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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범우문고 1

편 저 | 범우사 | 1995년 11월

수필 - 범우문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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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08060012 / 180쪽 / 95g / 103 x 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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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의 과거를 사는 데 있는 가 한다. --- p. 128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그는 서화에 능하고 거문고는 도(道)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 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 p.66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들이 후원이었다. 그러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인가 한다. 광해군은 눈이 혼탁하여 푸른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요, 새소리도 귀담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숙종같이 어진 임금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아 그 향기로운 풀 냄새를 인식하지 못하였을 거다.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뿐이랴.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분수가 있는 광장, 비둘기들, 무슨 애버뉴라는 고운 이름이 붙은 길, 꽃에 파묻힌 집들, 그것들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순간 다 나의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 나의 소유물이다. 주인이 일년에 한 번 오거나 하는 별장은 그 고요함을 별장지기가 향유하고, 꾀꼬리 우는 푸른 숲은 산지기 영감만이 즐기기도 한다. 내가 어쩌다 능참봉을 부러워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오는 것이다. 은퇴도 하였으니 시골 가서 새소리나 들으며 살까도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꾀꼬리 우는 오월이 아니라도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우산을 받고 비원에 가겠다. 눈이 오는 아침에도 가겠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 p.41 비 오는 오월 어느 날 비원에 갔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주말도 아니어서 사람이 없었다. 비원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 숲이 울창하여 산소 같은 데가 있다. 빗방울이 얌전히 떨어지는 반도지 위에 작고 둥근 무늬가 쉴 새 없이 퍼지고 있었다. 그 푸른 물위에 모네의 그림 수련에서 보는것과 같은 꽃과 연잎이 평화롭게 떠 있었다. 꾀꼬리 소리가 들린다. 경쾌한 울음이 연달아 들려온다. 꾀꼬리 소리는 나를 어린시절로 데려갔다. --- pp. 39~40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엄마와 나는 숨기 내기를 잘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를 금방 찾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오래 있어야 나를 찾아냈다. 나는 다락 속에 있는데. 엄마는 이 방 저 방 찾아다녔다. 다락을 열고 들여다 보고서도 '여기도 없네'하고 그냥 가버린다. 광에도 가보고 장독 뒤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하도 답답해서 소리를 내면 그제서야 겨우 찾아냈다. 엄마가 왜 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는지 나는 몰랐다. 엄마와 나는 구슬치기도 하엿다. 그렇게 착하던 엄마도 구슬치기를 할 때는 아주 떼장이었다. 그런데 내 구슬을 다 딴 뒤에는 그 구슬들을 내게 도로 주었다. 왜 그 구슬들을 내게 도로 주는지 나는 몰랐다. --- p.68

저자 소개

  • 저자 : 편
저자 : 피천득
1910년 5월 29일 지금의 서울 종로에서 가죽신을 만들어 팔던 아버지 피원근(皮元根)과 어머니 김수성(金守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피천득이 태어나던 당시 부친 피원근은 한성(漢城)의 중심부, 즉 지금의 종각에서 종로 5가에 이르는 지역을 포함해 상당히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구한말의 거부(巨富)였는데, 피천득의 나이 여섯 살(1916) 때 사망하였다. 아홉 살 때 모친마저 세상을 뜬 이후 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모친을 여윈 1919년, 서울 제일고보 부속국민학교에 입학해 1923년 4학년을 수료하고, 같은 해 서울제일고보에 입학해 1926년 졸업했다.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을 지닌 ‘금아(琴兒)’는 유년기부터 피천득의 집안과 교류가 있었던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호이다. 춘원의 권유로 16세 때인 1926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공보국중학교(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서 수학했는데, 이 무렵 평생의 정신적 스승이 된 도산 안창호를 만나게 된다. 1929년에는 상하이 후장대학(?江大學) 예과에 입학하고 이듬해인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처음으로 발표한 뒤 <소곡>(1931), <가신 님>(1932), 그리고 수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나의 파일>(1934)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1931년에는 후장대학 영문과에 진학해 1937년 졸업한 뒤 귀국해서 미국계 석유회사 스탠다드오일사에 잠시 근무했다가 경성중앙상업학원 교사로 부임한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를 거쳐 1946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시를 강의했고, 1954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2007년 5월 25일 향년 9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선생은 1947년 ≪서정시집(抒情詩集)≫(상호출판사), 1959년 ≪금아시문선(琴兒詩文選)≫(경문사), 1969년 문집 ≪산호(珊瑚)와 진주(眞珠)≫(일조각), 1976년 수필집 ≪수필≫(범우사)을 출간했고 같은 해 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정음문고)을 번역·간행했다. 1980년에는 그간 발표한 산문과 시를 선해서 ≪금아문선(琴兒文選)≫과 ≪금아시선(琴兒詩選)≫(일조각)을 출판했고, 1993년에는 시집 ≪생명≫과 ≪삶의 노래≫(동학사), 1996년에는 수필집 ≪인연≫(샘터), 1997년에는 <피천득 문학 전집>, 2001년에는 영문판 시 수필집 ≪A Skylark≫(샘터)을 간행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1), 인촌상 문학부문(1995), 자랑스런 서울대인상(1999)을 수상한 바 있다. 부인 임진호(林珍鎬) 여사 사이에서 2남(세영, 수영) 1녀(서영)를 두었으며, 장남 세영은 연극배우 및 성우, 라디오 DJ로 활동하다가 캐나다로 건너가 30여 년을 살다 부친의 권유로 귀국해 경북 문경에서 수목원을 운영하고 있고, 차남 수영은 의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선생의 수필에 자주 등장하는 막내딸 서영은 도미(渡美)해 현재 보스턴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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