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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김멜라 저 | 현대문학 | 202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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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7902627 / 220쪽 / 308g / 104 x 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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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쉰두 번째 책 출간!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두 번째 소설선, 김멜라의 『환희의 책』이 출간되었다. 2023년 10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인류를 ‘두발이엄지’로 분류하고 관찰하는, 인간보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난 곤충들이 두발이엄지 중 ‘비생식 동거 집단’인 한 레즈비언 커플을 관찰 기록이다. 역발상적인 흥미로운 시도로 기록한 인간 탐구서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출판사 리뷰

이들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은 같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 여름, 긴긴 잠을 끝내고 두 날개를 펼치며 뜨거운 햇빛을 만끽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들의 기록 앞에서 알 수 없는 떨림을 느낀다. 놀람과 경이, 신기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이 모든 느낌을 압도하는 자연의 거대한 흐름! 이 연구물의 제목에 적힌 ‘환희’는 바로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다. (......) 기록물의 형태로나마 그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고 마주한 이 계절은 실로 환희의 여름이다. 나의 두 날개가 겨울을 지나 이 여름에 드디어 태어났듯, 이 연구를 읽는 모든 독자는 예외 없이 탈피할 것이다. 이 연구와 검토서를 읽는 동안 당신의 손끝에서 만져지던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허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호랑과 버들을 만나기 이전, 그리고 이후의 시간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버들의 주문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간다.
―전승민, 「작품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어느 한 시절에 저와 연인이 세상과 동떨어져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해도, 우리는 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처 알지 못했을 뿐, 우리가 웃거나 아파할 때 우리를 지켜보는 무수한 눈과 섬세한 몸들이 함께였습니다. 저는 그 분명한 사실을 소설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준 환희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서

나는 우리의 저술가들에게 말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사소함, 그것이 우리가 부여받은 필력이다. 가라, 톡토기답게 튀어 올라 유한한 두발이의 삶을 무한한 갉작임으로 기록하라. 모기답게 깊숙이 침을 찔러 익은 복숭아 같은 인간의 외피에서 비탄의 적혈구를 뽑아내라. 거미답게 단백질 실을 엮어 우리를 눌러 죽이는 그들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방사형 텍스트를 수놓아라!
-26쪽

누 선생의 말씀대로 지구의 모든 구성원에겐 실상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이란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우리의 탈바꿈을 가둬놓는 두발이엄지의 형식이다. 우리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고 늘 다른 것으로 흐른다. 물방개와 물땅땅이는 두꺼비에게로 흘러 구름이 되고, 왕풍뎅이와 산누에나방은 동고비에게로 흘러 빗방울이 된다. 꽃과 나무는 나비로 날개를 갖고, 땅과 바위는 벼룩의 도움으로 점프한다. 느낄 수 있겠는가? 위가 들리고 밑이 빠지는 쾌감을, 삼키는 뜨거움과 씹히는 상쾌함을, 구름으로 응결되고 빗방울로 추락하는 기쁨을. 두발이엄지도 우리처럼 믿고 느끼는가?
-30-31쪽

시간의 풍화와 침식작용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의 난반사와 응어리진 충격파가 필자의 윗입술을 떨리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버들의 팬티 검사 기억과 호랑의 욕실 구멍 기억은 두 암컷 엄지의 내면 진피와 관절지 형성에 주요 영향을 미쳤기에 필자는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104쪽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그것이 호랑이 이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였다. 그것이 호랑이 버들의 옷과 신발을 정리하며 버들의 욕망과 버들의 상처, 버들의 조증을 이해하려는 이유였다.
-107쪽

나도 그렇다고, 나에게도 당신의 그 상처가 있다고. 그렇게 입을 열어 자신의 생채기를 꺼내 보이면 어떤 이들은 버들 앞에 재판소를 세워 땅땅땅 판사봉을 때렸지. 냉소와 야멸찬 웃음으로 버들의 진심을 내동댕이쳤어. 그렇게 멍들고 찢어져도 버들은 계속 사람들과 연결돼 있고 싶어 했어. 「왜 너 자신을 낭비해. 왜 그렇게 너 자신을 꺼내서 진열해놔.」 호랑은 버들을 이해하지 못했어. 버들의 마음은 알았지만 버들의 방식은 위험하고 어리석어 보였지. 하지만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든 버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몰인정함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끝없이 싸우고 있는 버들을 느낄 수 있었어.
-110-111쪽

버들 나는 언제나 네가 전부야. 네가, 내, 전부야.
호랑 그럼 됐네. 내가 전부니까 세상이 망하든 말든 상관없잖아.
버들 나는 괜찮아. 난 받아들였어. 근데 넌 어떡해?
호랑 내가 왜?
버들 넌 무서워하잖아.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그래서 나랑 못 헤어지는 거잖아.
-136쪽

여전히 번개가 내리치던 어느 밤, 침대에 누운 호랑이 버들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버들은 호랑의 옷 속에 손을 넣어 등을 만졌고, 호랑은 버들의 아랫배에 뺨을 문질렀다. 두 사람의 팔과 다리가 등나무의 줄기처럼 엇갈려 있을 때, 불현듯 버들이 고개를 들어 창가를 봤다. 기척을 느끼고 귀 끝을 움찔하는 개나 고양이처럼. 잠시 뒤 창밖에서 빛이 번쩍했다. 버들은 번개가 치기도 전에 번개의 기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고양이를 어루만질 때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기 전 그르릉 하는 배 속의 울림을 먼저 느끼듯이.
저 얼굴이 그 얼굴일까.
호랑이 버들을 바라봤다.
그래, 이제 나도 괜찮아. 죽음이든 삶이든. 그러니 나에게 무너져 내려.
-148-149

호랑 다른 사람이 그렇게 중요해?
버들 안 중요해. 그래도 그 사람들이 없으면…… 상상해봐.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호랑이 휴대전화를 바닥에 탁 내려놓는다.

호랑 상상했어. 난 괜찮아. 난 너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버들 난 아냐.

그 말에 호랑이 버들을 뚫어져라 본다. 입술을 깨문다. 욕을 내뱉고 싶은 얼굴이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귓속에 짧은 이명이 울린다. 버들은 고요하다.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나도 그랬지만, 너의 선택은 용납해줄 수 없다는 표정이다.
-160-161

호랑이 헛웃음을 지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어. 뭐라고 설득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막막했지. 호랑에겐 버들의 마음을 돌릴 근거나 당위가 남아 있지 않았어. 버들이 자신에게 어떤 사랑을 주든, 그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어야 했으니까. 그래야 버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플 테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너는 언제나 세상에 지게 되어 있고, 널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세상에 두들겨 맞고 돌아온 너를 또다시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내가 아는 사랑, 너에게 배운 사랑의 방법이니까.
-163

신이 악이라면, 그 악이 우리의 날개를 만들고 두발이엄지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악에 올라타겠어. 번식하고 살아남아 나와 이어진 다른 생명들에게 내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 나는 수레바퀴를 굴리겠어. 그 바퀴에 내 몸이 짓이겨진대도, 우리가 낳은 인간이 또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대도, 나는 또 다른 버들과 호랑을 만들고 싶어. 설령 그게 악이라 해도 그 악은 끝없이 희망을 품고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니까. 태어난 아이들과 태어날 아이들과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터무니없을 정도로 흥겨운 나의 이 도약과 떨림을 그 애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그러니 버들과 호랑은 비생식 암컷 엄지가 아니야. 나를 낳았으니까. 내 안에서 어리석은 꿈을 일으켰으니까. 나는 다시 나에게서 탈피하고 있어
-183-184

저자 소개

  • 저자 : 김멜라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4년 『자음과모음』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 『제 꿈 꾸세요』,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 등이 있으며,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비생식 연구 네트워크 11
가을 짝짓기와 구애 27
겨울 고치 안에서 63
이른 봄 허물벗기 71
늦봄 허물 씹어 먹기 86
초여름 영역 넓히기 108
한여름 빛 아래에서 118
늦여름 그늘을 찾아 130
가을 초입 당분을 모아 150
그들의 한살이 166

작품해설 190
작가의 말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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