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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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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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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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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안
- 16,200
- 15,120
- 12,600
- 16,200
출판사 리뷰
<내용 소개> 먹고 살고 누릴 만큼의 자유를 누리다 보니 대의보다 개인이 우선한다. 수명은 늘고 부와 기득권은 기성세대가 놓지 않고, 좁아진 일자리와 치열해진 경쟁은 갈수록 압박 수위를 높인다. 그저 안정적 생활에 대한 갈망으로 스팩 쌓기에 여념이 없다. 낭만도 열정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배제와 혐오가 뒤따른다.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적시에 경고음을 내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는 안 돼. 공멸이야.’하고 말이다. 현재는 지나온 과거의 산물이다. 오늘을 있게 한 어제의 서사를 되짚어 보아야 오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그래야 내일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이 책을 쓰는 이유다.(‘프롤로그’에서) “1심 재판 기한이 6개월인데 5개월 정도 걸린 거지요. 일반 시위에서 잡혔으면 반성문 쓰고 나와도 돼요. 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같은 조직 사건은 조금 달라요. 그것도 명색이 지도부인데. 몸은 밖에 나왔는데 마음은 계속 갇혀 있었어요. 학생운동을 정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젠 어찌해야 하나, 지형지물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갖기로 했지요. 그때 엄마하고 제 마음속으로 3가지 약속을 했어요.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엄마 옆을 지킨다. 평생 대중운동만 한다. 정치권에는 들어가지 않는다.’였어요. 조직 운동을 하면서 그것도 지도부의 위치라는 게 너무 압박이 컸어요. 당시 주변에서 전위조직 결성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거든요. 대중운동을 통해 운동적 삶을 살아내고 싶었어요. 또 학생운동 하면서 구속되고 하니까 사람들은 정치를 하려고 그러나 생각하더라고요. 어려서는 정치할 생각도 있었는데 깨끗이 접었어요. 패거리 정치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거든요. 이후의 삶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삶이기도 했어요.”(‘엄마와의 약속’에서) 선암은 제야의 긴 이야기 끝에 ‘터널’을 떠올렸다. 터널 끝에 희망의 빛을 보았는데, 그것도 잠시 또 다른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을 지나는 여정이 한 인간의 역사이고 삶이지 않은가. 그 터널을 빠져나오면 또 어떤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제야에게서 선물 받았던 그의 시집을 꺼내 들었다. ‘민이의 고백’이라고 그 시절 이야기가 시집에 담겼던 것이 생각나서다. 그 시의 마지막 대목 ‘고백’에 이르러, 십 년 세월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터널’ 중에서) 고백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잡다한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목숨까지도 버려야 했다 그러나 순결만은 빼앗길 수 없었다. 끝까지 간직한 순결 민족에 대한 사랑, 민중에 대한 사랑 사랑 없이 진정한 혁명도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투쟁도 하나의 사랑이었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숯불에 자신의 온 몸을 내맡겨야 했던 과정들 수없이 내리 꽂히는 망치질과 한줌의 물로 용광로에 흘러내리던 쇳물의 시련들 한 자루의 낫과 망치와 쟁기와 쇠스랑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불과 바람, 물과 내려 때림을 수없이 당하다보면 어느새 강철은 그 모든 것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믿었다 강철이고자 했다. 전선에 서면, 언제나 두렵고 떨렸지만 한마디 구호, 던져지는 꽃병 속에 해방의 미학 퍼덕이는 그 날의 함성들 지친 날개 퍼덕이며 날고 싶은 하늘도 잃어버려 방황하는 새벽 외부로부터의 상처가 아무리 혹독하고 잔인하다 해도 이겨 나갈 수 있었다 밟히면 밟힐수록 생명력을 얻어 가는 잡초처럼 그러나 동지들 내부 서로가 맺고 있는 신뢰의 선에 이상이 생기면 그것은 곧 생명줄을 잃는 것이다. 추상적 명제에 복음주의적 새날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고 동지 간 신뢰의 선이 무너진 지금 더 이상 날 수 있는 하늘도 하늘을 날기 위한 날개도 없음을 民이는 깨달았다. 떨리는 가슴, 짧았던 만남 이후 찾아온 기나긴 그리움, 그것은 다시 사랑이었다. 사랑은 그리움, 기다림, 변치 않는 믿음 그 믿음에 답하는 행위. 떨리는 가슴 안고 신부를 맞이하는 첫날밤처럼 아, 나는 아직도 혁명을 꿈꾸고 있는데...... 산전, 수전, 공중전이라 했던가. 제야의 학생운동 시절이 빨치산 전투로 느껴졌다면 노동운동 과정은 진영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해상 전투 같은 느낌이다. 사업하는 과정은 첨단 무기로 공중에서 전투를 치르다 추락한 느낌 아닌가.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지상전일 터, 등짐을 지는 현장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비로소 제야가 땅에 발을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도 ‘짓는다’하고, 업도 ‘짓는다’ 한다. 생존조건인 밥을 해결하는 일과 한 생(生)을 아우르는 업 모두가 지어야 할 일이다. 밥과 업을 동시에 해결하는 집짓기를 생업으로 택했으니 참 잘했다 싶다. ‘노동으로 꽃피운 정직한 삶에 바치는 상량.’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집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삶을 공유하고, 또 다른 인연의 업을 만들어 가니 말이다.(‘집을 짓다. 삶을 짓다.’에서) 사업이라는 건 돈을 벌기 위한 일이다. 특히 소규모 건축업이라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집 장사’ 같은 이미지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가다’라 불리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밑바닥 노동자다. 그런데 제야의 집짓기는 하청으로 이루어지는 수직적 피라미드를 깨고 사장과 관리자, 현장 일꾼이 수평적 관계로 이어지는 기적을 만들고 있었다. 선암은 ‘한옥 목수들하고 함께 일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제야의 말이 떠오르면서 그가 꿈꾸고 있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본주의 늪에서 걸어 나와 스스로 길을 만든 이. ‘목수의 노래’는 제야의 삶에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아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였다.(‘목수의 노래 ?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다.’에서) “남북한 정권이 서로를 지렛대로 정권유지를 해 온 측면이 있잖아요. 여야로 나뉘어 서로를 지렛대로 기득권을 나누는 형국인 거지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그러잖아요. ‘정치의 핵심은 누구에게 걷어서 누구에게 나눠주느냐 하는 것.’이라고요. 구세력은 잘 사는 놈들. 소위 보수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고, 신 기득권 세력은 시민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소위 자유주의 세력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잖아요. 진보정당이 노동자 민중을 지지 기반으로 천하 삼분지계를 이루는 게 그나마 현실 가능한 방법이겠지요. 절차적 민주주의에 충실한 서구 정치체제로는 한계가 분명한 거예요. 그래서 제도권 밖에 부문, 지역, 전국 체계를 갖춘 민중(인민)위원회, 현실적으로는 지역자치위원회 스스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밖의 진지가 튼튼해야 제도권 안에서 장난을 치지 못하니까요. 어쩌면 스스로 권력을 잡는 것은 반혁명 세력의 저항으로 너무 많은 피를 부를 수 있기에 조심스러워요. 지난 혁명 과정의 오류를 반복해선 안 되잖아요. 각기의 계급적 입장을 인정하고, 세와 실력으로 경쟁하는 새로운 판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지요. 역사는 생성-성장-발전-소멸을 이야기하잖아요. 그 흐름에 메기를 연못에 풀어 놓는 효과요. 제도권 안이, 기성 권력이 끊임없이 긴장하도록 밖의 진지를 튼튼히 세워야 해요. 자본과 자유주의 세력에 포섭되지 말아야 하고요.”(‘수필로 쓴 세상 일기’에서) “늘 이야기하듯 저는 ‘주거 정착형’ 인간이에요. ‘노마드.’ 유목 인간이 아니라는 거지요. 언어장벽 걱정으로 해외는 엄두도 내지 않았어요. 길잡이가 있고, 청소년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건 제게 행운이었던 거지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일상과의 단절이란 생각이 들어요. 일상으로부터의 떠남,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의 만남이지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정점으로 하는 트레킹은 7박 8일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하루 늦어져 8박 9일 일정이 되었지만요. 여행길에서 저는 늘 후미예요. 아이들의 안전을 살펴야 하는 위치지요. 중간 중간의 게스트하우스와 다랑이 밭으로 이어주는 풍경, 설산의 높은 봉우리를 눈앞에 두고 오르락내리락 산을 오르는 길. 그건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었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의 화해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오히려 베이스캠프 정상에서의 시간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려오는 길, 오르며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았어요. 여행길의 하산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더라고요.”(‘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에서) “농부가 밭에 나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알아요. 쓰러진 놈 일으켜 세우는 거요. 웃자란 놈 가지치고, 병든 놈 솎아내고. 저는 그게 인간, 공동체의 기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많이 바뀌어 정책적으로든 표를 얻기 위한 정치 행위든 많은 일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복지제도 차원에서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분되었고, 재정 지원도 많아졌고요. 문제는 그것을 집행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문제지요. 관료 조직의 변화 없이, 사람이 준비되지 않고는 직무상의 업무로 껍데기만 남는 거예요. 이전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공무원들이 많아졌음에도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고 그 성과가 공동체로 이어지도록 하는 통합 시스템이 없어요. 그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하는데, 선거에서 표가 되지 않는 일에 투자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얼마나 있겠어요. 뭔가 보여주려고만 하지요. 시민단체들도 독자적인 일들을 진행하기보다 공모사업 몇 개 따고, 위탁사업 진행하고, 그 일 하는 사람들 먹고 살고, 그 틀 안에 갇혀 버렸어요. 자생성도, 자립성도 거세된 거지요. 매너리즘. 그렇게 시민단체들이 제도권화, 기득권화되어 가는 거예요.”(‘소는 누가 키우나’에서) “한 개인의 삶이, 국가가, 인류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방향의 문제지요.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사회주의는 공동체를 각각 옹호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이건 나무와 숲의 관계예요. 각자 뿌리 깊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그 나무들이 따로 또 같이 숲을 이루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쓰러진 놈 일으켜 세우고, 햇볕을 독점하는 큰 나무들은 가지치고, 병든 나무들은 솎아내야지요. 안에서는 숲을 볼 수 없고, 밖에서는 나무를 볼 수 없어요. 개인과 공동체, 개별과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을 가진 자들. 숲 안과 밖을 넘나드는 경계인들이 필요해요. 제도권 안과 제도권 밖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제도권 안은 그야말로 관료화되기 좋은 토양이지요. 기득권화되고요. 그렇게 보수화되는 거예요. 밖에서 보면 숲이 병들어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걸 바로 잡겠다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잖아요. 견고한 영역을 고집하고 있는 완강함에 명분마저 잃은 채 상처만 남지요. 그들에게 포섭되는 거지요. 그래서 포지션은 밖에 두고 안의 변화를 도모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생각은 급진적으로 하되, 실천은 보수적으로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소위 진영의 논리를 뛰어넘는 경계인들이요. 끝내 경계인으로 남겠지만 오늘의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지 않을까 싶어요. 종교와 이념, 직무성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들. 그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연합, 소위 적, 녹, 보라 연합 같은 거지요. 노동 중심, 생태, 여성주의를 포괄하는 21세기의 지향을 담아서요.”(‘에필로그’에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찔레에겐 항상 꿈이 있었네요. 사회변혁에의 꿈, 지역 활동의 꿈, 노동자대학을 만드는 꿈, 우리 살림집의 현대화를 이루려던 꿈, 목수들의 교육장을 만들겠다는 꿈, 행복한 집짓기의 꿈, 일터에서 대안 세상을 만들고 싶은 꿈,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꿈, 청소년 인문 캠프를 여는 꿈, 행인서원을 희망의 근거지이자 버팀목으로 만들어 가는 꿈, 좋은 어른이 되는 꿈... 어느 하나 완결된 꿈은 없지만 늘 ‘꿈에 다가가는 길’을 닦는데 헌신한 게 찔레의 모습이었습니다. 변혁의 꿈에서 이탈한 후에도, 속물적 꿈에 패가망신하고도, 다시 꿈을 꾸고 길을 열고 그 길에 몸을 던져온 이. “다 갖추어진 다음에 한다는 것은 결국 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는 결론” 아래, “길은 가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 믿”어온 것이 찔레입니다. 힘을 다해도 미치지 못한다면 누군가를 통해 이어지리란 믿음을 품으며 그렇게 찔레는 길을 열어왔습니다. 세상 곳곳의 많은 이들이 찔레와 비슷한 꿈을 꾸어왔을 것이고, 멀대의 꿈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나는 작업장을 만드는 꿈, 지역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는 꿈, 뜻 맞는 이들과 ‘진지’를 구축하는 꿈, 청소년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꿈, 해외에서 온 이주민들의 한국어 선생이 되는 꿈, 한 평 한 평 세상을 다른 색으로 물들이겠다는 꿈... 이런 면에서 멀대는 찔레와 ‘동지’라고 생각했고 대화를 계속해 왔던 것 같습니다.〕(‘찔레의 이야기를 듣고’에서)
프롤로그
나는 어디서 왔는가.
엄마와의 약속
터널 - 빛과 어둠
자본주의 늪에 빠지다.
집을 짓다. 삶을 짓다.
목수의 노래 -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다.
수필로 쓴 세상 일기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
소는 누가 키우나
에필로그
찔레의 이야기를 듣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