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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2014년 5월 13일 오늘의 책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 한겨레출판 | 2010.07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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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못된’소녀의 지독한 성장기! 1996년 한국문학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나가기 위해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이 올해로 제15회를 맞았다. 2회 김연의《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3회 한창훈의《홍합》, 4회 김곰치의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6회 박정애의 《물의 말》, 7회 심윤경의《나의 아름다운 정원》, 8회 박민규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9회 권리의《싸이코가 뜬다》, 10회 조두진의《도모유키》, 11회 조영아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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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잊혀도 소녀는 잊지 않기 위해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등장해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중국 삼국시대를 통일한 왕조는 엉뚱하게도 사마(司馬) 씨의 진(晉)이었다. 통상 서진(西晉)으로 불리는 이 나라는 내분과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망하고, 자신들이 멸망시킨 동오(東吳)의 수도 건업(建業)으로 도망쳐서야 겨우 사직을 보전한다. 동진(東晉)으로 부르는 이 나라에 환온(桓溫)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일대를 지배하던 성한(成漢)을 정벌하러 갈 때의 일이다. 환온의 부하 한 명이 새끼원숭이 한 마리를 애완용으로 잡아 데려가고 있었다. 그때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부짖으며 백릿길을 따라 걸었다고 한다. 결국, 어미 원숭이는 지쳐서 죽고 말았는데 배를 갈라보니 내장이 전부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는 것처럼 지극히 깊은 슬픔을 표현할 때 쓰는 단장(斷腸)이라는 말은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직 부모가 돼보지 못했기에 그 마음을 어찌 알까만,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배우는 바가 크다. 너무나 작아서 태아 사진으로도 보이지 않던 점 같던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걸음마와 옹알이를 시작하더니 어느새 미운 세 살을 지나 학교를 들어간다고 하는… …. 아이의 곁에서 시간을 쭉 같이 보낸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부모의 심정까지야 온전히 알 수는 없으나 수십 년 세월을 아끼고 사랑하여 키운 아이를 세월호 참사 같은 사고로 허망하게 잃었다면 그 애끓는 단장의 심정을 짐작해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의 완전한 우주라던데, 위기 속에서도 분명히 살릴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던 수백 명의 어린 우주 같은 아이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버려둔 것은 소위 정부의 관리고, 구조의 전문가들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파면 팔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추잡한 이해관계와 한 줌도 되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 대결이었다.

 

경각을 다투던 실종과 구조, 그리고 시신 인양 소식 뉴스가 넘쳐났다. 그중에서도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소식은 실종되거나 사망한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이 꼬깃꼬깃 챙겨준 용돈 2만 원을 부모님 선물 사려고 아껴뒀다가 채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시신으로 발견된 학생의 이야기, 실종된 아이를 남몰래 짝사랑했다는 어느 소녀의 편지, "학생들을 구하러 가야 하니 이만 끊자."는 통화가 마지막이었던 아내의 사연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세월호와 함께 떠나간 아이들에게는 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있었을까. 짧은 삶이었지만 분명 아이들에게도 살아오면서 쌓아놓은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게 됐다는 아픔에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다시 들었다.

 

이름조차도 모르는 '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이다. 철저히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보는 세상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어린 여자아이 '나'는 이름도 모른 채 '이년, 저년'으로 불렸고, 부모의 불화에 시달리다 결국 집을 나간다. 자신을 때리고 구타하는 아빠는 가짜고, 아빠의 폭력을 막아주지 않는 엄마는 새엄마일 거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소녀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다방집 아들 찬수와 놀다가 만난 친절한 '장미언니'는 애인에게 매일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를 만나러 다니는 이상한 인물이다. 백곰처럼 생긴 장미언니의 애인은 장미언니에게 생활을 의지하는 무능한 인물임에도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 하나로 자존심을 내세우는 허위의 인간이다. 소녀는 백곰에게 맞고 사는 장미언니가 자신의 엄마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소녀는 역전에서 만난 친절한 할머니에게 (엄밀히는 할머니가 들고 있던 명절음식) 이끌려 할머니의 국숫집으로 간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할머니와의 생활이 끝난 것은 할머니의 친자식과 손주들이 내려오면서였다. 할머니는 그나마 남은 핏줄이자 자신밖에 모르는 자식과 며느리, 손주들을 위해 작은 식당마저 내놓게 된다. 염치없는 아들 가족은 할머니의 마지막 하나 남은 것까지 요구한다. 할머니는 소녀가 떠날 때 눈물을 흘리며, 쌈짓돈을 찔러줌으로써 마지막 정을 나누었다.

 

소녀는 할머니와 헤어지고 다시 떠돌면서 각설이패와 어울리게 된다. 소녀의 귀여운 애교가 각설이패에도 도움이 되자 각설이패의 대장은 소녀를 일행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대장은 애인이자 동료인 '미남이 이모'와 자주 다투었다. 급기야 '미남이 이모'는 용이 삼촌과 돈을 갖고 도망을 가버린다. 더욱 좌절한 대장은 사람을 때려서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있는 돈마저 합의금으로 까먹는다. 떨어져 사는 딸을 위해 돈을 모으던 달수 삼촌도 좌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각설이패와도 헤어진 소녀는 가출청소년 유미와 나리를 만난다. 새엄마만 다섯 명에 그 중 셋은 돈을 갖고 도망간 비참한 가정에 살던 유미는 집을 나와 산 지 오래다. 나리 역시 비밀스러운 이유로 집을 나와 살고 있었는데, 불리한 상황에서도 남자아이들을 패줄 만큼 깡이 좋았다. 유미를 따라다니는 상호와 친해진 소녀는 상호를 따라 재개발 단지의 폐가에서 머문다. 그러나 결국 이들이 갈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못된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고 묘사했다. 나는 크게 공감할 수 없는 표현이다. 아주 어린 소녀가 성장하면서 바라보는 세상은 가치 중립적이다. 재개발 지역에 살다가 쫓겨나는 사람, 세상과 담을 쌓고 폐허에 숨어 사는 거지철학자, 소녀에게 도움을 주는 척 신앙을 강요하는 교회 사람들은 딱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저 불편하고 답답할 뿐. 현실의 민낯은 오직 순수해서 볼 수 있는 가혹한 몰골이다. 소녀의 눈에 세상은 폭력과 배신, 몰염치와 욕심, 성적인 욕망이 복잡하게 뒤얽혀진 잔인한 곳이다. 어린아이들은 지저분하고 불안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교육이나 의료 같은 기본적 권리조차 받지 못한다. 어린아이들에게 세상은 지독히도 불행하다. 소녀가 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먼저 못됐다. '세상에서 가장 못된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는 누군가의 표현은 '지독히 못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녀의 성장기'로 고쳐져야 한다.

 

겨우 받은 용돈 2만 원으로 수학여행에서조차 부모님 선물을 생각했던 학생, 어느 소녀에게 첫사랑으로 남은 용감하고 정의로웠던 학생이 그토록 허무하게 삶을 마감한 것은 과연 누구의 탓이라고 해야 할까. 누구는 대통령을, 누군가는 홀로 탈출해 목숨을 구걸한 선장을, 누군가는 엉터리 해운사를 운영한 사진작가 유 아무개를 지목한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불행을 잉태한 것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전관예우와 이해관계로 똘똘 뭉쳐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부정한 이익을 취하고 나누었던 부패의 카르텔과 그를 침묵으로 용인한 우리 자신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녀 역시 그저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일 뿐이었지만 소녀의 부모도, 세상 그 누구도 소녀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다들 욕망과 이해관계에 성실했을 뿐이다. 사회와 어른들로부터 방치당한 소녀는 그렇게 소위 '불량 청소년'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불량청소년이 거리를 부랑하는 동안 침묵한 사람 역시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 아닌가. 소녀에게만 '못됐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소녀의 삶을 지켜보면서 참 미안했다. 길거리를 떠돌며 그렇게 공포에 떨고, 추위에 떠는 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작은 힘도 돼주지 못해서. 이번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내내 똑같은 과정이 계속 반복됐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배에서 먼저 탈출했고, 무능한 어른들은 역시 구조와 책임 여부를 두고 안전한 곳에서 공방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구조하러 올 줄 알았던 어른들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고, 소시민과 단원고 학부모들은 단장의 심정으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이 뿌리 깊은 비리를 척결해 불태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참혹한 사고를, 아니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묵인하는 공범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한량의독서'님은?
아직도 방황 중인 청년독서애호가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책을 통해 길을 찾으려 헤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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