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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씨의 시간 - 황금알 시인선 255 (양장)

임희숙 저 | 도서출판황금알 | 2022년 11월

수박씨의 시간 - 황금알 시인선 255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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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150331 / 128쪽 / 180g / 12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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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시인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은폐된 사물의 탈은폐(Revealing)의 문제는 시인의 화두로 자리 잡게 되고, 이 과정에서 시인은 운명적으로 시간과 만나게 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시간 속에서 그 존재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을 ‘존재론적 사건’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생명적 사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시간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물은 그 존재 혹은 존재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단순한 직선적인 흐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의 차원으로 해석됨으로써 사물은 더 넓고 깊은 존재 지평을 드러내게 된다. 사물은 각자 각자가 저마다 스스로 그러한 사건의 발생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사건의 전체 혹은 전제로서의 사건이 사물의 존재성이 되는 것이다. 사건의 전체가 사물의 존재성을 드러낸다는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어느 한 존재(God)에 의해 창조되거나 이미 틀 지워진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의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원인에 의해 그러하게 된다는 것이고 또 그것은 그러한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존재성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수박씨의 시간」에서 시인은 씨앗이 흩어진 풀꽃무늬 쟁반 위로 여름비가 내리고 우물처럼 깊어진 풀꽃의 집 벌레가 두고 간 껍질과 짐승의 터럭을 안고 꽃은 제 시절에 늙어갔다 우물이 마르고 눈이 내리고 어긋난 무릎의 각질이 나이테로 쌓이는 동안 다시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수박씨의 수액이 붉은 홍수처럼 흘러내리도록 빙하기는 오지 않았다 질긴 방패를 뚫고 흘러나오는 수박씨가 우물을 삼킨 시간 온갖 풀꽃들과 짐승들을 키워낸 씨앗 누구나 한 생은 그렇게 시작된다 - 「수박씨의 시간」 전문 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수박씨”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것을 “수박씨”라고 하지 않고 “수박씨의 시간”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하이데거적인 관점에서 보면 “수박씨”라는 존재는 이미 그 안에 시간이라는 지평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박씨의 시간”은 “수박씨”를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풀어 씀으로써 “수박씨”를 고정된 실체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생성의 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시 속의 “수박씨의 시간”에는 커다란 두 사건이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에서의 두 사건이란 생(生)과 사(死) 혹은 펼침(伸)과 돌아감(歸)을 말한다. 일반적인 시간 개념에서는 생 다음에 사가 오고 펼침 다음에 돌아감이 온다. 하지만 “수박씨의 시간”에서는 그 둘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것의 보다 선명한 예를 우리는 나무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나무를 보면 아래 부분은 검고 딱딱하다. 이에 비해 위 부분은 밝고 부드럽다. 나무 밑동의 검고 딱딱한 껍질은 죽음과 돌아감을, 위의 밝고 부드러운 잎들은 삶과 펼침을 표상한다. 이렇게 두 사건이 나무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바로 나무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재교차하면서 ‘지금, 여기’의 존재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생과 분리된 죽음의 세계가 어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수박씨의 시간” 속에는 ‘흩어짐’, ‘내림’, ‘깊어짐’, ‘두고 감’, ‘안음’, ‘늙어감’, ‘마름’, ‘내림’, ‘쌓임’, ‘자람’, ‘핌’, ‘흘러내림’, ‘뚫고 흘러나옴’, ‘삼킴’, ‘키워 냄’ 등이 동시에 존재한다. 시간이 일직선적으로, 규칙적이면서 질서정연하게, 투명함을 유지하면서 흘러간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수박씨의 시간”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비선형적이고 불규칙하게, 동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불투명하고 가물한(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사물 혹은 존재를 투명하게 그 실체를 해명할 수 없다. “수박씨의 시간”에서처럼 그것은 그 존재의 심층을 헤아릴 수 없는 “우물을 삼킨 시간”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렇게 “수박씨의 시간”에서처럼 하나의 사물을 동시적인 사건이나 가물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의 지평을 더 확장하고 심화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이러한 인식은 그녀의 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누구나 한 생은 그렇게 시작된다”는 고백은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 모든 사물을 대하는 관점이면서 동시에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수박씨의 시간”에 잘 드러나 있듯이 모든 사물의 “한 생”은 가물하고 모호한 깊이와 관계의 동시성과 자기원인을 은폐한,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 속에 놓인 그런 존재론적인 사건인 것이다. - 이재복(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저자 소개

  • 저자 : 임희숙

저자 : 임희숙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1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고,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시집으로 『격포에 비 내리다』 『나무 안에 잠든 명자씨』, 산문집으로 『그림, 시를 만나다』 『살다 사라지다- 죽음으로 보는 우리미술』이 있다.

목차


1부

뜨거운 꽃·12
수박씨의 시간·13
서낭바위 그 집·14
신서神書·15
소란한 묵서墨書·16
능수자작 한 채·17
무화과를 만나다·18
나의 부석사·20
약서랍을 열다·22
봄날 가지치기·23
와흘 본향단·24
잠원에 대하여·26
밀가루를 빚기로 했다·28
홀수가 옳다·30
시월, 적벽赤壁의 시간·32
동백, 아무개 아무날·34

2부

아스파라거스·36
슬쩍 밀어 닫은 방문·37
에티오피아 매화나무·38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39
저녁 풍경·40
저녁을 그려다오·41
오동나무가 사라졌다·42
명사산은 없다·43
마스카라를 샀다·44
붉은 새·46
니스, 푸른 비둘기·48
투르 가는 길·50
수상한 그릇·52
쓰지 말아야 할 시·54

3부

몸이 말했다·58
매에 찍히다·59
오십 그리고 오오·60
화양연화의 한때·61
벌레 도드리·62
멸치의 이름으로·64
중력에 대하여·66
거돈사가 비었냐구요·68
내 친구 프리스카·70
모래내 여지도輿地圖·71
주산지注山池·72
우체국, 모래내·74
살아야겠다·75
이 모든 생을 또 다시·76
오동나무가 사라졌다는 시를 쓴 이후·78
맙소사, 지나가는 중·80

4부

늙은 거미의 노래·82
구례구역·83
목어木魚·84
사순절의 어떤 아침·85
꿈이다 용서하지 마라·86
길몽인가요·88
나는 하느님이고 전쟁이고 슬픔이고·90
별을 얻다·91
나의 늙은 고양이·92
중학동 18번지·94
바퀴가 구르는 동안·96
애월, 칠월·97
머나먼 나무·98
누상동 분꽃·100
우리의 거리·101
성수대교 2020·102
자가 격리 중·104
코로나 코호트 코로나·106
느티와 조우하다·108

해설 | 이재복_주름과 상징·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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