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0일 오늘의 책
존 가드너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03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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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최초의 타자 은 고대 영어로 쓰인 최초의 영웅서사시 를 다시 쓴 작품이다. 스웨덴 남부의 예이츠족 베어울프는, 12년 동안 덴마크 왕국에 출몰하여 흐로드가르 왕의 용사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그렌델을 죽이기 위해 덴마크 왕국에 온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날 밤에 왕궁을 습격한 그렌델과 맞붙어 그렌델의 한쪽 팔을 뜯어낸다. 치명적 상처를 입은 그렌델은 왕궁을 빠져나가지만 죽는다. 다음 날 그렌델의 어미가...
이번 펜벗의 주제는 ‘괴물’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참으로 시의적절한 주제가 아닌가 생각했다. 겨울은 그야말로 괴물의 계절이었으니까.
괴물에는 하나의 의미만 있지 않다. 거기에는 여러 의미가 존재한다. 우리는 어떤 존재를 괴물이라 부르는 것일까? 일단은 사람의 형상을 하였으되, 사람답지 않은 짓을 버젓이 하는 존재를 우리는 괴물이라 부른다. ‘어떻게 인간으로 저런 짓을 할 수 있지? 사람일 리가 없어!’ 하는 마음이 여기에 투영된 것이다. 전래동화를 보면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들이 사람으로 둔갑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것도 어쩌면 당시 사람의 외양을 하고 있으나 사람답지 않은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올겨울이 괴물의 계절이었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 보여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사람이라 할 수 없었으니, 괴물이었다. 세계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괴물을 몰아냈다고 해서 놀라고 있다. 그러니 괴물이 한 번쯤 화두가 될 만도 하다.
그런데 괴물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 파악할 수 없는 존재 역시 또한 괴물이다. 인간에게 정체불명인 것만큼 두려운 것도 또 없다. 먼 옛날, 인류가 창을 들고 수렵 생활을 하던 원시 시절 그때는 모르는 존재는 그대로 공포였다. 어쩌면 많은 뇌 과학자들이 말하듯 그때의 기억이 그대로 우리 유전자에 남아 여전히 불가해한 존재를 무서워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괴물은 전적인 타자다. 인간과 그 인간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너머에 있는 존재다. 인간과 다른 눈으로 세계를 보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존재다. 그렇기에 괴물은 온전히 부정적이지만은 않고 긍정적 의미 또한 있다는 게 밝혀진다. 괴물이 때로 난파당하는 인간 사회에 등대와도 같이 구원의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괴물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책이 바로 존 가드너의 『그렌델』이다. 그렌델은 최초의 영어 서사시 '베어울프'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원래 서사시에서 그렌델은 12년 동안 덴마크에 나타나 흐르드가르 왕의 병사들을 잡아먹는 괴물로 나타났다. 허다한 옛이야기에 나오는 괴물이 그러하듯 영웅 베어울프를 빛내주는 조연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의 작가 존 가드너는 이것을 전혀 다르게 되살린다. '베어울프'에서 오로지 승자의 영광을 위해 퇴치당해야만 했던 그렌델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 준 것이다. 그는 존 가드너에 의해 원래 서사시에는 없었던 자신의 내면과 목소리를 부여받는다. 그것이 바로 1971년에 나온 소설 『그렌델』이다.
소설 처음부터 존 가드너는 그렌델이 가진 타자성을 강조한다. 그렌델의 눈에 비친 인류는 이런 존재다.
내 종족과 비교한다면 사슴은 사물을 섬세하게 구별할 줄 모른다. 토끼와 곰, 심지어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게 그것들의 행복이다. 만물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보기만 하는 것 말이다. 그것들은 진흙에 파묻혀 있는 게처럼 그렇게 묻혀 있을 뿐이다. 물론 인간만이 묻혀 있지 않지만. (13쪽)
그렌델에게 인간은 자신이 보는 사물의 외양을 사물의 전부로 생각하는 '맹목적인 편견(12쪽)'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그렌델과 처음 마주했을 때 외양만 보고는 괴물이라 여겨 창이나 도끼를 던져 죽이려고만 든다. 처음 보는 짐승,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압도적인 공포 속에서 먼저 제거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에게 그렌델은 단지 괴물일 뿐이었다. 처음엔 신기해서 다음엔 뭔가 소통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인간 근처로 갔던 그렌델은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까지 하고 있던 고뇌, 갖고 있던 기대가 모두 부질없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에 있는 허무의 심연을 인간을 살육하는 것으로 채워버린다.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처음 보는 존재라고 해서, 모르는 존재라고 해서 배척하고 제거부터 하려 들지 않고 대화를 시도했다면? 그랬다면 서로가 죽고 죽이는 대신 서로 보지 못했던 세계의 모습과 갖지 못한 지식의 교환으로 모두의 세계가 더 풍요롭게 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상대는 오로지 지배해야 할 사물로밖에 보지 못하는 호르드가르는 자신이 정복한 수많은 주변 국가들과 똑같이 그렌델 역시 물리치고, 가져야 할 전리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인류의 본질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는 이렇게 왕자를 가르치는 노인의 입으로 밝혀진다.
왕국이라는 것이 위하는 척하는 게 무엇입니까? 타협을 조정하는 공동체의 가치를 지킨다, 공동 이익을 향상시킨다! 다시 말하면 가진 자의 권력을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을 억누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의 합의에 의해서 그렇게 한다고 지어내지요. 그것도 아주 그럴듯하게 지어냅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그런 허상을 심어줄 것입니다.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보상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렇게 가다 보면 체제에 전혀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내려가게 되지요. 문제없습니다. 그자들은 제일 어두운 변방으로 보내버리든가, 굶겨 죽이든가, 감옥에 집어넣든가, 아니면 전쟁에 내보내면 됩니다. 다수의 욕심을 만족시키면 나머지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거죠. 여전히 합의라는 허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비천한 노동자들이 불평을 해대면 국가의 권위는 사회보다 우선한다고, 사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가 완화하면서 질서를 유지시킨다고 주장하시면 됩니다. 국가는 개인을 뛰어넘는 정의의 최고 구현체라고 말이지요. 만일 노동자들을 도저히 구슬릴 수 없다면? 그때는 ‘법을 지켜라’ 혹은 ‘공익을 우선하라’ 하고 외치면서 억압하세요. 그리고 그자들을 체포하고 그중 몇몇을 처형하세요.(146쪽)
노인의 말에서 많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1971년에 나온 소설인데 마치 바로 지금 나온 소설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이 말하는 국가의 모습은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니까. 헌법에서 보장한 정당한 노동권의 행사인데도 불법적으로 경찰을 투입해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그 후에는 또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을 걸어 다수의 노조원을 자살로 몰고 간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용산 참사는 또 어떠한가? 백남기 씨는? 이렇게 보자면 노인이 말하는 국가야말로 괴물이라 할 만하다.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라고 했던가? 본성이 괴물이었기에 그렌델 역시 괴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합법적인 시위에 물대포를 쏘아대는 이들이나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어묵과 치킨을 먹던 이들이나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보다는 늘 무시와 조작 그리고 은폐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내면이 그러하듯이.
그들이 쉽게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그런 그들 앞에서 비인간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의 내면에 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괴물들이 판을 치는 시대를 살았다. 겨울은 그런 괴물들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던 계절이었다. 그런 괴물들 앞에 또 다른 괴물인 ‘그렌델’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렌델에게도 인간은 정체불명의 존재였지만 (인간들이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덮어 놓고 배척하지는 않았다. 먼저 다가가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외양은 괴물이었을지 몰라도 내면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가 바로 그렌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렌델은 차라리 거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그렌델이 아니었으면 인간은 자신이 실은 괴물이라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전적인 타자로서의 괴물은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현재 인간의 진실한 초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게 만드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그렌델』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나왔다. 『그렌델』에서 행한 국가에 대한 비판은 사실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던 미국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쉽지 않았다. 바로 미국의 적이 되어 테러까지 당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가드너는 비록 우화의 형식을 빌렸다 해도 용감하게 미국의 잘못에 대해 비난했다. 모두가 '베트콩'을 괴물로 보고 증오를 키워가고 있을 때 가드너는 누가 정말 괴물인가 똑똑히 보라고 외쳤다. 『그렌델』은 그런 소설이다. 누가 괴물인지 살피는 눈보다 내가 괴물인지 아닌지 살피는 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소설. 오늘처럼 괴물과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요즘, 더욱 각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 펜벗 인터뷰
1. 외양은 괴물이지만, 내면은 인간다운 그렌델이 절대적 타자로서, 인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분석하셨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그렌델과 같은 존재가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이라 보시나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성심껏 답해 보겠습니다. 무엇을 인간으로 여길 것인가? 저는 여기에도 하나의 계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명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인간에 대해서도 다양한 규정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으니까요. 언제는 야만인들이, 또 언제는 여성들이, 또 언제는 이교도들이, 또 언제는 흑인들이 인간이란 범주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과거 그들은 괴물이 되었고 존중 보다는 지배의 대상, 대화 보다는 통제의 대상으로만 존재했죠. 이런 면에서 서양 문명의 역사란 인간의 범주를 계속 넓혀 온 여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절대적 타자가 되어 기존의 상식적인 시각으로는 보지 못했던 곳을 보게 만들어, 우리가 정상 혹은 진리라 여긴 것들이 실은 엄연히 한계가 있고 때론 편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덕분이었죠. 물론 이것은 그저 그런 존재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이뤄진 일은 아닙니다. 바로 그런 존재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렌델을 거울로 비유한 것이죠. 보이는 것은 그대롭니다. 다만 보이는 것을 우리가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 절대적 타자로서의 괴물은 그렇게 존재 자체로서 우리에게 타자를 대하는 태도가 변할 것을 요청하는 존재입니다. 그것도 권리가 아니라 의무로 말이죠.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인의 얼굴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타인의 얼굴 자체가 우리에게 윤리적 책임을 부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렌델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그렌델은 아직 많다고 하겠습니다. 여성 혐오를 가진 이에겐 여성이, 진보라고 하면 무턱대고 종북으로 규정하는 이들에겐 진보가 그렌델이라 할 수 있겠네요. 존중과 이해가 아니라 적대와 혐오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모두가 그렌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지난겨울은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을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 봄을 맞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겨울은 무엇보다 인적이 뜸합니다. 움직이기 보다는 정지하기를 바라죠. 그렇게 타인과의 소통이 부재합니다. 결정적으로 지난겨울이 우리에게 힘들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자로서 바라보고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현안에 대하여 진실하게 또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려 했다면 힘든 겨울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봄은 무엇보다 움직임의 계절입니다. 얼었던 물은 흐르고, 생명들은 긴 겨울잠을 끝내고 기지개를 켭니다. 똑같이 우리 사회의 봄도 이제 색깔과 진영의 잣대에서 벗어나 모두가 한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존중하며,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만큼이나 상대방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찾아오지 않을까 싶네요. 존중과 관용이 가장 제일의 원칙이 되는 소통이 진짜 봄을 맞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3. 펜벗 큐레이션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행신호 님이 생각하시는 펜벗 활동의 장점이나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습니다.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그저 읽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어떤 뚜렷한 생각 없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펜벗 활동을 하면서는 정해진 주제에 따라서 읽어야 했습니다. 먼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그 주제에 어울리는 책을 찾고 독서를 하면서는 이 내용이 주제와 어떻게 연결될까 헤아리면서 읽어야 했습니다. 무작위로만 진행되던 제 독서에 절로 어떤 사유의 틀 같은 것이 형성되더군요. 저는 이것이 정말 좋더군요. 그 전엔 제가 책에 끌려갔다면 펜벗으로 하는 독서는 제가 주체가 되어 책을 끌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주체가 되니 저와 책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이었고 책 내용도 좀 더 뚜렷한 시각으로 읽게 되니 제 삶과도 훨씬 밀접하게 연관시킬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펜벗 독서를 하면서 책과 삶에 대해 자주 그리고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제 독서와 삶을 무던히 되새겨 보는 흔치 않은 시간들을 참 많이 가졌다는 것. 이게 제게는 펜벗 활동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서행신호'님은?
날마다 떨어지는 기억력과 집중력으로 우울과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직장인입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노화란 한 사람에게 정해져 있는 에너지를 보다 본질적은 부분에 쓰느라 일어나는 현상이라 하더군요. 그렇게 독서를 통해 제 삶의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습니다.
| [서행신호 님의 테마북 – 괴물의 존재와 의미를 헤아리기 위하여]
| 펜벗 큐레이션 Vol.21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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