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4일 오늘의 책
강정, 허남준 | 문학동네 | 2012.02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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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몸에서 그 사람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 열네 편의 시, 강정의 몸을 빌려 사랑이라는 한생을 낳다! 우주의 작은 반점 콤마, 씨 시인 강정을 아는가. 1992년 『현대시세계』를 통해 데뷔한 것이 그의 나이 스물둘,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으니 올해로 마흔둘이 되기까지 그가 지금껏 펴낸 시집은 『처형극장』『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키스』『활』 등 도합 네 권. 시로 말하자면, 시 하나만 놓고 ...
"어느 날 불현듯, 여전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 하나, 아니, 일생의 모든 기억을 한몸에 짊어진 어떤 등덜미 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양 현재의 어느 귀퉁이에 덩그마니 고개 박고 앉아 있는 걸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263쪽) 대체로 그 등덜미는 어둡고 무겁고 괴롭다.
되짚어 본 적이 있다. 아무 작정 없이 이야기를 찾게 될 때, 그 까닭이 무엇인지. 간접 경험들이 내 몸으로 겪은 일처럼 기억되기는 어렵겠지만, 수많은 인물과 찰나들이 겹겹이 쌓이면 어떤 기억들을 지워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를 능동적으로 행동에 옮긴다면 콤마, 씨와 같은 에세이가 씌어질지도 모르겠다. 화자 콤마씨는 이 시에서 발생한다.
기담(奇談)
김경주
지도를 태운다
묻혀 있던 지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이 있다
그 잠을 이식한 화술은
내 무덤이 될까?
방에 앉아 이상한 줄을 토하는 인형(人形)을 본다
지상으로 흘러와
자신의 태몽으로 천천히 떠가는
인간에겐 자신의 태내로 기어들어가서야
다시 흘릴 수 있는 피가 있다
시인 강정은 묻혀 있던 지진을 "이를테면 스스로 꾸는 태몽 같은 것. 태내에서 이미 시작되어 자궁 내벽에 10개월 동안 새기다가 미완성으로 남은 어떤 내밀한 벽화 같은 것."(25쪽) 으로 읽고, 아이와 엄마의 물리적 연결이 끊긴 후에 그것이 모두, 어디로 흘러갔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자신의 분신이었으나 태내에서 사산되어버린 기억을 좇아 이 생 속의 또다른 생을 직조한다. 콤마씨Comma氏는 그렇게 탄생한다."(37쪽)
"세상의 모든 시는 시인의 몸을 떠나는 순간, 그 스스로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을 온몸으로 재개하는 숙명을 지녔다. 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몸에서 그 사람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39쪽)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시는 독자가 읽을 때 완성된다는 이야기가. 그러나 시는 소설보다 손대기가 어려워 읽기에 인색한 것이 늘 아쉬웠다. 콤마씨를 천천히 따라가면 섬려한 시인의 시심을 닮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에세이에서 쉼표와 같은, 공저자인 허남준의 사진이 꼭지마다 놓여있다. 재미있는 동작을 한 동상에는 "마비된 재치", 아스팔트 위에 새겨진 곡선에는 "정확하게 발음된 미소", 은회색의 거칠고 작은 돌바닥에는 "개봉된 부스러기"라는 제목을 달고.
콤마, 씨는 14편의 시로 "태내에서 그리다 만 꿈을 이 거대한 우주의 궁륭에 다시 그리"면서 행간을 읽어간다. 시인 강정을 모르더라도 시로부터 사랑이기까지, 오직 한 사람(그는 우리에게서 떠나간 누군가일 수도, 남은 우리일 수도 있다)을 위한 마음으로 씌어진 시인의 산문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바나니아'님은?
"어쩌자고 벽이 열려있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_진은영, 「어쩌자고」 중에서 얼마 더 있으면 요절도 물 건너간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요절이 안 될 바에야…… 열린 벽을 두고 문에 계속 부딪혀 본다. 문,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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