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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호스

2020년 8월 10일 오늘의 책

화이트 호스

강화길 | 문학동네 | 2020.06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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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들은 비릿한 애증을 안고 살아야 했는가 왜 어떤 이들은 영영 아무것도 모를 수 있는가 전 세대 여성의 서사를 꿰뚫는 날렵한 질문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음복」은 강화길 소설의 이러한 변화를 응축한 작품이다. 이 단편은 가부장제하에서는 ‘모를 수 있는 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음복」의 화자는 새댁으로서 처음 참석한 시가 제사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속 편한 남편과 달리 한 가족의 갈등의 내력을 기민하게 간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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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our place, we make the rules

 

하지만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부디 너를 위해 이것만큼은 내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42쪽)

 

「음복」을 처음 읽었을 때 뭐라고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예사롭지 않은 힘을 느꼈다. 너무도 익숙한 한국의 제사 풍경. 아주 섬세한 재현일까, 이 쾌감은 전적으로 묘사에서 오는가. 그런데 아주 잘 아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으레 드는 허탈감 내지 암담함이 없었다. 다음을 도모할 생명력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다.

 

한동안 나에게는 여성 서사가 곧 여성주의였던 적이 있다. 미처 언어화되지 못한 여성의 미세한 감정들, 그 부자유한 상태에 자꾸만 관심이 갔고 그것은 주로 문학의 지면에서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고통을 재현한 서사를 따라 읽으며 공감하고 분노하는 동안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깊이 공감할수록 책을 덮은 뒤의 무력감 또한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야기란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야기 밖으로 눈을 돌려 ‘행동’하려고 무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고 돌아 다시 닿은 곳은 역시 나의 방식, 읽고 쓰고, 내 식으로 보고 생각하는 삶이었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픽션이지만 그 역시 이 거대한 흐름, 행진의 일부라는 믿음이 강화길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를 읽으며 한층 단단해졌다.

 

어쩌면 그녀는 찬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것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쓰는 사람, 그러니까 오직 뭔가를 만드는 사람만이 바꿔낼 수 있는 새로운 의미, 그런 화이트 호스를. (217쪽)

 

표제작 「화이트 호스」는 이야기 안에서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구현하려는 작가의 ‘매번 거의 실패하는’ 노력의 여정을 짐작하게 한다. ‘뭔가를 만드는 사람’인 그는 익숙한 줄거리를 여성의 고난이 아닌 열정을 중심으로 바꿔 쓴다. 고통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분하는 완연한 사실, 투쟁의 근거이다. 그러나 선택을 이끌어내고 회복을 도모하게 하는 힘은 열정이다. 열정은 불안정할지언정 움직인다.

 

「음복」의 반짝임은 여기에 있다. 화자는 시조모부터 자신을 포함하여 미래의 딸에게까지 이르는 가부장제 내 여성의 고난을 뼛속까지 안다. 모를 권력이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택’하는 사람이 되리라고 자신의 삶을 은밀히 긍정한다. ‘선택에 미달하는’ 너희는 절대 알 수 없을 세계에서 보다 나은 선택을 내리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작가는 여성이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자신을 회복하는 여정에 도덕적 분노만이 아니라 ‘무고하지 않은 욕망’도 동행할 것임을 서늘하지만 아름다운 문체로 선언한다. 그 노력이 늘 불완전하리라는 것을 작가도 우리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야기를 계속 사랑하고 싶은 여성으로서 몹시 반갑고 고마운, 나를 탈진하게 하지 않는 강화길만의 위로였다.

 

***

 

이 글의 제목은 신샛별 평론가가 해설에서 인용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곡 〈Lover〉의 가사를 옮긴 것이다. ‘우리의 공간our place’도 우리가 정하는 ‘규칙rules’도 불완전할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렇게 노래하던 사람이었다. “Oh, I’m just a girl trying to find a place in this world.”(〈A Place In This World〉, 2006)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던 소녀’가 ‘여기는 우리의 세상’이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 말하면 비약일까. 글쎄.

 

참…… 시시하지?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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