. 떠먹여 줄 테니 기대하라는 입문서보다는 깊고, 지금부터 ‘겁나’ 파볼 테니 잘 보라는 전문서보다는 얕다. 그럼에도 오히려 이 책들보다 읽는 데 오래 걸린 건 한 문장 한 문장의 밀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철알못’에게 다행인 건 이 책이 두 남자의 수다라는 것이다. ‘메뚝씨’가 밀도를 높여가면 ‘똥팔씨’가 숨돌릴 틈을 주는 식이다. 닉네임과도 같은 이 이름도, 어딘지 아날로그적인 표지도 1970~1980년대를 뜨겁게 살았던 세대를 노린 듯 했다.

돈도 없이 견뎌야 할 이 각박한 세상이 두려워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다시 엄마에게 돌아가고픈 심리가 현대인들을 지배한 것이죠. 그래서 현대인들의 지표가 돈 주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거예요. 돈 주는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하게 되었어요.
에리히 프롬 - 소유를 선택하고 존재를 포기하면서 당신은?


요즘 한창 방영중인 <워킹데드 시즌 7>에서 마침 이 문장에 들어맞는 새 인물이 등장했다. 아포칼립스가 온 세계에서 마을 하나를 다스리는 주제에 자칭 ‘왕’이라고 하는 이즈키엘이라는 인물이다. 마치 연극 속 맥베스처럼, 햄릿처럼 과장된 언행에 호랑이를 키우고 참담한 벽 밖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세상 물정 모르는 인물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이 왕의 실상은 동물원 사육사였으며 한때 극단에서 왕 역할을 한 적이 있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 ‘왕국’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 스스로 이즈키엘을 신성한 인물, 영웅적 인물로 입소문을 만들어 퍼뜨리고 그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을 구속하던 사회적 규범도 체면도 소용이 없어진, 오로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삶만 남아 있는 그 곳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개척하기보다 이즈키엘에게 의존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말마따나 ‘자유로부터의 도피’인 셈이다.

일상 생활 곳곳에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가 침투돼 있어요. 알튀세르는 학교와 가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해요. (...) 그래서 직업이 꿈인 세상에 우리가 사는 겁니다.
루이 알튀세르 - 가장 깊은 그림자 속에서 세상을 읽은 철학자


철학자 한 명당 3-4장으로 나뉘어있는데 첫 장은 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당대 사회 분위기와 그들의 가정사, 역사적 사건까지 폭넓은 부분에서 그들의 삶이 흘러간 방식에 당위성을 찾고 있다. 특히 이 부분이 가치가 있었던 게 니체, 프롬, 푸코 같은 철학에 크게 관심이 없어도 들어볼 법한 철학자들과 바타유, 바흐찐같은 생소한 철학자들을 동일한 선상에서 다루고 있다. 즉,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를 끌었던 건 한국에 거의 모든 저서가 차곡차곡 번역되어 있는 미셸 푸코를 다룰 때도 어느 책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는 푸코 스캔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철학을 시작하려면 뭣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입문’이라고 써져 있는 책이면 닥치는 대로 샀던 내게 가장 적합했던 부분은 ‘~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안내표였다.

개인적으로 다른 책에서 스쳐지나가듯 봤던 푸코라는 이름에는 별 매력을 못느끼고 『감시와 처벌』만, 그마저도 뭣도 모르고 벙벙하게 읽은 상태였는데 추잡한 푸코 스캔들에 어찌나 구미가 당기는지 두 남자가 추천하는 도서 중 하나인 『명품이 된 푸코』를 질렀다.

푸코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 <뉴욕 타임즈> 덕분이에요. 푸코를 전면으로 실어줬거든요. 미국이 푸코를 명품으로 만든 거예요.
미셸 푸코 - 정체성의 탐험가


이중 안타깝게도 절판된 도서도 있다. 물론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도 있지만, 괜히 욕심이 나서 중고 도서라도 구매하려 검색했더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있다. 결국 창을 닫았더니 메뚝씨가 나를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말을 한다.

몰빵을 해야 돼요. 여행 가서 주머니에 남은 돈 헤아리고 명품이나 차 살 때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해요. 뭐 어때, 그냥 하는 거야! 내가 번 돈이잖아! 다 써!
프리드리히 니체 - 도덕하고 앉아 있네

아무래도 니체라고 하면 거칠고 까탈스럽고 마구 밀어붙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나 두 남자가 이야기하는 니체는 유약함과 예민함 속에 강단있는 사람이었다.

한 철학자를 다루면서 이토록 많은 대화가 오고간 이유는 그의 삶과 저서를 이야기하고, 당대 사회적 분위기와 철학사를 비롯해 이웃집 철학자의 이야기는 물론 현대 사회까지 수다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이야기는 읽는 게 거북할 정도로 불편했다.

특히 바타유의 ‘금기의 벽’은 사람들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한탄하는 이유가 자신이 벽에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 있어서 벽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물러서도 벽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절망하는 이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던 내게 이 이야기는 다소 불편해서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바타유가 말하는 금기란 ‘성’과 관련이 깊었으므로 결말은 쾌활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금기라는 걸 인식조차 하지 못할 만큼 당연한 금기가 된 근친상간을 인식하는 방법은 ‘강력한 에로티즘’이라는 것이다. 쾌활한 결말이란 ‘야동은 큰 화면으로, 당당하게’라는 것이다.

위선이 가장 큰 폭력이 될 수 있어요.
조르주 바타유 - 에로티즘엔 죄가 없다


이 책이 완성된 요리를 떠먹여주는 게 아니라 요리하는 법을 일러주는 레시피인 이유는 지금껏 철학을 일종의 ‘교양’이라고 여겼던 내게 철학이 필요한 진짜 이유를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 부조리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불만, 근거를 알 수 없는 자만과 거기에서 비롯된 편견, 나도 모르게 쉬쉬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수단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가령 불편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작품을 부수는 행위, 내가 하면 정의고 니가 하면 차별이라는 식의 성차별, 인종차별 등 각종 차별 논쟁, 조롱과 웃음의 차이 등 온갖 논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해답을 찾을 수 있고 심리학은 현재 상태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철학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바흐찐의 카니발론에 따르면 주최자가 없는 축제야말로 혁명의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누구나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는 민주주의와도 깊게 연관이 되어 있는데 축제는 이보다 더 해이한 것이다. 주최자조차 없다. 객석과 무대가 동떨어진 소극장이 아니라 관객이 얼쑤! 좋다! 라고 맘껏 소리칠 수 있는 마당극이어야만 진정한 풍자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계급이 명확했던 조선 시대에서 말뚝이가 양반을 희롱하고도 머리와 몸뚱이가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다.

선거는 축제가 돼야 해요. 우리가 주인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니까요. 웃으면서 정치인을 씹고 꺼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기존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아주 좋은 찬스죠. 일상생활에서 웃음으로 승화할 요소를 찾고 민주주의의 변화를 카니발로 만들 수 있어야 우리가 우리 삶의 주권자가 될 수 있어요.
미하일 바흐찐 - 신의 육신을 갈아먹자. 그것이 축제다

조금 늘어지려고 하면 끊임없이 머리를 흔들고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고즈넉하게 철학 듣는 밤을 상상했던 내 밤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막연하게 겁내고 있었던 철학으로 가는 길에 대한 약도를 상세하게 그려 손에 쥐어주고는 가는 길에 관광할 곳도 알려준다. 찾았다, 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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