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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 허승진 역 | 더스토리 | 202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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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4591429 / 256쪽 / 256g /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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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는 말처럼, 주인공 베르테르는 괴테 자신이자, 우리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의 초상화와도 같다. 사랑과 도덕, 광기와 이성,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는 베르테르에게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다. 편지글로 이루어진 구성이, 마치 베르테르가 직접 독자에게 고백하는 듯해서 더욱 강렬하게 몰입하게 된다.

괴테는 법학을 전공하고 베츨러라는 도시에서 법무 실습을 시작했던 어느 봄날, 동료 케스트너의 약혼녀인 샤를로테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는 괴로워하다가 상심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반년쯤 지나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또다른 동료였던 예루잘렘이 결혼한 여인에 대한 연정으로 괴로워하다가, 바로 케스트너의 권총을 빌려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그로부터 약 2년 후,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했다.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권총을 빌려 주시겠소?’라는 예루잘렘의 메모 내용이며 자신이 겪었던 사랑의 열병을 그대로 담아낸 자전적 소설이었다.

 

 

출판사 리뷰

“운명이여, 나는 왜 이리도 행복하고 왜 이리도 불행한가!
정녕 나보다 행복한 이도 없고, 나보다 비참한 이도 없구나!”

청춘의 질풍노도의 마음, 그 강렬한 열정과 휘몰아치는 감정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한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시성으로 꼽히는 괴테의 자전적 소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는 말처럼, 주인공 베르테르는 괴테 자신이자, 우리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의 초상화와도 같다. 사랑과 도덕, 광기와 이성,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는 베르테르에게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다. 편지글로 이루어진 구성이, 마치 베르테르가 직접 독자에게 고백하는 듯해서 더욱 강렬하게 몰입하게 된다.

괴테는 법학을 전공하고 베츨러라는 도시에서 법무 실습을 시작했던 어느 봄날, 동료 케스트너의 약혼녀인 샤를로테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는 괴로워하다가 상심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반년쯤 지나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또다른 동료였던 예루잘렘이 결혼한 여인에 대한 연정으로 괴로워하다가, 바로 케스트너의 권총을 빌려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그로부터 약 2년 후,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했다.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권총을 빌려 주시겠소?’라는 예루잘렘의 메모 내용이며 자신이 겪었던 사랑의 열병을 그대로 담아낸 자전적 소설이었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25세 젊은 작가의 작품에, ‘베르테르의 파란 연미복과 노란 조끼’ 차림에 열광했다. 프랑스혁명의 기운이 익어가던 시기(1789년으로부터 15년 전),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 계몽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신분(왕족-귀족-평민)’에 가로막혀 답답해하던 젊은이들은, 누구보다 순수하게 사랑하고 뜨겁게 고민하고 결국에는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며 틀에서 탈출하는 베르테르를 자신들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

역자 소개

  • 역자 : 허승진
어린 시절 독일에서 지냈고, 2007년 경희대학교 졸업 후 또다시 독일로 진출했다. 현재 도르트문트 FH DORTMUND에서 Fotografie (사진)을 전공하면서 번역을 하고 있다. 요리와 문학에 관심이 많아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독일에서 지낸 시간이 많은 만큼 독일 문학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좀 더 나은 번역을 하기 위해 공부 중이다.

목차

제1부
제2부

역자 후기 :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의 자전적 소설, 사랑의 열병으로 고뇌하던 젊은 베르테르의 이야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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