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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343690 / 372쪽 / 372g / 125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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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기록을 남기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연극은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 완성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 양 빈 무대로 돌아가지만, 희곡은 그렇지가 않다. 희곡이 문학이라면 쓰이고 읽히는 건 당연한 일일진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극작가로 글을 쓰다가 2018년 연극계 미투가 있었고, 그 이후로는 연출로도 활동하면서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했다. 계속 내 속도가 느리다고 느꼈고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기보다는 과거에 수렴하며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 자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들이 다양한 독자를 만나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어주는 분들이라면 번잡스러운 이야기들 안에서 저마다의 작은 용기를 발견할 것이라 믿는다.
_서문에서
추천사
이오진의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발만 동동 구르다가도 기어이 한 발을 내딛게 만들고,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어서 혼란하고 불안한 나날을 어떻게든 견디게 만든다. 서로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는 법이 없기에,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기에 서로의 세계에 포섭되고 휘말린다. 이오진의 인물들이 보여준 각양각색의 용기는 내게도 그렇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이런 용기가 있는 줄도 모른 채로 낙망하던 순간에 호랑이 기운처럼 갑자기 솟아났던 것 같다. 하루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자신만만해졌다가도 또 하루는 작은 점처럼 한없이 움츠러들 때,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오진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용기는 조금씩 자라났을 테니까.
_김병운(소설가)
책 속에서
범순\t단이가 실패하는 여성 같아요?
은호\t그냥 딸이잖아요, 딸. 어머니, 딸, 과부, 할머니, 성녀,창녀, 클럽녀, 술집 작부, 김 여사, 청소 아주머니, 유혹녀, 무슨 녀, 무슨 녀, 무슨 년…….
범순\t……저기요.
은호\t예?
범순\t그때 여성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이 있죠. 돌아가신 이진오 선생님이 그런 가난한 시대에 가난하게 억압받다 가는 민초들 이야기를 작품에서 하시는 거고. 성별이고 나이고 상관없이…… 그런 거를 쓸 수밖에 없는 시대인 거잖아요.
은호\t그렇지 않아요.
사이
범순\t…….
은호\t다들 그런 것만 쓴 게 아니라, 그렇게 쓴 것만 남은 거잖아요.
범순\t…….
은호\t누군가는 그 당시에도 분명히 자기가 원하는 걸 썼을 거예요. 시대의 분위기나 ‘문학이라면 자고로 이래야 한다’ 하는 것들에 억지로 맞추려고 안 하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쓴 건 잘 쓴 문학이 아니라고, 혹은 중요한 사람이 쓴 게 아니라고 여겨지니까 기록에 안 남고. 그니까 저희는 지금도 이런 거 하는 거잖아요. 누군가 버리고 남겨놓은 것만 하는 거예요.
사이
범순\t똑똑하네요, 은호 씨는.
「콜타임」에서
예수\t(자신 없이) 안 헤어지면 안 될까.
혜인\t…….
예수\t기도해봤는데…….
혜인\t…….
예수\t때가 아니라고 하셨어.
혜인\t…….
예수\t…….
혜인\t(힘없이, 체념에 닿은 듯) 때가 아니라고 하셨어?
예수 \t응.
혜인\t예수야.
예수, 말없이 혜인이를 본다.
혜인\t넌 가끔 하나님을 이용해. 난 그렇게 느껴.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에서
성우\t얼마지?
연경\t33만 원인가 그래. 미친 거 아니냐, 33만 원. 나 한 달 용돈 5만 원이야.
성우\t야, 제주도는 비행기만 해도 20만 원이야.
연경\t아니? 우리 사촌 언니가 제주도 갔는데 비행기로 왕복 4만 9천 원에 갔다 왔다 그랬는데?
성우\t구라 까지 말라 그래.
연경\t아닌데? 사촌 언니 구라 아닌데?
성우\t그런 거 없거든?
연경\t아니거든? 있거든? 여튼 엄마한테 존나 미안했어. 비싸서.
성우\t어. 엄마가 돈 주면서 손 벌벌 떨린다고, 왜 제주도까지 가냐 그랬어. 경주나 가지, 씨발 애들을 제주도까지 보낸다고.
연경\t니네 엄마 욕해?
성우\t어. 욕 맨날 해. 입에 걸레 물었어.
사이
연경\t너 제주도 가봤어?
성우\t아니.
연경\t처음 가는 거야?
성우\t어.
연경\t난 가봤어. 중1 여름방학 때 엄마랑 오빠랑 갔었어.
성우\t좋겠네.
연경\t너 제주 흑돼지 먹어봤어?
성우\t아니.
연경\t장난 아니야. 존맛.
성우\t흑돼지 제주에서만 파는 거 아니야. 마트 가면 다 팔아.
연경\t제주도에서 먹는 거랑 같냐?
성우\t그래도 안산에도 제주 흑돼지 파는 데 있어. 나 그런데서 많이 먹어봤는데?
연경\t나 그리고 회도 먹었어. 바다 보면서.
성우\t좋겠네.
연경\t어, 진짜. 개꿀이었어.
성우\t근데 배 타면 더 싼 거 아니냐?
연경\t몰라, 올 때는 비행기 타잖아.
성우\t비행기 타는 거였어?
연경\t몰랐냐?
성우\t아, 맞다.
사이
성우\t그래도 우리 엄마 착해.
「오십팔키로」에서
이레\t내가 써줄까?
현신\t뭐?
이레\t니 반성문……. 나 잘 쓸 수 있는데.
현신\t뭔 개소리야. 니가 왜 내 걸 써?
이레\t어차피…… 학교에서 좋아하게 쓰면 되는 거잖아. 너, 이번에 잘 안 되면 퇴학당하는 거 아니야? 벌점도 엄청 쌓였다고……. 동생이랑 너랑 세트로…… 대박이네.
현신 닥쳐라.
사이
현신\t글씨체는?
이레\t내가 불러줄게. 니가 받아 적어.
사이
현신은 도무지 이레의 의중을 모르겠다.
현신\t너 왜 이러냐?
사이
이레\t너, 졸업하고 싶어?
현신\t아 씨발, 최꼬추부터 시작해서…….
이레\t(말 끊으며) 대학 갈 거야?
현신\t왜?
이레\t대답해봐, 갈 거야? 대학?
현신\t갈 거야.
이레\t왜?
현신\t대학은 나와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이레\t어디 갈 건데? 이름도 모르는 지잡대? 돈만 내면 가는 데?
현신\t닥쳐.
이레\t그럼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빵셔틀이나 하는 한심한 애랑 종일 거울만 보는 못생긴 애랑 놀다 인생 쭉 말아먹으려고?
현신\t셋 셀 때까지 닥쳐라. 아님 너 이빨 털린다. 하나.
이레\t난 너처럼 막 사는 애들 보면 되게 신기했었어. 뭐 믿는 데가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난 돈도 빽도 없어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취직해서.
현신\t둘.
이레\t(멈추지 않고) 잘 먹고 잘살 생각이거든. 너랑 니 동생까지 학교에서 짤리면 니네한테는 절대 오지 않을 미래겠…….
현신\t셋.
현신, 이레를 때려 바닥에 넘어뜨리고 얼굴을 발로 밟는다.
이레\t(현신에게 밟힌 채) 나 좀 도와줘.
「바람직한 청소년」에서
명진\t없어져야 해.
주정\t뭐?
명진\t아빤 죽었고, 우리도 이 꼴 났는데 그 사람이 잘 사는 건 법이 아니야. 그건 뭔가 인륜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아요, 엄마? 아니, 억울하잖아.
주정\t미쳤구나.
명진\t나 하루에 스티커 4800개 붙여요, 엄마. 우리 조 완품 대비 불량률 0.002퍼센트다? 내가 11년째 스티커 붙인 아줌마보다 더 빨리 붙여. 어제도, 눈깔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그 수염 안 깎는 부장이 오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러는 거야. ‘명진이, 일 잘하네?’ 그런데, 엄마, 웃긴 게 뭐냐면. 내가, 내가 너무 기쁜 거예요. 마음이. 얼마나 기뻤으면, 그토록 기뻐하는 나를 죽여버리고 싶더라니까? 이젠 내 기쁨이, 고작 스티커 잘 붙였다고 변태 부장이 머리 쓰다듬어주는 데서 오는 거야. 누가 날 이렇게 별거 아닌 인간으로 만들었어? 대체 누가…….
참담한 모자.
긴 사이
주정\t나 얼마 전에 마트에서 우연히 그 사람 봤다. 마누라랑 장 보러 나왔나 보더라. 둘이 같이 내 옆으로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렸어. 나 볼까 봐. 제일 싼 우유 고르는 나 볼까 봐……. 숨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닌데.
사이
주정\t만약에, 만약에 그 사람이 없어지게 된다면……. 너, 그 사람 없어지면······.
명진\t나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엄마, 나 기쁠 거예요.
주정\t우리 그럼, 좀 편해질까?
「가족오락관」에서
서문
콜타임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오십팔키로
바람직한 청소년
가족오락관
리뷰|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고 김병운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