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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가는 길

2009년 6월 1일 오늘의 책

해남 가는 길

송언 | 우리교육 | 2009.04

분류 : 시/에세이/기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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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속의 빠른 삶을 벗어던지는 느림의 여정 속도의 시대를 거스르며 묵묵히 걷는 그 길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만난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걷는 길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며 아이들의 삶에 밀착한 동화를 써 온 작가 송언. 그는 몇 년 전, 고3이 되는 아들과 함께 9일간의 도보여행 길에 올랐다. 고3이라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서기 전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다잡고 싶었던 아들의 제안으로,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서울에서 해남까지 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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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가는 길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뼈져리게 느낀 지난 한주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많은 이들은 슬퍼하고 또 슬퍼했다. 인생이란 긴 길을 걷는 우리에게 ‘동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슬플 때 눈물 닦아주고, 힘들 때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동행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 것일까. 그때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이란 부제를 단 여행 에세이 <해남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해남 가는 길>은 고3을 눈앞에 둔 아들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아빠, 나 국토순례를 해 볼까 하는데…….” 웬만한 전투보다도 치열하다는 ‘고3 전쟁’을 앞둔 아들의 말에 부모는 지레 걱정부터 앞선다.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국토순례가 웬말인가. 하지만 부모 자식 간에 감정싸움을 하기 싫은 아버지(저자)는 백기를 든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할지, 위험하지는 않을지 걱정은 멈추질 않는다. 그 때 아들의 한 마디 “그런 게 아니고, 난 아빠랑 둘이 국토순례를 떠나고 싶어.” 이 말에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고, 부자(父子)의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 한 달 전부터 체력단련도 하고 옷가지도 든든하게 챙겼지만, 12월 31일부터 시작한 여정은 만만치 않다. 한겨울 추위에 찬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등짐은 무겁기만 하다. 거기에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남긴 세찬 바람은 뼛속 깊숙이 스며든다. 또 길거리에 만난 (로드킬 당한) 수많은 주검들, 나그네들의 여관은 사라지고 연인(?)들의 모텔만 남은 한국의 현실은 속상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들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왜. 동행이 있기 때문에...

그저 함께 있음

‘해남 가는 길’은 공간적 개념이지만, 시간적 의미가 더 크다. 쉰 살인 아버지와 고등학생인 아들이 9일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함께 보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길을 걷는 동안 부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서로 입을 꾹 다문 채 걷기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마음이 서로에게로 뻗어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 내가 어깨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서, 배낭 좀 바꿔 메자고 부탁하려고 아빠를 슬쩍 쳐다봤어. 그랬더니 아빠가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헉헉대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배낭을 바꿔 메자고 부탁해. 내가 참고 아빠를 봐준 거라고. 알기는 해?” 나는 고만한 것에 그만 감격했다. “그랬니?” 할 말을 잃었다.(p 34)

이쯤 되면 ‘피 끓는 애정의 결말’을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의 길에 사무치는 감동이나 피 끓음은 없다. 하루의 여정이 끝나면 아버지는 9시 뉴스를 보고, 아들은 영어 공부를 한다. 참 멋없는 여관 풍경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서로를 알아 가는 소중한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채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삶이다. 수덕여관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고암 이응로의 작품, 소리꾼 김창진의 사연 많은 이야기 등, 아들은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며 그의 삶과 가치관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또 아버지는 아들과 소주잔을 비우면서 어느덧 성장한 아들의 무게를 느낀다. 시간이 만들어준 공감이다.

긴 시간 속에 나

전날 내려온 모녀(母女)와 합류해 어머니와 여정의 마지막 날, 네 식구는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간다. 9일 동안 힘들게 내려간 길을 단 몇 시간만에 돌아오면서 아버지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득 차창에 비친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길과 길이 맞닿아 있듯이 끊임없이 이어질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시간. 끝없이 이어진 길에서 한 인간은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듯, 아버지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한다. 모든 길을 갈 수도, 모든 것을 쥘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걷는 길의 법이니까.

평택에서 해남까지 걷는 9일 동안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부러운 눈길로 이들을 쳐다본다. 서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관계도 부럽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잠시 생각해봤다. 아버지 혹은 가족과 도보 여행을 떠난 적, 아니 단 둘이 떠난 적이 있던가. 특히 도보 여행은 많지 않다. 밤바다가 보고 싶어 무작정 길을 나섰지만 파도 소리만 듣고 새벽녘에 돌아온 제주도의 기억, 멀지 않아 보여 걷기 시작해 5시간 동안 꼬박 걷기만 했던 경포대의 기억이 전부이다.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책을 덮으며 앞으로 ‘나’의 여정에는 무슨 일이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바쁜 일상에 여행을 망설이는 나에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권한다. “큰 손해가 아니라면 10분쯤 참는 건 삶의 여유가 아닐까 생각하느니라.”(p 145)

                                                                                                -컨텐츠팀 에디터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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