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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인류애’를 제로(zero)로 만드는 SF적인 상상력
다섯 명의 작가, 다섯 개의 디스토피아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결코 일어나선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자행되었을 때 ‘인류애’를 잃었다고 말한다. 인류애를 잃게 만드는 사건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열심히 만든 눈사람을 부숴놓고 자랑스럽게 인증샷을 찍는 사람을 봤을 때도, 정부나 공권력이 약자의 편에 서기는커녕 그들을 외면하는 모습을 봤을 때도 인류애를 잃는다. 상식과는 정반대의 일이 태연히 일어나고, 모두가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때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믿음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는 듯하다.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는 다섯 명의 작가가 인류애를 상실하게끔 하는 다양한 상황을 제시한다. 전 인류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 타임루프에 갇혀버려 사회 질서가 무너져 버린 지구의 모습이나(「D-1」), 최저 임금을 한도까지 낮춘 끝에 결국 사람 몸값보다 기계 유지비가 비싸진 노동 시장(「배내똥 거래소」), 노인 자살률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유어 라이프」)처럼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를 보여주는 한편에선, 사랑에 대한 아이러니(「사람도 아닌데」)와 결혼이냐 비혼이냐(「선샤인은 저 너머에」) 같은 개인의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었다.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에 수록된 다섯 편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인류애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정답이란 없다. 다만 질문함으로써 삶을 되돌아보거나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다시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김현은 문학의 쓸모에 대해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이 메시지는 정확하게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에도 적용된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제로가 되어버린 우리의 인류애는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우리로부터 인류애를 앗아가는지는 알 수 있다. 그 원인으로부터 어떻게 인류애를 지킬 것이냐는 이제 각자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작가가 쓴 한국 SF의 매력
‘한국인’의 아이덴티티가 넘치는 다섯 가지 이야기
영화 <승리호>의 조성희 감독은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들은 그저 은행원이고, 이혼 소송 중이며, 인터넷 댓글을 수집하고, 빨리 결혼하란 잔소리를 듣는다. 한국 땅에 발을 딱 붙인 이 주인공들은 이전 SF 스토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래 기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전 지구적 재앙 속에서 ‘인류애’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한편,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는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냥 아무 인간의 반응이 아니라 과학 기술 발달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담았기에 특별하다. 한국 작가가 쓴 한국 SF만의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이라면 ‘웃프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전개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추천사의 공통된 키워드는 ‘한국’이다. 그 말마따나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에 실린 다섯 작품들 모두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번 앤솔러지를 통해 처음 독자들과 만나는 신인 작가 오누이의 「D-1」에는 쉼 없이 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은행원인 수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친구도 애인도 없이, 심지어 가족까지도 멀리한 채 과외 선생으로 부업을 뛰면서 돈을 모은다. 삶의 목표는 오직 여유로운 통장 잔고와 함께 남들보다 훨씬 일찍 은퇴한 뒤 풍족한 여생을 사는 것이다.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쓰는 그녀에게 어느 날 비극이 닥친다. 지구의 시간이 멈춘 것이다. ‘프리즈’라는 이상 현상이 시작되어 이제 미래라는 시간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앞만 보고 살아온 수미는 갑자기 끊겨버린 미래에 당혹스러워한다.
정현욱 작가의 「유어 라이프」에는 게임을 사랑했던 할아버지의 뒤를 쫓는 예연이 등장한다. 기자로 일하는 그녀 역시 할아버지처럼 게임을 무척이나 사랑하는데, 어느 날 노인 게이머들을 타깃으로 했던 전설적인 고전 게임 ‘유어 라이프’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수십 년 전 게임인 ‘유어 라이프’에 대한 자료는 거의 사라져 버렸고, 남아 있는 것마저도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익장 게임 유튜버의 피상적인 리뷰 영상이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의 노인 혐오로 가득찬 체험기밖에 없다. 하지만 ‘유어 라이프’를 조사할수록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예연은 급증한 노인 자살률과 게임의 상관관계를 파헤쳐 나가며 그 진상을 좇는다.
김지원 작가의 「사람도 아닌데」는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인 톱 가수의 목소리로 쓰였다. 돈과 명성은 물론이거니와 요식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남편 그리고 착한 딸까지 남부러울 것 없던 그녀의 삶은 남편이 어느 날 안드로이드와 결혼하고 싶다며 이혼을 요구하면서부터 엉망이 되고 만다. 단순한 이혼 소송이 아닌 사람이 ‘사람도 아닌’ 존재와 사랑하고 결혼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대된 이 법정 공방은 마치 미래에 벌어질 가십을 미리 읽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황모과 작가의 「배내똥 거래소」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극단으로 치달은 미래의 노동 시장을 묘사한다. 일자리는 없는데 일할 사람만 넘쳐나 최저 임금 이하를 받아도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아직 어린아이인 예율은 아버지를 대신해 어떻게든 생계를 책임지려 노력한다. 예율이 돈을 버는 방법이란 폐지를 먹은 다음 배설하면 순도 높은 에너지가 발생하는 ‘배내똥’을 가져다 파는 것이다. 3D 프린터로 김밥을 찍어냈다가 기계가 고장 나자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직접 김밥을 마는 아이러니는 ‘해학’이라는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배명은 작가의 「선샤인은 저 너머에」는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에 압박받는 혜주의 우여곡절을 그린다. 안정적인 직장과 불편함 없는 생활을 누리는 혜주는 주변으로부터 결혼하라는 등쌀에 못 이겨 ‘선샤인’이라는 결혼 정보 회사에 무료 체험을 신청한다. 가상 현실에서 알고리즘으로 분석된 제짝을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혜주에게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비장하게 비혼이라 선언하기에도 난감하고, 외롭지는 않은데 강제로 결혼이 간절해진 혜주의 모습은 마치 친구를 보는 것처럼 친숙하다.
이처럼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에 수록된 다섯 편의 작품은 추천사의 표현 그대로 한국이라는 땅에 발을 딱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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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10
D-1―오누이
017
유어 라이프―정현욱
087
사람도 아닌데―김지원
147
배내똥 거래서―황모과
199
선샤인은 저 너머에―배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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