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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406245 / 296쪽 / 335g / 130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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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긴 지켜봄이 담담한 이해에 닿는 순간
사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
피 여사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이인은 피 여사를 보살피며 한때 자신을 기른 한 여성의 삶을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생전 처음으로,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글로 적는다. 작가는 한 여성이 살아온 백 년의 삶을 듣고 기록한다.
피 여사의 삶은, 가난한 여성이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은 기록이다. 피 여사는 1925년에 태어나 겨우 소학교를 졸업했지만,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십 대의 나이에 공장에서 일했다. 1944년 태평양 전쟁이 격화되자 스무 살에 낯모르는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은 가족을 돌보지 않는 마약쟁이였고, 한 집에 첩을 두었고, 한국전쟁 때 학살당했다. 피 여사는 두 아들을 데리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지만,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피 여사는 세 아이를 더 낳고 비참한 삶을 견뎠다.
어느 날, 피 여사가 울부짖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4시였다. 여명의 새벽녘에 아흔을 넘긴 노파가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면서 구슬프게 흐느꼈다. 피 여사는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들먹이면서 오열하고 있었다.
피 여사의 주변으로 슬픔의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서글픔과 서러움으로 뒤엉킨 어둠이었다. 어둠을 걷어내려 손을 뻗다가 주춤했다. 저렇게 슬퍼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설프게 손을 내미는 건 오히려 더 비참하게 만드는 일 같았다. 피 여사가 충분히 울도록 그저 바라보았다. (49쪽)
피 여사도 한때는 직접 거동하며 자식과 손자를 돌보았다. 하지만 피 여사는 삶을 혼자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눈이 침침해졌고,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잇몸에서 피가 나고, 이가 시렸으며, 밥 먹을 때는 입이 말라 음식이 영 까끌까끌했지만 잘 때는 침을 흘렸다. 골다공증이 생겼고, 근력이 약해졌고, 소화가 안 됐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았고, 변비에 걸렸고, 요실금에 시달렸고, 오십견이 생겼다. 허리를 삐끗했고, 무릎에 염증이 찼고, 삭신이 쑤셨고, 팔이 저렸고, 목이 욱신거렸고, 호흡이 가빠왔고, 검버섯이 생겼고, 심장이 안 좋아졌다.
일흔 살 딸과 마흔 살 손자는 피 여사의 하루에 삶을 맞추기 시작한다.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는 피 여사를 위해 성인용 기저귀를 구입하고 외출은 한 번에 한 사람만 했다. 어느 날부터 손자는 피 여사가 낮잠을 자지 않고 밤에 푹 잘 수 있도록 몰래 두유에 커피를 타 넣고 낮에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렇게 피 여사와 함께 사는 법을 익혀 나갔다.
\"지금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병 이름이 뭐라고 했죠?\"
\"보루네오.\"
뜬금없이 피 여사는 보루네오라고 답했다. 과거에 각인된 가구 브랜드 보루네오가 코로나와 발음이 비슷해서 헷갈린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물으면 피 여사는 스리슬쩍 눈치를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전염병 이름이 뭐라고요? 맞춰봐요. 코로 시작해요.\"
\"코, 코, 코브라.\"
피 여사의 답에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289쪽)
손자는 할머니를 돌보며 비로소 작가가 된다. 삶을 이야기로 적는 사람이 된 것이다. 피영숙의 삶을 이해하며 작가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을 한 가지 배운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안에 행복이 있다는, 단순하지만 놓치기 쉬운 사실.
피 여사가 밥 잘 먹고 침대에 누웠을 때 행복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뜻밖에 피 여사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여사와 내가 옆에서 챙기는 게 고마워서 한 말이겠으나, 피 여사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답변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안에 행복이 있다. (295쪽)
(* 제목에 쓰인 백수는 놀고먹는 사람을 뜻하는 백수白手가 아니라 아흔아홉 살을 뜻하는 백수白壽에서 가져왔다.)
추천의 글
들어가며
1부 할머니와 손자
우리는 모두 늙는다 | 주저앉은 피 여사 | 보행기를 끌게 되다 | 그나이에 틀니가 가당키나 하냐 | 거울 앞에서 빗질하는 노인 | 혹시나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 오랜만의 외출 | 노인들은 금세 친해진다 | 인절미와 시장표 김 | 용건이 있어야 전화를 거니? | 나 안 보고 싶었어? | 전화교환원과의 갈등 | 이웃집 노인의 자식 자랑 | 텔레비전이라는 은인 | 드라마에 몰입하다 | 사자와 하이에나 | 개와 고양이 | 보고 있으면 몸이 후끈후끈해져 | 비공식 국가 대표 응원단장 | 바보가 되는 것보다 무서운 것 | 은으로 만든 빗 | 층간 소음과 효녀 효자들 | 모두 각자의 노후 | 치즈에 눈을 뜨다 | 타인과 함께 먹는 법 | 암묵의 통행금지 | 비타민이 필요해 | 과일 사계절 | 골드키위와 그린키위 그리고 망고 | 최애 생선 | 연어라는 행복 | 배고프지 않으려는 인간 | 가깝지만 가장 먼 | 모녀, 해묵은 애증의 관계 | 가족끼리 잘 지내기란 | 장편소설 같은 파란만장
2부 피 여사
할머니 덕분에 살았다 | 학교에 가고 싶어서 | 일자무식에서 벗어나다 | 강제징용된 남동생 | 남자가 덩치가 있고 키가 커야지 | 예쁘고 아름다운 새색시 | 행복과 고통의 총량 | 연이은 조카들의 죽음 | 콩가루 시댁을 향한 원망 | 모난 성격은 모진 세월의 반영 | 똑똑지 못한 빨갱이 | 미우나 고우나 하나였던 | 이북 남자의 편지 공세 | 니가 도망가면 일본을 가겠냐 중국을 가겠냐 | 온전치 못한 환대 |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이 | 밑도 끝도 없는 폭력 | 승냥이를 피해 호랑이 굴로 | 눈 좀 밝게 해주세요 |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 젊은 사람들보다 더 빨리 뼈가 붙었다 | 사돈어른과의 어색한 오후 | 사라진 손자 | 헐벗은 가슴으로 상처를 끌어안고 | 미래를 향해 쏜 화살 |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불화가 필수 |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 피 여사의 자식들 | 셋째 아들과 막내아들 | 내 처지가 지옥 같더라도
3부 가족
이유를 따지자면 핏줄 | 가족이라는 울타리 | 시커멓게 캄캄한 밤 |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려면 | 나이가 들수록 비보는 늘어난다 | 인간은 받은 걸 결코 잊지 않는다 | 단출한 장례식 | 미움으로 삶을 소진하지 않기를 | 엄마가 처음이라 | 말없이 눕다 | 어머니, 나 좀 데려가요 | 들리지 않는 신음과 절규 | 미장원에 가자 |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 전염되는 우울 | 마음에 드리운 장마전선 |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엉엉 | 오랜 병에 효자 없다 | 도둑맞은 하루 | 수렁으로 빠져들다 | 뼈만 남은 엉덩이 | 현실도피 | 백 세까지 살기를 바랐지만 | 심야의 불침번 | 악마의 히죽임 |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요하게 | 내가 언제 자는 거 봤냐 | 아기가 된 할머니 | 고통을 마주하는 힘 | 스스로 매듭짓는 일 | 내가 없는 날 | 지금 행복해요? | 내가 죽길 고사 지내는 거냐 | 코알라와 두바이 |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