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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주홍 글자 - 큰글자 세계문학컬렉션 53

나다니엘 호손 저 | 살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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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43447 / 192쪽 / 365g / 189 x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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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법과 윤리,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작품 『주홍 글자』 미국 문학도 크게 보면 서구 문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미국 문학은 우리가 이제까지 섭렵한 서구 문학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리고 미국 소설의 원조로 인정받고 있는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주홍 글자The Scarlet Letter』는 미국 문학의 그러한 특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 여러 나라의 각축장이 되었고, 그 가운데 북아메리카가 그 각축장의 중심에 있게 된다. 그 결과 미국은 다분히 다민족 국가의 성격을 띠게 된다. 하지만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데 주축이 된 것은 아무래도 최초로 아메리카 동부에 터를 잡은 영국 이주민들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영국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된다. 하지만 미국은 핏줄이 영국과 이어질지 모르지만 영국과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세운 나라다. 미국 건국의 시조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던 구대륙에서 몸만 탈출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들과 연결된 탯줄을 끊으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당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영국의 영광과 화려함을 새로운 땅에서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구약에 나와 있는 모세의 영광의 탈출이 역사 속에서 재현되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신대륙에 정착한 게 아니라 그 신대륙을 신천지로 만들기를 꿈꾸었다. 그러자면 당연히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제도가 필요했고, 새로운 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윤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청교도 정신이었다. 청교도는 물론 기독교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이기도 하다. 우리가 청교도로 옮긴 단어의 원어는 ‘프로테스탄트’다. 지금은 기독교 구교도와 대립되는 신교도 정도로 번역하고 있지만 본래의 뜻은 ‘반항하는 사람’ ‘항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영국의 영광과 화려함을 전면 부정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반항의 길을 택했는데, 이것이 이들의 종교?윤리?법?제도?정신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핏줄이 다른 사람들을 맺어주는 새로운 핏줄이 되었다. 우리가 『주홍 글자』에서 읽을 수 있는 청교도 정신은 서슬이 시퍼렇게 엄숙하고 엄격하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니 가혹할 정도로 엄격할 수밖에 없다. 헤스터가 감옥에서 나와 처형대로 향할 때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한 아낙네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당시의 청교도 윤리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한마디로 근검절약하며 죄를 짓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놀고먹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일단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일한 만큼 벌어라!’ 이게 첫째 원칙이다. 그 원칙에 맞게 열심히 일을 하니 소득이 많다. 그러나 근면과 더불어 검소함과 절약이 미덕이니 벌어들인 돈을 펑펑 쓰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돈이 쌓인다. 그 돈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자본’이다. 자본이 쌓이니 자본주의가 저절로 생긴다. 재미있지 않은가? 적어도 미국의 경우 자본주의는 탐욕의 소산이 아니라 근검절약의 소산인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미국 자본주의를 낳게 한 기본 정신이 그렇다는 것이지, 자본주의가 언제나 근검절약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돈에는 원래 그 자체 탐욕의 속성이 내재되어 있어서 그런 순결함을 금세 잃게 마련이다. 그런 사전 지식을 갖추고 작품을 다시 읽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작품의 무대는 17세기 중엽 매사추세츠만(灣)의 보스턴이다. 영국에서 온 이주민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시기인 것이다. 즉 청교도 윤리가 엄격하게 확립되어 가던 시기다. 당시의 관점으로 본다면 간음을 범하고 사생아를 낳은 헤스터 프린은 극형에 처해야 하는 중범죄자다. 그녀는 극형은 면하지만 평생 가슴에 ‘주홍 글자’를 달고 다녀야만 하는 처벌을 받는다. 그것은 이런 범죄는 절대로 이들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그 사회에서 소외된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그런 형벌을 내린 재판부가 그녀가 다른 곳에 가서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다른 곳에 가서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달지 않은 채 얼마든지 새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청교도 사회의 엄격함은 그곳 뉴잉글랜드만의 고유한 특성이지 결코 보편적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이 편협하다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자신들은 선택된 존재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은 죄를 짓고도 버젓이 살아갈 수 있는 타락한 곳이지만 이곳만은 순결한 곳이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신천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을 종교와 법률과 윤리의 이름으로 엄격하게 실현하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타락한 자는 얼마든지 타락한 곳에 가서 살아도 된다는 뜻이다. 헤스터 프린과 딤스데일 목사는 한때, 이곳을 벗어나 유럽 땅으로 돌아가 새롭게 살겠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딤스데일 목사는 목사로서의 영광이 절정에 달했을 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죽고, 딸과 함께 다른 곳에 가서 살던 헤스터 프린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목사 옆에 나란히 묻힌다. 왜 그들은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가서 버젓이 살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을까?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될 텐데 그러지 않았을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그리고 자연에는 그 자체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자연을 사랑하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연스러운 본능을 처벌하고 억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일 수 있는가? 인간들이 세운 인위적인 윤리가 어떻게 그렇게 절대적인 권능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작가는 그 질문을 통해 청교도 사회를 탄핵하지는 않는다. 만일 딤스데일 목사와 헤스터 프린이 뉴잉글랜드를 탈출해서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다면 청교도의 땅은 작가에 의해 처형당한 불모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딤스데일 목사와 헤스터 프린을 유럽으로 보내지 않고 이곳에서 죽게 만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은 것은 이곳을 사람들이 살 만한 곳, 청교도 정신이 살아 있는 신천지를 이들도 함께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헤스터 프린은 죄를 범하고 고통을 겪은 바로 이 땅으로 속죄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리고 그 속죄의 징표를 스스로 가슴에 단다. 그리고 힘들고 슬픈 일을 겪은 여자들에게 구원의 말을 해주면서 헌신적인 삶을 산다. 그러자 주홍 글자가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의 징표에서 존경의 징표로 바뀐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던진 진지한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작가가 강력하게 항의한 청교도의 윤리가 실현되고 있는 그 땅을 진공 청소된 불모의 땅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준다. 국가 차원에서 엄격한 윤리와 법률이 존재하는 곳, 청교도 정신이 실현된 곳이면서 동시에 그 정신에 의해 마침내 억압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본능이 절멸되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작가가 꿈꾼 것이다. 작가의 그 꿈에 동참하면서 우리도 법과 윤리의 문제,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행복이라는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언제고 계속될 수밖에 없는 그 질문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던져봐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좀 더 사람다운 사회로 만들기 위해 언제고 던져야만 하는 그 질문!

저자 소개

  • 저자 : 나다니엘 호손
저자 : 나다니엘 호손
1804년 7월 4일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독실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집안의 성이 호손(Hawthorne)이 아니라 헤이손(Hathorne)이었는데, 1659년 조상인 윌리엄 헤이손이 퀘이커 여신도들을 학대한 것을 수치로 여겨 호손 본인이 ‘w’자를 삽입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 학업에서는 탁월하지 못했으나 벌써 영국의 위대한 문학에 비길 만한 미국 문화 창조라는 야망에 불타서 열심히 집필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12년간 호손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광범위한 독서와 습작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적인 배경과 그 정신적 기질을 탐구해 자신 속에 배어 있는 청교도 정신에 대한 비판 정신을 키웠다. 그의 데뷔작은 ≪팬쇼≫란 소설인데, 1828년 익명으로 자비 출판했으나 뒤에 미숙한 작품임을 깨닫고 모두 수거해 파기해 버렸다. 이후 한동안 단편에만 손을 대 초창기에는 주로 익명이나 가명으로 신문, 잡지 등에 기고했다. 1837년에 12년간의 은둔 생활 동안 쓴 단편들을 모은 우화적 단편소설집 ≪두 번 하는 이야기들≫을 친구인 호레이쇼 브리지의 주선으로 출간했다. 이 단편집이 롱펠로가 천재라고 극찬한 논평을 위시해 문학계의 호평을 받게 되어 바깥 세상에 작가로서의 명성을 처음으로 알렸다. 1850년에는 그의 유명한 ≪주홍 글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호손에게 문학적·재정적 성공을 안겨 주었다. 이어서 1851년 ≪일곱 박공의 집≫을 출간했고, 이듬해에는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와 ≪눈사람과 다른 두 번 하는 이야기들≫을 선보였다. 1860년에 ≪대리석 목양신≫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이탈리아라는 이국을 배경으로 죄를 통해 지성과 양심의 깨달음을 경험하면서 성숙해 가는 한 인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1857년 호손은 유럽 각지를 여행한 후 1860년에 귀국했다. 이후 1864년까지 웨이사이드에서 집필을 계속하면서 영국의 풍경, 생활 풍습 등을 스케치풍으로 그린 작품들을 발표해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점차 창작력과 건강이 쇠퇴해, 1864년 뉴햄프셔를 여행하던 중 5월 19일 플리머스에서 60세를 일기로 객사했다.

역자 : 진형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장, 세계상상력센터 한국 지회장, 한국상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로, 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서 한국이 주빈국이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성공적으로 주관하며 한국문학과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지은 책으로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등이 있다.

목차

1 감옥 문 앞
2 인정
3 면담
4 바느질하는 헤스터 프린
5 펄
6 총독 저택 방문
7 의사
8 딤스데일 목사
9 헤스터 프린
10 숲속에서
11 환희의 빛, 그리고 어두운 전조
12 혼돈 속의 목사
13 경축일
14 드러난 가슴속 주홍 글자
15 결말

『주홍 글자』를 찾아서
『주홍 글자』바칼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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