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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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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상처는 어떻게 기억되고 깊어지는가 “불길을 쳐다보다 이상한 걸 만나서…… 놀라서!” “알아, 다른 의식이 열리는 거 말하는 거지? 들어가도 다시 돌아 나와. 무서워할 필요 없어. 혹시 불이 세상의 전부였던 태초를 만난 거 같은 거? 왜 있잖아, 이 지구가 지구가 아니었을 때, 불밖에 없었을 때 말이야.” “그 옛날이 왜 왔다는 거야?” “왔다는 게 아냐. 불이라는 게 비슷하잖아. 세상을 태워 지구를 만든 큰불이든 추운 겨울 집을 따뜻하게 하는 작은 장작불이든 불인 건 같잖아.” [……] “소멸이 돼야 다시 탄생하지. 밤에 꿈을 만들어내잖아.” “무슨 꿈? 아 그 소리로 들린다고 한 것?” “과거를 소환하는 거지. 유전자 속의 시간을 불러오는 거?” (pp. 61~62) 보트하우스를 몰입도 있게 묘사한 짧은 도입부를 제외하고 총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시기별로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수를 의미하는 ‘세 사람’ ‘네 사람’ ‘두 사람’ ‘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호수에 가까워 습하고 서늘한 보트하우스에서는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벽난로에 불을 지폈고, 집 옆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잠든 이들은 묘한 꿈에 빠져든다. 그 꿈은 그들이 실제로 겪지는 않았지만 유전자 속에 새겨진 어떤 기억들. 아메리카 원주민 조상들이 겪었을 전쟁, 미얀마 복무 중 목숨을 잃은 아버지, 혹은 부모의 엇갈린 사랑 등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가슴 아픈 사연들이 상징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꿈을 통해 전해지며 인물들을 흔든다. 구경하고 명명하는 자와 노출되고 불리는 자 여자와 남자를 뒤에서 따라가는 아이는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중앙의 홀 안으로 들어갈 때 자신을 쳐다보며 옆으로 지나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 나이 든 여자를 본다. 붉은 기가 있는 갈색 머리를 한 백인 여자는 지나가는 아이가 민망하도록 말갛게 쳐다보고 있다. 아이는 그 여자를 지나쳐서 저만큼 갔을 때 갑자기 뒤를 획 돌아본다. 그 여자와 얼굴이 마주친다. 백인 여자는 아예 고개를 돌려 일행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아이는 여자에게 혀를 쏙 내민다. 여자가 당황해서 고개를 반대로 돌린다. (p. 53) “원래 이름이 있는데 허드슨강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 여기 살았던 사람들, 즉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이라고 정당화하려고 하는 거니까. 허드슨은 강을 오르내리며 원주민과 교역도 하던 사람이야. 에베레스트, 히말라야의 다른 봉우리들처럼 에베레스트도 원래 이름이 있는데 그것도 티베트에서 부르는 이름, 네팔에서 부르는 이름이 각각 다 있는데 왜 식민지 인도에 온 영국 측량 기사가 마음대로 에베레스트란 이름을 붙이지?” (p. 84) 이 소설이 꿈을 통한 원초의 기억을 추적한다고 해서 삶과 전혀 동떨어진 서사를 구축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면 틀렸다. 주요 인물인 서지향, 최연지, 장유재와 같은 한국계 미국인들과 모히칸 조상을 둔 필립 케메 캠벨 모두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이며, 이들이 보트하우스에서 보내는 일상 속에서도 제국주의 침략과 노예제, 인종 차별의 역사를 가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생생한 현장성과 날카로운 감수성도 두루 엿볼 수 있다. 신기한 듯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차별, 원주민의 이름은 버려지고 침략자들의 이름이 지명에 붙는 폭력이 소설 곳곳에서 지적된다. 한편 첫 인용문에서 20여 년이 흐른 시점 다시 찾은 식당에서 그때와 같은 시선을 다시 느끼지 않는 장면을 통하여 미국 사회의 변화 또한 감지될 수 있다. 존재하지 않은 시간이 더 큰 진실로 다가오는 이야기 나는 기어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지나간 것들을 불러낸다. [……] ‘소설 짓기’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불러내서 시간을 존재하게 하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말」) 「작가의 말」에서 이숙종은 산과 숲, 물로 돌아다녔던 시간들이 녹아 이 소설을 이루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지나온 삶의 단상들이 문학의 언어로 픽션이 되면 그것이 생의 진실을 관통하는 장르가 소설이라고들 한다. 『보트하우스』는 매력적인 인물들과 디테일한 요소들을 잘 구축된 플롯으로 옮겨 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면의 세계, 원초의 환상으로 연결한다. 심사를 맡았던 평론가 김형중은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문학적 글쓰기가 언어를 질료 삼아 수행하는 작가의 미학적 가공 작업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것은 문학의 기본이다. 「보트 하우스」는 바로 그 기본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었다.” 소설다운 소설, 기본에 충실하여 독자를 진동하는 이야기, 불과 물의 꿈이 당신을 찾아간다.
세 사람
네 사람
두 사람
한 사람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