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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2012년 7월 10일 오늘의 책

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 마음산책 | 2012.06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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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옷을 입고 인생의 무대에서 죽음을 노래하다

 

역설은 분노, 허무, 그리고 아무리 떼어 놓으려 애를 써도 기어이 삶을 따라 잡고야 마는 죽음에 대한 무력감에서 나온다. 자신감 넘치고 강하며 선하고 올바른 자들은 역설을 비겁한 자조나 자포자기, 허약한 비아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만한 소리! 역설은 허무를 온 몸으로 받아들였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삶의 정수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열심히 입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역설을 지닌 자들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들의 역설에서 죽음을 때려 눕힐 '웃음'이 탄생한다. 

 

에밀 아자르의 책은 처음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뇌세포가 쫄깃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솔로몬 왕의 고뇌. 지나치게 사색적이라 떠맡지 않아도 될 고뇌를 억지로 업어 올 것만 같은 걱정. 세상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게 될수록 고통과 비극은 멀어질 거라 기대하지만, 사색의 깊이에 비례해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 또한 철학의 함정이다. 모르는 게 약이지라는 말은 그냥 있는 게 아니야, '심연을 오래 들여다 보면 어느새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 보는 법이니까' -프리드리히 니체.

 

그런데 이 책, 재밌다. 《솔로몬 왕의 고뇌》는 신나는 풍자와 역설로 부드럽게 다져져 애정어린 비웃음으로 요리된다. 우선 이 책의 화자 '장'부터 소개해야겠다. 장은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캄보디아인 통, 가난과 역병의 땅인 아프리카에서 온 요코와 함께 한 대의 택시를 번갈아 가며 운전하는 택시 기사다. 한 대의 택시를 세 명이! 이 가난한 청년은 어느 날 '기성복의 왕'이라 불리는 거부 솔로몬을 태우게 되는데, 장의 얼굴에서 비밀스런 추억을 느낀 솔로몬은 그 즉시 택시 임대비로 진 빚 1만 5천 프랑을 갚아준다! 동화같은 이야기!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우리는 불가한 꿈에 취해 비틀거리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고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무기력한 독자?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그렇게 시시한 책이 아니야. 들어보게.

 

기성복의 제왕 솔로몬은 여든 네 살이다. 마흔 넷이 아닌 여든 넷이다. 여든 넷! 팔십 사! 죽음을 코 앞에 둔 늙은이지만 솔로몬은 그 필연적 방문자의 응시를 완전히 무시한 채 살아간다. 그는 젊은 시절 기성복을 만들어 거부가 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 불길한 방문자의 주시를 받았지만, 샹제리제 거리의 어느 지하실에서 4년간 꼼짝않고 지낸 덕분에 가까스로 그 시선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가 여든 네 살이 되어 임박한 죽음에 그토록 분개했던 이유는, 젊은 시절 드라마틱하게 죽음을 피해 살아남았건만 이제와서 고작 '자연사'라는 시시한 방법으로 그것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5년간 쓸 수 있는 최신식 세라믹 이빨로 임플란트를 해 넣음으로써 노화를 모욕하고 격렬한 체조로 근력을 다짐으로써 죽음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린다.

 

솔로몬의 또 다른 취미는 젊은 시절 벌어들인 돈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이 있는 자, 수고롭고 짐진 자들은 망설임 없이 솔로몬의 집으로 전화를 거시라. 그곳에는 여든 네 살의 노인과 함께하는 자원 봉사자들이 24시간 당신의 전화를 기다린다. 이른바 솔로몬의 구조회. '장'에게 내려진 1만 5천 프랑의 은혜는 사실 이 곳에서 심부름 꾼으로 일하는 대가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는 택시를 이끌고 전화만으로는 도움이 부족한 사람들을 찾아가 과일 바구니를 선물한다. 그들은 대개가 노인들이었다. 솔로몬은 특히 자신과 비슷한 운명에 직면한 사람들을 각별히 도왔던 것이다. 노인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선물하면서, 마치 그들에게 ‘앞으로 30년은 더 살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듯이.

 

장의 룸메이트 척은 솔로몬의 구조 활동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솔로몬 씨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선한 마음에서가 아니라고 한다. 솔로몬 씨는 신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16쪽) 척의 말을 수긍한다면 솔로몬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 나아가 이 세상, 나아가 이 세상을 만든 자에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이 정한 생사의 법칙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가 인간을 위해 만든 유일한 친구의 존재를 무시한다. - 인간의 친구는 타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 살인, 전쟁을 보고 있으면 신이 타자를 만든 이유가 서로를 죽여 그 수를 조절하기 위함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고로 신이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든 유일한 친구는 '죽음'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이라면 마땅이 행해야할 기적과 은혜의 축복을 대신 행사한다. 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그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신은 죽음을 만들어 인간을 다스리려 하지만 여기 만만치 않은 존재가 서있다. 그는 여든 네 살의 노인이지만 그 눈은 삶에 대한 열망으로 활활 타오른다. 그는 여든 네 해를 쉼없이 보내 삐그덕 거리는 노구를 이끌고 사창가를 찾고 예순 여섯 살의 옛 연인과 재회해 미래를 계획한다. 세상에 이토록 천박하고 우아하면서 유쾌하고 진지한 반항아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소설은 역설의 옷을 입고 인생의 무대에 올라 죽음을 노래한다. 그 노래가 끝나고 나면 죽음은 잦아드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무대 뒤로 사라진다. 죽음이 정복되는 순간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WiredHusky’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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