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5일 오늘의 책
공선옥 | 창비 | 2013.04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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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대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 공선옥의 신작 장편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가 출간되었다. 소외된 주변부의 삶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함께하며 이야기로 그들을 끌?어안았던 공선옥의 작가적 역량은 이번 작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역사에서 소외되고 세상의 광기에 희생된 그녀들은 공선옥의 소설에서 비로소 꽃피웠다. 이 작품을 주목하고 작가 공선옥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곯아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문학이 있...
사람은 다 산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라기보다는 과거다. 옛날이야기고, 다 지나간 일이다. 이런 이유로 산 사람들은 세상을 한 세상처럼 산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말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세상에 누가 와 말한다. 그해 봄이 어땠는지 알아요? 그때 죽은 그 사람 기억나요? 알고 싶지 않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언제 적 일인가? 다 옛날 사람이 아닌가? 산 사람들이 되묻는다. 그리고 저들끼리 모여 다시 근황을 말한다. 모두가 사이좋은 이곳에서 죽은 사람의 말, 혹은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산 사람의 말은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선옥은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262쪽)를 떠올렸을 것이다.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을 위하여.
사람들은 자네를 다 미쳤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 미쳤다고 하기로 치면 자네를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미친 것은 다 한가지지. 세상이 미친 거여.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나한테도 미치지 않은 세상이 있었을까. 딸한테 몹쓸 짓을 한 아버지는 미쳤지. 아버지가 미쳤다는 것을 모른 척한 엄마도 미쳤지. 식구들 다 미쳤지. 동네 사람들 다 미쳤지. 나도 미쳤지. 내 속의 이 큰 슬픔을 누구한테 말할까.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미친 거여.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그래 그런 거여. 정애 자네만이 미치지 않은 사람이여. 올바른 사람이여. 아름다운 사람이여. (198쪽)
한 아낙이 ‘정애’에게 하염없이 쏟아 놓는 말이다. 아니, 공선옥의 말이다. 그녀가 쓴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1970년대 시골마을에서 시작한다. 새마을운동과 가난이 뒤얽혀 공존했던 그곳에 ‘정애’와 ‘묘자’가 있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고 힘없는 이 소녀들은 그래서 친구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 속에서 무력함을 견딜 수 없으면 노래했다. 도둑맞듯 가족을 잃은 ‘정애’와 ‘묘자’는 살 길을 찾아 저마다 고향을 떠났다. 1980년의 광주로. 하지만 소녀들 앞에 난 살 길이란 변을 당해 미치거나, 변에 휩쓸려 미쳐버린 놈을 사랑하는 고된 삶이다. 이런 삶이 계속되는데도 “다들 묵고살라면 어쩔 것이냐, 안 존 것은 언능언능 잊어불어야제. 좋도 안헌 것 붙들고 있어봐야 밥이 나오겄냐, 뭣이 나오겄냐.”(117쪽)라고 말하는 산 사람들이다. 너무도 멀쩡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의 폭력에 ‘정애’와 ‘묘자’가 당할 때마다 나는 바랐다. 비난이건 욕설이건 제대로 된 말을 한 마디라도 씹어 갈기길, 어떤 분노라도 표출하길. 그러나 공선옥은 끝까지 소녀들의 노래만을 찬찬히 풀어 놓을 뿐이다. 왜였을까. 소설을 재차 들여다보다가 “나는 내 속에다 용을 한마리 키우기로 했다. 그 용이 자라서 승천할 때 나는 세상을 향해 말하리라. 내 말이 빗물을 타고 내려서 세상을 적시리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나 때문에 울 것이다. 나한테 미안해서 울 것이다. 나한테 잘해주지 못해서 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용이 되지 못하고 용이 아닌 내 말을 듣고 울어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말하지 않을 것이다.”(36쪽)라는 ‘정애’의 노래로 돌아온다. 산 사람들의 세상에서 죽은 사람에게, 그들을 기억하는 미친 사람에게 노래는 앞뒤가 요구되는 말보다 더 기댈만한 무엇일지도 모른다. 앞뒤 없는 슬픔을 전하는 통로이기에, “세상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물처럼 멀리멀리 퍼져나”(31쪽)가는 것이기에, 노래는 유일한 살 길일지도. 이윽고 세상을 울게 할 어느 날까지. 여기, 산 사람들의 세상에서 말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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