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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4478608 / 240쪽 / 416g / 15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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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엄혹한 유신 군사독재 시절 일본에서 「세까이」(世界) 잡지에 15년간 ‘TK생’이라는 필명으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기고문을 썼던 지명관 선생(1924. 10. 11.∼2022. 1. 1.)의 1주기를 맞아 추모 문집을 펴낸다. 당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국내 외의 여러 운동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지명관 선생을 비롯한 국외에서 활동한 민주화운동 세력도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의 민주화운동은 한국과의 지리적인 근접성을 활용하여 국내와 해외의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이를 다시 국내외 민주화운동 단체들에 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명관 선생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과 횡포, 그로 인해 일그러진 한국 사회와 국민의 참상을 일본을 비롯한 해외 여러 국가에 알리고, 또 한국 내에서 이에 대한 일련의 저항 세력과 그 활동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더 나아가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현실을 폭로하고 이에 맞선 한국인의 민주화 의지와 운동을 소개함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 국제 사회에 이해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민간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명관 선생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은 이런 저항적 운동에만 있지 않았다. 마침내 한국에서 민주화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을 때도 지명관 선생의 역할이 있었다. 비정상적인 밀월관계에 있었던 유신-5공화국 시절이 지나자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불편한 관계가 악화되며 증폭되었고, 나아가 파국을 치닫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악화일로의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해법이 막연한 시점에 지명관 선생은 ‘일본학’을 연구하는 기관을 한림대학교 안에 설치하고, 한국 정부가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하는 조치를 취하게 하는 등 한일관계에 대한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을 내리는 데 앞장섰다. 이로 인해 시기상조의 이상주의자니, 변절자니, 신 매국노이니 하는 비판과 비난도 들어야 했다. 회고해 보면, 역사적으로 볼 때 한일관계가 가장 건전하게 정립된 때가 바로 이때였다.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담화와 위안부 피해에 대해 사과한 고노담화를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대중문화의 선제적 개방 조치는 많은 우려를 거슬러 오히려 문화의 상호교류를 연착륙으로 이루어냈고, 작금의 시점에서 보면 한국 문화의 일본 유입과 영향력의 확대가 훨씬 많아진 상황이다. 이 책 『TK생 지명관 “아시아로부터의 통신”』은 1972년부터 20년을 일본에서 칼럼니스트로, 대학 교수로 살면서 많은 일본의 문화계, 정계, 교육계, 종교계의 사람들과 교류했던 지명관 선생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추모했던 일본인들의 추모 모임이 모체가 되었다. 곧, 2022년 5월 14일 도쿄 도미사카그리스도교센터에서 모인 “지명관 추도 (온라인)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했던 이 책의 편/역자인 서정민 교수를 비롯한 몇몇 한국인들도 참여했다. 이 모임을 마친 후 당시의 모임에 참여하고, 선생과의 추억을 회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다시 받고 편집하여 『池明先生追悼文集』이라는 책으로 발간하였다. 일본에서 만든 이 책은 비매품 도서인데, 모임 주최 측의 양해를 받고 그 책에 실린 글과 그림들을 본서에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그리고 거기에다 한국에서 지명관 선생과 함께 활동하거나 개인적으로 교류했던 여러 사람의 글을 추가하여 책을 꾸미게 되었다. 또 선생의 서거 직전에 머물렀던 양평의 거주지의 소탈한 일상이 담긴 사진을 비롯하여 미공개된 사진을 한국의 저자들로부터 제공받아 화보집을 만들었다. 이 책의 출간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TK생’으로 살다가, 민주화된 한국 사회 속에서는 한일관계의 진정한 가교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였던 지명관 선생의 1주기에 그의 삶과 생각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TK생 지명관에 대하여 1924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김일성대학에 제1회로 입학했다. 1947년 월남한 뒤 한국전쟁에 통역 장교로 참전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와 「사상계」의 주간으로 활동하며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펼치다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74년~1993년 일본 도쿄여자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73~1988년 ‘TK생’이라는 필명으로 일본의 대표적 지성지 「세까이」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하며 엄혹한 군사통치와 민주화투쟁을 전세계로 알리는 한편, 일본을 거점으로 국제적인 연대운동에도 힘썼다. 20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1993년 귀국해 한림대학교 석좌교수와 일본학연구소 소장,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자신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의 숨은 필자임을 밝혀 한일 양국에서 큰 화제를 낳았다. 책 속에서 지 선생님은 그의 저서 제목이 말해주듯 ‘경계를 넘는 여행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정의롭지 못하고 국가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분단과 전쟁을 겪고, 군부 독재와 저항하면서 지낸 그의 삶에서 아마도 이 질문은 실존적인 질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 갇히지 않고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언제든지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행동하는 자유인으로 일생을 보내게 하는 철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_ 이기호, “지명관(池明觀) 선생님을 추모하며” 중에서 민중사를 중시한 선생님의 가슴 속에는 ‘제국’과의 싸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일본제국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태어나 해방 후 스탈린의 소련이 보낸 김일성의 통치를 거부하고 남쪽으로 피난합니다. 공산주의를 내건 또 다른 ‘제국’에 의한 압정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이윽고 한국에서 박정희 독재 정권의 박해를 받아 일본에 ‘망명’, 15년간에 이르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제국의 암반, 곧 바위벽’에 도전하는 지식인, 종교가, 시민이 연대해 정으로 구멍을 뚫는 싸움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더 나아가 “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한국과 일본의 시민 사이에서 서로 돕는 시대를 처음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이 세계의 여러 나라와 한국 시민들과 관계를 형성하여 한국민주화운동을 격려했다”라고 한일 연대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_ 오다가와 코우, “‘제국’의 바위를 뚫는 싸움” 중에서 지금 돌이켜 보면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해방, 분단, 월남, 한국전쟁, 군사 독재,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격동기를 살아온 지 선생의 생애 자체가 한국 현대사였습니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군사 독재의 실상을 세계에 알려 국제 여론을 환기시킨 지 선생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 선생의 진면목은 기득권에 영합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지식인의 사명에 충실했던 지사였습니다. _ 이종구, “시대적 과제에 충실했던 지식인” 중에서 2003년 ‘TK생’은 지 선생이었다고 신문 보도로 알았을 때는 놀랐습니다만, 동시에 계속 안고 있던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일한국 ㆍ 조선인의 인권 획득을 위해 뛰어다니시던 아버지였지만 한국의 박정희 군사정권과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인권’에 대해 항상 말하던 아버지가 왜 ‘민주화 투쟁’에 관여하시지 않았는지 수수께끼였습니다. 하지만 지 선생님이 ‘TK생’이었던 것을 알았을 때, 드디어 아버지가 침묵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의 출판의 방해가 되는 위험을 피하고 또 거기에 관련된 사람과 지 선생님의 동향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아버지는 일체 한반도 정세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하고 계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1970년대 이후 쇼지 츠토무 목사와 부인 노츠코 씨로부터도 친가에 자주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2003년이 되어 쇼지츠토무 목사와 노츠코 씨는 “실은 한국에서 일본에 귀국할 때 입고 있던 옷 속에 자료나 편지를 숨겨 지명관 선생에게 가져다주었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때 드디어 한일 그리스도인들의 우직한 연대와 우정을 알았고 지금도 그것을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_ 최선애,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중에서 지명관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멀리 떠나신 지도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의 스승과 이별하는 일, 더구나 저 자신에게는 한국과 일본을 함께 살아가는 삶과 학문 그리고 신앙의 원형으로서 선생님의 존재는 대단히 큰 것이었기에 그 아픔은 더하였습니다. … 지명관 선생님의 학자로서의 연구 업적에 대한 저술의 총정리나 선생님의 활동, 즉 한일 관계와 한국민주화운동 공헌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평가 등은 후일을 기약하더라도 우선은 선생님과 남은 이들이 이별한 후 선생님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선생님 1주기에 맞추어 책으로 펴내어 함께 읽고자 하는 뜻을 여기에 모은 것입니다. _ 서정민(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 〈머리말〉 중에서 남겨진 선생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여기에 모인 분들과 함께 선생님의 뜻, 자유 ㆍ 정의 ㆍ 평화 그리고 한일의 진정한 화해와 우호를 계승해 나가는 것을 다짐하고 싶습니다. _ 오카모토 아츠시(이와나미서점 전 대표이사 사장), “지명관 선생님을 기리며” 중에서 한일 관계 개선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획기적 사건으로는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이어 1998년 김대중과 오부치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여기엔 지명관 교수님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_ 이삼열(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지명관 선생님을 추모하며” 중에서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지 선생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큰 은혜를 깊이 감사드림과 동시에 선생님이 이어주신 여러분과 속한 나라나 종교를 넘어서서 시민들 간의 우의와 교류를 한일 간에 한층 더 깊게 하며, ‘도미사카’가 해나가야 할 일을 바로 지금 여기 현장에서 실행하는 제 역할을 다해 나가고 싶습니다. _ 오카다 히토시(도미사카그리스도교센터 총주사), “동북아에서 기독교회의 사명” 중에서
화보로 보는 지명관 선생의 삶
머리말
1부 _ 선생과의 추억
안재웅│지명관 선생
오카모토 아츠시│지명관 선생님을 기리며
최종고│회상의 지명관 선생님
세키다 히로오│지명관 선생님의 ‘침묵’
이삼열│지명관 선생님을 추모하며
오카다 히토시│동북아에서 기독교회의 사명
이만열│지명관 선생을 추모하며
─ 민주화와 통일, 세계 평화를 위해 지성인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다
고토 마사코│한일여성연대의 문을 연 ‘작은 승리’
이기호│지명관(池明觀) 선생님을 추모하며
다카사토 스즈요│오키나와의 지명관 선생
이부영│일본 망명을 결행하신 지명관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즈카 타쿠야│그저 죄송하다는 말과 감사의 마음뿐
김성재│존경하는 참다운 지성인 지명관 선생에 대한 회상과 추모
츠지 미노루│슈나이스 부부의 공헌을 생각하며
신광영│한국과 일본을 넘어서
마에지마 무네도시│남북정상회담의 날에
서정민│‘한일’을 살아가는 내 삶의 모형이신 선생님
오다가와 코우│‘제국’의 바위를 뚫는 싸움
─ 한일 시민연대에 미래를 맡기다
2부_ 선생을 기리며
〈추모 설교〉 카이노 노부오│저 멀리 희망을 바라보며
김경(金耕)│지명관 선생님은 그렇게 떠나가셨다
야마구치 마리코│‘TK생’과의 6년 반
이종구│시대적 과제에 충실했던 지식인
오쿠라 야요이│도대체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라는 관점
김흥수│지명관 선생님과 기독교사상
후지타 히데히코│통곡하신 지 선생님
양재섭│1970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을까?
니시무라 미키코│영혼을 흔드는 수업
박광수│다음 역사의 창조에 계속 도전한 평생
카지 미노리│잊을 수 없는 따뜻한 시간
이청일│교회에 던져진 질문
츠부라야 야요이│30년 만의 재회 후
김성제│신뢰를 회복하는 경계인으로 ‘재일 교포’라는 존재
쿠라하시 요코│1970년대 독서회
영혜 서 휘트니│한국 민주화 연구를 통한 만남
쿠라모치 카즈오│‘교회’ 속의 ‘교회’
김승복│마치 ‘지도 교수’처럼 간절히
야마모토 토시마사│‘경계선을 넘는 여행’의 끝을 아쉬워하며
최선애│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요시모토 유키오│실낱같이 작은 자에게
쿠마모토 신이치│‘살아남는 자의 책임’ 공유하기에 앞서
나나세 아유코│한국 아빠
후루카와 미카│지 선생님의 ‘웃음’
기타노 류이치│‘추모 모임’ 소회
후루타 세츠코│선생님을 통해 ‘한국’을 만나
히구치 요코│권해주신 세 권의 책
〈추모사〉 (사)기독교민주화운동재단 회원 일동
〈지명관 선생 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