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헤르만 바빙크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 1854년 12월 13일에 드렌테 지방의 호허페인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얀 바빙크는 1834년에 네덜란드 국가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와 역사적인 기독교 전통을 순수하게 유지하는 입장에 선 교회의 목사였다. 바빙크는 캄펀(Kampen)에 있는 신학교와 레이던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레이던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츠빙글리의 윤리학에 대한 논문을 써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라아너커에 있는 교회에서 1년 동안 목회한 후에, 캄펀 신학교의 교의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취임 강연 주제는 “거룩한 신학의 학문”이었다. 20년 동안 캄펀 신학교에서 왕성하게 연구하고,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동안 그는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로부터 세 번에 걸쳐 신학 교수직을 제의받았다. 1902년, 수상을 지냈던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의 뒤를 이어 자유대학교에서 교의신학 교수직을 맡았다. 바빙크는 첫째로 신학자였고, 교의학자였다. 그의 걸작은 네 권으로 된 『개혁교의학』이다. 이 책은 캄펀에서 수행한 학문적 노력의 결과였다. 1895년에서 1901년에 걸쳐 초판이 나왔고, 그 후에 개정판이 나왔다. 또한 1909년에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라는 제목으로 『개혁교의학 개요』가 나왔다. 『개혁교의학 개요』는 『개혁교의학』보다는 덜 전문적이고, 좀 더 일반적인 것으로, 대중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인 책이다(CH북스 역간).
바빙크는 개혁 신학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뛰어난 신학자였다. 후기 칼빈주의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칼빈에게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동시에 당대의 신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개혁 신학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그의 신학방법론의 특징은, 성경신학의 기초가 견고하다는 것, 역사신학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종합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다른 신학 체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의 모든 요소를 통합하려고 노력하였다. 개혁 신학 자체 내에서 그는 다양한 갈래의 견해들을 한데 모아 새롭게 종합하려고 시도하였다(예를 들어, 후택설과 전택설, 창조설과 영혼유전설).
전기 작가 란트베어는 말한다. “칼빈이 그의 사상들을 성경에서 그러모았듯이 바빙크도 언제나 그의 사상들을 얻기 위해 성경을 조사하였고, 그 사상들을 체계화하는 일에 성경의 지도를 받았다.”
바빙크는 67세의 나이로 소천할 때까지 수많은 저서들을 출판하였다. 1921년, 바빙크는 죽음의 침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학문이 내게 준 유익이 무엇입니까? 내 교의학 또한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직 믿음만이 나를 구원합니다.”
역자 : 박하림
고신대학교(B.A)와 고려신학대학원(M.Div)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미국 그랜드래피즈에 소재한 칼빈신학교에서 더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부 시절부터 개혁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종교개혁지를 탐방한 이후 개혁주의 신학이 교회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교회에서 개혁 신학이 나왔는지를 경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감숨 : 우병훈
말씀을 사랑하고 목자의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신학자다. 서울대학교에서 자원공학과 서양고전학을 공부하고,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 미시간 소재 칼빈신학교에서 리처드 멀러와 로널드 핀스트라의 지도로 “17세기 개혁신학의 구속언약”에 대한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에서 교의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강의와 저술 그리고 커피 타임을 기쁨으로 삼고 있다. 박사 논문이 독일의 V&R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며, 국내외 학술지에 50편 가량의 논문을 기고했다. 제1회 한국개혁신학 학술상을 수상했으며(2019년), 한국연구재단 지원사업에 여러 차례 선정되었다(2016, 2019, 2020-2022년). 저서로 『처음 만나는 루터』(IVP), 『기독교 윤리학』(복있는사람), 『예정과 언약으로 읽는 그리스도의 구원』(SFC), 『기독교 교리와 윤리』(생명의양식, 공저)가 있으며, 역서로 『교부들과 함께 성경 읽기』(살림, 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