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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8286226 / 60쪽 / 420g /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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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햇빛과 물과 흙과 벌레와 함께 농사짓는 이야기 먹는 건 땅에서 나옵니다. 땅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고, 고추를 심으면 고추가 나오지요. 모든 걸 받아 주고 모든 걸 키워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땅을 어머니 같다고 하나 봅니다. 그렇다고 땅에다 아무 거나, 아무 때나 심으면 안 되지요. 농부는 어느 밭에 참깨를 심어야 하고, 언제 고구마를 심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입니다. 까치가 둥지를 트는 이월이면 농부는 농기구를 꺼내 먼지를 탈탈 털면서 농사 준비를 합니다. 농부는 빈 논밭이 푸릇푸릇 채워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드디어 땅이 녹아 냉이가 얼굴을 내밀면 논밭에 거름을 뿌립니다. 제비가 돌아오는 오월이면 고추, 옥수수 모종을 밭에다 옮겨 심어야 합니다. 볍씨를 틔워 모를 기르는 일도 이때 합니다. 볍씨를 잘 틔워야 건강한 모를 얻지요. 모판에서 잘 자란 모를 논에다 콕콕 심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무럭무럭 자라 벼가 되고 알찬 쌀이 될 때까지 농부는 부지런히 보살핍니다. 논밭에 벼와 콩, 고추, 고구마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면 농부들은 이제 한시름 놓고 가까운 곳으로 놀러도 갑니다. 날이 더워지면 선선한 새벽에 논에 나가 무너진 논두렁도 손보고, 밭에 가서 김매기도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보살피니까 작은 생물들도 농부 눈에는 잘 보입니다. 온통 푸르른 여름이 되면 방울토마토며 가지며 고추가 주렁주렁 달립니다. 농부는 잘 여문 열매를 팔기도 하고 맛나게 먹기도 합니다. 씽씽 달리는 차가 아무리 좋아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이어주는 먹을거리는 오로지 땅에 씨앗을 뿌린 농부의 거친 손에서, 휘어진 허리에서, 딴딴한 장딴지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농부 혼자 짓는 농사가 아닙니다. 햇빛과 물과 바람과 흙,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들이 함께 짓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곡식과 채소는 말라 죽습니다. 큰비와 태풍이 논밭에 닥치면 벼와 고추와 토마토와 옥수수가 물에 잠기고 흙에 파묻힙니다. 농부의 마음도 함께 무너집니다. 하지만 여럿이 힘을 합쳐 쓰러진 벼와 고춧대를 다시 세웁니다. 한가을이면 농부는 그동안 가꾼 곡식과 채소를 따고 캐고 거두고 털고 말리느라 바쁩니다. 그 가운데 최고는 벼를 베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벼 베는 날 마을 사람들이 꽹과리도 치고 장구도 치면서 흥겨웠습니다. 요즘에는 콤바인으로 좀 더 편하게 가을걷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좀 심심하긴 하지만, 벼를 거두는 기쁨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곳간에 차곡차곡 쌓은 곡식과 채소를 보면 농부는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농부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깊은 산 반달곰이 겨울잠 자는 겨울이면, 농부는 열매 가운데 내년 봄에 씨앗으로 쓸 놈들은 골라 둡니다. 한동안 쓰지 않을 호미며 경운기도 정리해 둡니다. 그동안 애쓴 땅이 하얀 눈을 덮고 쉬듯이 농부도 편안히 쉽니다. 나무판에 새겨 넣은 농부의 마음 이 그림책은 글이 많지 않은데도 휘리릭 넘기며 보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책장을 여는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묵직하고 강렬하면서도 다채로운 목판화 그림에 빠져들게 되니까요. 그림에 손을 대면 우툴두툴 거칠면서도 싸악싸악 날렵한 칼 맛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책은 소멸법으로 찍은 다색 목판화 작품들로 엮었습니다. 나무판에 그림을 새긴 다음 물감을 발라 종이에 찍고, 다른 색을 찍어야 할 부분을 남긴 나머지를 파서 또 찍고, 다시 또 파고 또 찍고, 또 파고 또 찍어서 그림 한 장을 만들어 냅니다. 그림 한 장에 적게는 일고여덟 번, 많게는 열두어 번 나무판을 파내야 합니다. 그림에 보이는 빛깔 수만큼 판을 새긴 것입니다. 그야말로 정성과 공력을 다해 만든 작품입니다. 다색 목판화로 만든 그림책은 매우 드뭅니다. 무척 고되고 정교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목판화의 미덕이라면 무엇보다도 뚜렷한 주제 전달과 함축적인 형태, 강렬한 대비가 주는 긴장과 리듬감입니다. 작가 이윤엽은 거기에 세밀한 묘사와 발랄한 웃음, 연속적인 연출과 풍성한 색감을 더했습니다. 나무에 새긴 농부의 뚜릿뚜릿한 눈과 두툼한 손, 굳센 장딴지에 힘이 넘칩니다. 마을 어귀의 나무들과 굽은 길, 농부의 집이 정답습니다. 나날이 푸르러지고 영글어 가는 온갖 풀과 열매가 싱싱하고, 아이와 강아지가 명랑합니다. 명쾌한 검은 선과 뚜렷한 색감이 호쾌하고 시원한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섬세한 묘사와 재치 있는 형태가 다정하게 속살거립니다. 작가 이윤엽은 자신의 첫 창작 그림책인데도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과감한 구도와 다채로운 변화를 담아 매끈하게 엮어 냈습니다. 이 빼어난 솜씨에 힘입어 이야기와 그림이 맛깔나게 한 상 차려졌습니다. 미술 판에서 이른바 ‘현장 미술가’로 뼈가 굵은 작가의 표현력과 소통 능력이 한껏 무르익어 꼭 소장하고 싶은 그림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 시간이 흐르고 빛깔이 바뀝니다. 빈 들판에 거름을 뿌리는 회갈색 화면으로 시작하여, 온갖 풋것들이 돋는 연둣빛, 무성하게 자라는 짙은 풀빛과 야무지게 영글어 가는 황금빛이 펼쳐지다가 새하얀 눈이 내리는 고요한 화면으로 맺습니다. 그 빛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자연 속에서 살며 땅을 일구는 사람이 느끼는 변화를 책을 보는 독자가 함께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저 너머 산 빛을 보고 계절을 미리 보는가 하면, 이파리에 난 작은 구멍과 꼬물거리는 벌레를 놓치지 않는 농부의 멀고 가깝고 깊은 시선을 따라간 연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뜨겁게 내리꽂는 태양과 모든 것을 뒤흔드는 태풍,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고 때론 맞서며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부를 담은 장면들을 보노라면, 그림책 책장이 아득하게 넓어지며 그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농부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특별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