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오늘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 까치 | 2012.05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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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노벨 연구소가 선정한 세계 100대 문학작품 포르투갈의 대표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독특한 자서전 페르난두 페소아는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헤럴드 블룸이 파블로 네루다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을 정도로 유명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작가이다.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일기로 평가받는 이 책에서 페소아는 자신을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라는 이명(異名)으로 쓰고 있다. 페소아는 평생 70개가 넘는 이명들로 작품을 썼다. 그...
비밀이 하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고 있으니 비밀은 비밀이다. 물론 내가 알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현재로써는 나만의 비밀인 게 확실하다. 지금 내 말이 헛소리처럼 들린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가명이 아닌 생전에 70여개의 이명(異名)으로 활동하고, 70개의 이명 중 출간된 일기형식의 책을 소개하려면, “쉿, 비밀인데 이거 당신만 알고 있어.”라며 설레발부터 칠 수밖에 없다. 이어서 “글쎄 말이야! 《불안의 책》이라는 일기를 쓴 베르나르두 소아레스가 알고 봤더니 포르투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이래!”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또 무슨 X소리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한국에선 생소한 이름인 페르난두 페소아에 대해서 설명부터 해야 할 것 같다. 포루투칼 리스본에서 1888년에 태어난 페소아는,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헤럴드 블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은 천재시인이자, 생전의 그에 대해 외부에 알려진 게 거의 없는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위에서 말했듯, 생전에 70개의 이명으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다. 가명과 이명의 차이점은 자신을 대신하고 있는가와 없는가에 있다. 페소아는 이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전혀 다른 인물의 이력과 문체로, 본인의 존재를 이명으로 발표된 작품에서 철저히 분리했다. 회계사 베르나르두 소아레스가 쓴 일기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명으로 발표된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페소아 스스로, 감각의 날을 섬세하게 벼리는 베르나루드 소아레스가 실제의 자신과 많은 부분 비슷하다고 글의 시작에서 밝히고 있다는 거다. 이로 인해 《불안의 책》은 소설처럼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불안한 인간내면을 고백한 일기이면서 페소아의 자서전으로써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솔직히 나는 페소아를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페르난두 페소아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안토니오 타부키의 책들이 최근 출간되면서다. 타부키는 자신의 책 《꿈의 꿈》에서 페소아를 시인이자 위장꾼이라고 표현했다. ‘위장꾼’, 이 표현만큼 페소아를 잘 드러내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예술에서든 인생에서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가 하려고 생각했던 것의 불완전한 복사판일 뿐이다. 그저 외적인 완벽함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완벽함이 부족한 것이다. 부족한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규칙뿐만 아니라 우리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규칙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비어 있으며, 미래와 약속에 얽매인 천박한 사람들이다. (223쪽, 146번째 일기 중에서)
위장꾼의 이명이든 간에, 베르나루드 소아레스의 일기에서 한 인간의 삶에 관한 단상 또는 일상의 스토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일기부터 소아레스는 창밖의 세상과 자신이 속해있는 공간(집과 사무실)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이는 자신과 세상으로의 분리로까지 확대된다. 외부의 변화가 자신의 내면에 일으키는 속되게 말해, ‘잡생각’의 파동을 일기라는 형식으로 집요하게 좇는 서술은 무엇으로도 규정되고 설명될 수 없는 다면적인 인간의 흐릿한 윤곽뿐이다. 친절하게도 페소아는 책의 머리말에서 베르나루드 소아레스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다. 페소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윤곽이 평범한 그의 창백한 얼굴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서른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이 고통스러운 표정의 남자에게서 페소아의 관심을 끈 건, 고통의 얼굴을 있게 한 그 많은 (고통의) 원인들이 어디서 기인했으며 무엇인가이다. 이 의문에 일기를 읽고 나름의 답을 유추해낼 수 있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회계사 베르나루드 소아레스의 일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들이 거세되어 있다. 오로지 끝없이 내면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맞닥뜨리는 내면의 ‘나’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의하는 한 사내의 의식의 소리만 들린다. 정확히는 그 내면의 ‘나’가 생각하는 또 다른 ‘나’와 거기서부터 분리된 세상의 외면적 풍경에 대한 묘사만 더듬더듬 읽힌다. 이에 진중권은 “자기를 조각낸 사나이”이라며 페소아의 이명 작업과 정체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아니, 지극히 아름답다. “차가운 손이 내 목을 졸라 삶을 호흡할 수 없도록 한다.”(122쪽)같은, 삶의 허무를 증명하듯 써내려간 문장들을 읽으면 내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내면의 ‘나’로 향해간다. 정신없는 하루하루 속에서 느끼기는커녕 의식조차 못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살아있음’의 격렬한 파장으로 이어진다. 내면의 나를 향한 이 의식적 인식은 세상에 무관심한 회계사의 말마따나, 규칙과 공통점 없는 생각(상상)들로 나열된다. 이로 인해 ‘나’는 세상 무엇으로도 규정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이것은 정체성(주체)의 확립이라는 근대적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예기치 못한 경험이 된다. 곧바로 이 경험은 불안으로 변한다.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끝없이 인지하는 삶이야말로 불안, 그 자체일 것이다. 당연지사 회계사의 일기가 왜 ‘불안의 책’으로 명명됐는지도 알겠다. 페소아의 책은 우리에게 정체성의 허상을 까발리는 독서체험을 선사해준 대가로 우리의 불안도 요구하고 있다. 언뜻 부당해보이지만 사실 그의 요구는, 내면의 나를 봉인한 채 외면적인 세상 풍경에 조종당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베르나루드 소아레스의 일기를 읽음으로써, 우리 내면의 ‘나’가 드디어 봉인해제 당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다. 책에 봉인해제 방법이 숨겨져 있다는 건, 그의 일기를 알고 있는 나와 당신만의 비밀인걸로. 쉿!!
오늘의 책을 리뷰한 ‘취한미남’님은?
절망, 불운의 꼬리표를 달고 폭풍 같은 3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이 시기에, 나는 정말 우연히도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만약 책이 없었다면, 지난 3년의 시간을 나는 진정 불행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 있어 나는 견뎠고 조심스레 희망도 품었으며, 새로운 꿈도 갖게 됐다. 책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책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인생이 하루아침에 역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을 가까이 함으로써 인간은 生의 의지를 끈덕지게 붙들고 늘어진다. 못 믿겠다고? 지금의 내가 그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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