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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543235 / 224쪽 / 291g / 130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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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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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 11,700
- 36,000
- 129,600
- 18,000
출판사 리뷰
대궁이 위에 올려진 꽃이 되다 표제작 「출소를 꿈꾸다」의 행간에서는 건조한 장미 꽃잎 냄새가 난다. 바람에 할퀴거나 찢어진 장미는 그 빛이 바랬다. 철심에 나사로 조여 놓은 몸은 창틀에서 시들어가는 장미분재와 다를 바 없다. 도시를 등지고 돌아앉은 낡은 바닷가 아파트의 노인들은 늙음이 죄목이 되어 갇혀 버린 죄수처럼 서로를 집 호수로 부른다. 205호는 아파트 귀퉁이 육각 정자에 모이는 노인들이 물갈이 되고도 또다시 살아남는다. 하지만 분재도 205호도 몸부림쳐 봐야 깨끗한 회복이란 없다. 이파리로 둘러앉은 자식들이 꽃인 205호를 받쳐 들고 흐린 눈으로 올려다본다. 「달방」의 ‘나’는 명상을 대신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판 위에 그린 장미는 어둡고 차가운 밤공기에 얼굴이 할퀴어 자꾸만 담벼락 아래로 고개를 처박는다. 한적하고 협소한 장소에도 깃든 세상 풍파에 가녀린 장미의 손목이 오래도록 떨리는가 싶었는데 다시금 주먹을 쥐는 듯 불끈해진다. 살기 위해서는 손끝에 닿는 무엇이라도 낚아채야만 한다. 움켜쥔 이상, 그 손아귀는 결단코 풀지 않겠다는 결의가 엿보인다. 눈 하나 까딱 않고 바늘과 물감으로 손목에 노란 장미 문신을 새긴 미희는 홍화와 ‘나’의 손목에도 똑같은 장미를 새긴다. 빨강과 노랑의 드레스를 번갈아 걸치고 방음벽이 있는 도로변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홍화의 의지는 붉디붉었고, 안개꽃에 둘러싸인 한 송이의 장미이던 홍화의 붉은 입술은 시들어 버렸다. ‘나’가 마우스로 장미 그림의 삭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야생의 마법에 걸렸던 홍화와 ‘나’, 미희가 지지직거린다. 중심 대궁이가 되지 못한 존재의 이야기도 있다. 「뿔」의 원소는 뒤늦게 접어두었던 꿈을 이뤄보겠다고 문예창작 강의를 듣고 있다. 이름난 고등학교에서 평생 고 3 학생들만 가르쳐온 H는 일방적인 성격으로 원소를 제자 대하듯 거침없이 부려먹는다. 시평을 받기 위해 P 교수에게 간 날, H의 억지로 1박을 하며 술자리를 가진다. 중심 대궁이로 꼿꼿이 올라섰을 그들의 서글픈 이야기에 원소는 아리송한 시선을 보낸다. 거친 눈보라에 눈꽃송이처럼 얼어붙은 얼굴을 하고서야 원소는 잠시 잠깐 중심 대궁이가 피워 올린 꽃이 된다. 주어진 운명을 견뎌내느라 퍼석해질 대로 퍼석해진 채 우지끈 내려앉던 뼈의 소리를 기억한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 또한 주목할 만하다. 「바람이 오므리는 입술에서 궤나 소리가 들렸다」의 ‘나’는 가늘고 휘어진 반지에 묶여 버린 삶을 살았던 할머니에게 씁쓸함을 느낀다. 만나 보기도 전에 요절한 남편에게 쓴 애처로운 문장들은 마치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 같았다. ‘나’는 자꾸만 땅 밑 공간을 살피게 된다. 할머니 세대와 맞물린 아래 세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나’와 형님이 투쟁해 온 방식은 이미 조카 앞에서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지층의 갈피마다 망각이 끼워져 있다」에서는 몽롱한 최면에 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며 전생을 넘나든다. 지금의 자신이 되기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는 듯 익숙함이 느껴지는 못 근처에서 ‘나’는 전생의 소꿉친구 유미를 떠올리며 노상의 밤을 보낸다. 모호한 경계에 주저앉아 나보다 더 고통을 맛본 이들과 조우하며 비대해진 상처를 찾아 곳곳에 연고를 바르며 자신의 몫이 아닐지도 모를 굴레에 대해 생각한다. 다섯 편의 단편 소설에는 저마다의 고통과 결핍의 굴레 안에 또 다른 굴레가 들어 있다. 권분자 소설가는 상상을 뭉쳐 놓은 글을 상징으로 바꿔 놓으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몫이 아닌 굴레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힘겨운 현실에서의 자기 왜곡처럼 그저 멀찌감치 물러서서 바라보아야 할 것들을 너무 가까이서 보려 하지는 않았는지. 시인의 사유가 녹아든 시적 언어와 삶에 대한 통찰이 결합된 문장은 긴 여운을 남긴다. 사색을 위해 놓아둔 징검다리가 되어 줄 소설이다. <추천사]> 권분자 소설집 『출소를 꿈꾸다』에는 여러 관점의 인물이 등장하여 사상(事狀)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지닌 삶의 근본적인 태도에 대한 다양하고도 깊은 사유思惟의 결과이다. 작품집에는 시적(詩的) 발상을 바탕으로 한 깊은 은유 구사의 문장이 신선하게 다가와 읽는 이에게 오랜 여운을 가지게 한다. 또한 반전(反轉)의 미학과 이에 따른 절실한 심리 묘사가 작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선명한 각인으로 다가온다. -심후섭 대구문인협회장, 교육학박사 <책 속으로> 도시를 등지고 돌아앉은 단층 아파트에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노인들뿐이었다. 구석진 곳에 외따로 떨어져있어 아파트는 더 을씨년스러웠다. 허름한 이 아파트의 게시판에는 매매와 전세 전단지가 얼룩지고 찢어진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겨울밤, 아파트의 불 켜진 칸칸의 창가에는 노인들이 어른거렸다. 휙- 칼바람이 지나가자 창문들이 일제히 쿨룩! 기침하듯 덜컹거렸다. 오늘처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노인들은 천식의 기침 소리로 서로의 무사 안부를 알리곤 했다. 젊어서는 만난 적 없는 인연들이 흐르고 흐르다가 막다른 곳으로 모여든, 말하자면 부표, 플라스틱, 스티로폼, 나무막대기처럼 온전한 것에서부터 쓸모를 잃고 떨어져 나온 노년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늙음이 모여서 흠! 흠! 헛기침을 했다. -p. 10~11, ‘출소를 꿈꾸다-봄으로’ 중에서 이들은 이름 대신 집 호수를 호칭으로 썼다. 상대방을 죄수의 수인번호처럼 부르는 건, 늙음이 죄목이 되어 지독한 한파에 갇혀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젊음을 잃고 얻은 건 자유가 아니라 더 큰 구속이었다. 바닷가의 외진 곳에 방치되어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움푹 꺼진 눈망울에는 외로움과 죽음의 공포가 잔뜩 서려있었다. 그토록 발버둥 치며 살아온 발걸음 앞에 이토록 짧은 생의 낭떠러지라니…, 덜컥거리며 지나온 삶이었기에 이 아파트의 칸칸에는 살아온 날들이 수여하는 훈장이 사각 창틀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p. 12, ‘출소를 꿈꾸다-봄으로’ 중에서 밤은 늘 등뼈 위로 찾아왔다. 몸무게는 점점 가벼워졌다. 구십 년산 무중력이 종잇장 같았다. 땅은 디딜 수 없었으나 허공에서는 원하는 방향 어디로든 휘돌았다. 205호는 점점 신령님 앞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이젠 두렵지 않다고, 다만 꿈결에 오시어 응징하시라고, 신령님께 빌었다. 간밤에 장미분재가 모로 누웠다. 단 한 번도 벗어보지 못한 가죽신발을 벗어놓았다. 칼바람이 구두를 강제로 벗겨버렸으니 분재는 길을 놓아야만 했다. 다시는 직립이 되지 않겠다는 듯 바닥에 드러누워 꿈쩍도 않았다. 다 뜯어 먹혀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바람의 송곳니에 온몸을 내맡겼다. 딸이 장미분재의 등뼈를 수직으로 세워보려 애썼다. 꼿꼿하게 일어나길 바랐지만, 스르르 누웠다. 소소한 이야기 몇 개가 바람에 팔랑거렸다. 쓰러진 장미분재 주위로 수염 다친 벌과 날개 찢긴 나비가 몰려들었다. 그 누구도 낡음이 누추하지 않은 듯 ‘엄마 엄마’ 부르며 볼을 비볐다. 205호는 꽃대 위 꽃이었다. 학처럼 고고하게 외발로 일어섰다. 그리고 퍼덕퍼덕 퇴화의 날개를 흔들었다. 이파리로 둘러앉은 자식들이 꽃인 205호를 받쳐 들고 흐린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p. 75~76, ‘출소를 꿈꾸다-저승으로’ 중에서 안동시 길안면에는 여태껏 사라지지 않은 씨족 마을이 있었다. 나는 이 마을로 시집을 왔고, 내게 첫 상복을 입힌 할머니는 지난겨울 염장이의 발밑에서 정강이뼈 부러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려주며 이승의 문을 쾅쾅 닫고 말았다. 둥글게 말린 채 굳어진 할머니의 몸을 직사각형 오동나무 관 안으로 밀어 넣는 염장이의 발바닥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할머니와 같은 뼈의 힘이 나에게도 숨겨져 있을까. 주어진 운명을 견뎌내느라 퍼석해질 대로 퍼석해진 채 우지끈, 내려앉던 뼈의 소리를 기억하는 나는, 할머니 세대와 맞물린 아래 세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p. 108~109, ‘바람이 오므리는 입술에서 궤나 소리가 들렸다’ 중에서 내 손이 닿아 죽음에 내몰리는 여린 풀들은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꺾인 자리에서 나오는 찐득한 독소에 내 혀끝은 벌써부터 아려왔다. 산나물을 뜯는 내내 꺾인 목울대가 내는 절망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죽음을 만지던 내 손에는 어느새 먼먼 안데스산맥을 휘돌아온 바람이 한 움큼 쥐여져 있었다. 나는 그 바람이 내는 구슬픈 음악 소리를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정강이뼈에 구멍을 뚫어 뼈 피리를 만들었다는 사람들, 거대한 안데스산맥을 바라보며 홀로 피리를 불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얼마나 슬펐으면 정강이뼈로 피리를 만들었을까. 나는 산비탈에 서서 천천히 바람을 들이켰다. 어느 영혼이 내 손에 마지막 키스를 했다. ‘그립다, 그립다….’ 애절한 궤나 소리가 손바닥에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p. 122~123, ‘바람이 오므리는 입술에서 궤나 소리가 들렸다’ 중에서 엄마는 풀 한 포기를 쑥 뽑아 들고는 똑바로 이해하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뿌리와 곁꽃이 희생해 줘야만 중심 대궁이가 영양분을 오롯이 받아먹고 저 꼭대기에 보란 듯이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니까! 그래야만 질 좋은 열매도 맺는 거고.” 돈 없고 자식 많은 집에서는 한 명의 자식만이라도 잘 키워내야 그 자식이 집안을 살려낸다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흘러 뿌리와 잎이 흙으로 녹아들 무렵이면 창공蒼空에서는 튼실하게 여물린 씨앗들이 와글와글 흩어지면서 대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마의 주장에 꺾이어버린 나는 부모에게 받을 혜택을 몽땅 오빠에게 몰아주어야만 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P 교수도, H도 한 가족이 힘을 모아 밀어올린 중심 대궁이의 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왜? 아랫단 곁가지에 핀 나보다도 상처가 더 깊고 험악해 보이는 걸까? 기껏 양보하고 희생해 주었는데, 티끌 하나 묻지 않고 승승장구했을 저들은 뭐지? 선택된 사람이라 제왕처럼 군림한다고 믿었는데…, 나의 우상偶像인 저들의 이야기는 왠지 서글펐다. 다들 꼿꼿하게 원하는 지점까지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듯 아우르는가 싶었는데… 뭣 때문에 죽을 만큼 술에 의존했다는 걸까? 나는 이해불가의 그들을 아리송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한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몸을 끙, 하며 일으켰다. 그들의 발치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몸은 무거웠다. 졸음을 떨칠 겸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에는 덜커덩덜커덩 소리를 내며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허공에는 시커먼 구름이 펼친 검은 날개가 요란하게 펄럭거렸다. 커다란 날갯죽지에서 흰 깃털이 분분했다. 나는 2차선 도로를 내려다보며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찬 바람이 와락, 내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람을 막으려고 얼굴을 창문 바깥으로 디밀었다. 펄펄 날리는 눈송이가 얼굴에 차갑게 와 닿았다. 3층의 좁은 창가에 대롱대롱 매달린 얼굴이 금세 커다란 눈꽃송이로 변해갔다. 허공으로 뻗친 내 모가지가 거친 눈보라에 비비 틀렸다. 그대로 잠시 잠깐, 나는 중심 대궁이가 피워 올린 탐스러운 꽃이 되고 있었다. -p. 153~155, ‘뿔’ 중에서
· 출소出所를 꿈꾸다
봄으로
- 저승으로
· 달방
· 바람이 오므리는 입술에서 궤나 소리가 들렸다
· 뿔
· 지층의 갈피마다 망각이 끼워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