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일 오늘의 책
고정순 | 제철소 | 2016.05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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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등포라 불리던 모든 것에게 전하는 안부와 작별의 인사 어찌 보면 『안녕하다』의 주인공은 ‘영등포’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인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듯 작가 고정순을 키운 8할은 영등포라 할 만큼 이 책에서 영등포가 갖는 이미지는 강력하다. 인천 소래포구의 한 오락실 뒷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온 그녀의 가족에게 영등포가 “건넨 첫마디는 시끄럽고 냉정”하다. 어린 여자아이의 눈에 비친 영등포는 “돌멩이조차 돌멩이답지 못...
책 『안녕하다』는 겉 표지는 회색이고 겉 표지를 벗긴 안쪽 표지는 녹색이다. 책과, 책에 담긴 글이 서로 많이 닮았다. 작가 고정순은 영등포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가난했던 유년시절. 가난했던 영등포. 그 시절 그 동네의 색깔은 짙은 회색빛깔처럼 침침하고 눅눅했다.
오락실에 딸린 단칸방에서 흙집으로, 그리고 연립주택으로. 가족의 집은 점점 커지고 나아졌지만, 저자 개인의 삶은 다시 또 가난의 시작이었다. 유학을 가서 그림을 배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벌이를 했지만 끝내 유학의 길엔 오르지 못했다. 이후 다시 그림을 그려서 밥벌이를 하는 것마저 생활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출판사에 그림을 들고 가고, 2년여 동안 책을 만들다 엎어지고. 결국엔 이렇게 책을 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저자는 그 삶을 몸소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책을 엮어냈다. 그의 유년 시절과 20대, 30대의 삶은 회색빛이었지만. 그 시절이 결코 암울한 회색빛만은 아니었다.
영등포에 살면서 형편이 조금 나아졌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가족여행에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민박집 주인이 돈을 더 많이 준다는 손님을 받고, 당시 열네 살이었던 그와 가족들은 쫓아낸 것이다. 차도 없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짐 속에 허연 솥 단지 하나가 있었는데, 그 솥이 때마침 논바닥으로 굴러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내가 웃고 동생이 웃고 언니가 웃고, 운다고 면박을 당한 엄마가 웃었다. (59쪽)'
살면서 울다가 웃을 때가 있다.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문제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어이없이 웃음보가 터질 때가 있다. 그렇게 웃다 보면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 다른 것들이 보이고 해결은 어려워도 나름 고난을 견디기는 수월해진다. (59쪽)
“울다가 웃을 때” 우는 동안 감정이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바닥을 친다. 오갈 데 없는 감정이 다시 '그래, 잘 될 거야'라는 희망의 상승세를 타는 순간, 울다가 웃음이 나오는 게 아닐까?
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저자는 형광안료를 사용하여 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그 벽화들은 모텔에 걸리는 그림들이었고, 어둠 속에서만 빛을 발하던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3개월 뒤 회사는 도산했고, '가난한 유학생이 되겠다는 나의 열망은 끓는 점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109쪽)'
간절히 원해도 가볍게 무시당하는 바람들은 일찌감치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9쪽)
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은 그냥 꿈으로 남았다. … 남은 소망이라고는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111쪽)
간절히 원해도 가볍게 무시당하는 바람. 젊은 시절의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접고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일찌감치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는 말이 '꿈꿔봤자 소용없는 것들'이라고 씁쓸하게 들린다. 당시의 25살 남짓 되었을 저자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고 싶다. 회색빛 가난했던 시절을 지나왔으니 이제는 그가 건강하고 푸른 초록빛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일탈쟁이’님은?
미래의 방랑자를 꿈꾸며 지금은 책을 통해 여행 중인 일탈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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