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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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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가르쳐줄 교수님도, 앞서간 선배도, 함께 할 친구도 없는 어느 비(非)사범대생의 임용고시 분투기 저자는 선생님의 존재를 자각한 여섯 살 무렵부터 선생님을 꿈꿨다고 한다. 그러다 대입 시험을 앞둔 어느 날, 현재 점수로 사범대학을 지원하기에는 아슬아슬하다는 담임선생님의 얘기를 들은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를 전공하고 추후 교직이수에 도전하기로 한다. 저자는 대학 진학 후에도 임용고시가 어떤 시험이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찾아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결국 저자는 해외 생활을 포함해 6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 임용고시의 ‘임’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낸다. “다른 고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임용고시’라 알려진 이 시험은 경쟁률이 높고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이다. 처음에는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듯 어렵고도 어려운 이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었다. 한 명도 뽑지 않던 시절보다는 양호하겠지만, 열 명 남짓의 합격자 속에 내가 들어간다는 건 상상도 안 될뿐더러 확신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오랫동안 꿈꾸면서도 임용고시 판에 뛰어들지 말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 본문 中 본격적인 시험 준비를 앞두고 가장 불안했던 건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다는 사실이었다. 대개 사범대 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당장 임용 공부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관련 과목을 학교에서 배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직속 선배도 많은 편이다. 반면 교직이수로 그들을 따라간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저자는 2년간의 휴학으로 남들보다 더 늦어진 상황이었다. 빠르면 초수, 즉 스물넷에도 합격한 사람이 있는데 스물다섯에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맞는지, 꽃다운 시절을 언제가 될지도 모를 합격을 위해 바치는 게 맞는지 저자는 고민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겠다며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길고도 컴컴한 터널을 저자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저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무작정 책을 베껴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 집, 독서실, 도서관까지. 저자는 안 해본 공부 방법도, 안 가본 공부 장소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몇 년간 공부만 한다는 것, 꽃다운 나이를 책 속에서 보낸다는 것, 한 우물만 판다는 것. 저자는 그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내려고 발버둥 치고, 이미 흘러간 과거와 불안한 미래를 지우고 현재에만 몰두하고자 애쓴다. 앞서간 선배도 없는, 가르쳐줄 교수님도 없는, 함께 힘낼 친구도 없는 비(非)사범대 출신. 4년간 임용고시와 고독하게 동행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자그마한 감동을 선사한다. 동트기 전 가장 어두운 시기,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속 자그마한 희망을 엿보고자 발버둥 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임용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저자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붙거나, 아니면 다른 길로 빠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세계였다. 저자는 너무 늦게 시작한 게 아닐까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취업에 성공하거나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을 보며 조바심을 느끼기도 한다. 시험 전에 영위하던 일상이 사라지고, 관계가 끊기고, 생일이 사라진다. 사립학교 면접에 참여했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시험에서 낙방하며 좌절감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의 응원에 다시 한 번 달려갈 힘을 얻으며, 다시금 책을 펼친다. “점차 내 생일을 아는 이도, 축하해주는 이도 없어졌다. 가족과 남자친구, 친한 친구 몇몇. 이따금 그들의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가 줄었다. 어떤 해에는 가족조차 깜빡하고 지나칠 뻔하기도 했다. 차라리 잊으셨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생일에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야 하는데, 감사한 마음조차 사치였던 그때는 죄송한 마음뿐이라 차라리 잊고 지나갔으면, 눈 뜨면 다음 날이 되었으면 생각도 들었다.” - 본문 中 네 번째 시험에서 떨어지고 좌절하고 있던 저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펼쳐진다. 4개월짜리 기간제 교사 일이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일종의 도박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저자는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혼자 공부를 하며 치열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준비한 시험에서 1차 합격의 기쁨을 맛본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여전히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는 급하게 서울 노량진으로 올라가 면접을 준비한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저자는 4년 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고 있던 지식이 면접 때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헤매기도 하고, 면접위원 앞에서 간단한 사실관계를 틀리게 이야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홀로 눈물을 왈칵 쏟기도 한다.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눈을 비비고 살폈다.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동생에게 물었다. ‘합격한 거야? 합격한 거야? 나 합격한 거야?’ 정말 합격했다는 동생의 대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합격했다. 끝났다. 나의 오랜 수험 생활을 지켜본 동생도 눈물이 핑 돌았는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 본문 中 합격 소식을 접하자 4년간의 길고 긴 여정이 저자의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몇 번의 실패, 자신의 눈앞에서 문이 닫히는 경험, 누군가의 성공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축하해주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 시험을 포기할까 고민했던 위태로웠던 순간. 저자는 주위 사람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4년 전 첫 시험을 준비하면서 일상이 한순간에 바뀐 것처럼, 저자는 합격 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 암흑 같았던 긴 터널을 4년 만에 통과했다는 것. 당장 내일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며, 더 나아가 더 이상 불안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현실. 이제는 부모님께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사실. 간절히 바랐던 꿈을 마침내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해방감. 저자는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며 교사로서 한 걸음씩 내디딘다. 저자는 어느새 교사로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지나온 길고 긴 터널을 돌아보며, 좌절과 절망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희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고군분투기는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도 열심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청년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편집후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시기. 우리는 여러 부재(不在)를 경험한다. 공무원을 준비한다거나, 일반 기업 취업을 준비한다거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등 여러 이유로 가깝던 관계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을 종종 겪는다. 부재(不在)는 타인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당연히 그에 따른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했을 때, 부재(不在)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경험하거나 혹은 주위 지인을 통해 자주 접해왔던, 어느 ‘부재(不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은 4년간 열심히 공부한 끝에 마침내 합격했다는, 짧은 한 문장에 감춰진 무수히 많은 사연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단순히 몇 명이 지원해서 몇 명이 합격했다는 숫자 너머에는 개개인의 치열한 고민과 좌절, 이를 극복해나가는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임용고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임용고시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이며, 한 청년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이유다. 이 책은 부재(不在)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경험했거나 미루어 짐작하고 있던 것들, 하지만 자세히 보지 못했던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존재는 비로소 우리의 눈에 뚜렷이 들어온다. <책 속에서> 지금 생각해봐도 우당탕탕 초수생이었다. 오랜만에 시작하는 장기전에서 당시 나는 멘탈과 감정을 조절하는 법도 몰랐다. 겨우 아침 아홉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독서실로 향했고, 오전 공부마저도 꾸벅꾸벅 졸면서 할 때가 많았다. 점심식사를 위해 잠깐 들른 집에서는 TV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먹는 저녁식사는 홀로 도시락을 먹는 시간에 비해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이 화기애애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들을 외면하고 독서실로 향하는 발걸음도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가 절망과 희망의 연속인 롤러코스터였다. ‘열심히 하면 붙는다’라는 초수생의 자신감으로 넘치다가도, 다른 수험생들과 비교하면서 자격지심에 빠지기도 했고, ‘내가 과연 될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끝없는 불확실의 굴레에 빠지기도 했다. 2016년, 어느 초수생의 모습이었다. - 27p ‘역사 선생님 되기’, 첫 번째 꿈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오랜 꿈, 5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나의 첫 번째 꿈. 이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3년, 4년을 달리고 있는 지금, 나는 버킷리스트 속 많고 많은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 꿈들도 중요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고도 오래된 첫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꿈들을 잠시 미뤄놓은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의 시간들은 더 이상 헛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마땅히 지불해야 할 시간이었다. 더불어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도 눈 녹듯 사라졌다. 나의 첫 번째 꿈에게 내 시간들을 잠시 양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공책 한 번 펼쳐보는 것으로 나의 고민은 정리되었다. 이 정도면 다시 한 번 달려볼 힘이 충전되고도 남았다. - 56p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과 멀어질수록, 그래도 다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생일만큼은 쓸쓸했다. 생각해보면 생일 파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선물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고, 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계속된 좌절로 더 이상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냥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에 온전히 감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밥을 먹고 싶었다. 그저 친구들에게 마음 편히 생일을 축하해주고, 기프티콘을 보내주고, 때로는 축하를 받고 싶었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생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 68p 면접 당일 내가 면접관으로부터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질문이 아닌, ‘여기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선생님의 자격이 모자라거나 미흡해서가 아닌...’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결코 아니었으면 했던, 내가 들러리였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애초에 공정하거나 공평한 자리가 아니었다. 물론 기간제 경력이 중요한 사립 2차에서 내가 두 분에 비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었다. ‘경험 없이 어느 학교에 합격했데’라는 희망찬 소식들은 말 그대로 희망일 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 78p 대한민국의 여느 취준생, 고시생, 공시생에게 들려주면 하나같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할 만한 가사였다. 집에 가는 길,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친구의 취업 소식과 여유가 부러울 때마다, 누군가와 비교되어 한없이 작아질 때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되지 못해 가슴이 아플 때마다 듣고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 그중 ‘옳은 길 따위가 없다’라는 말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맞아. 도대체 옳은 길이 어디 있어. 다른 사람의 길이 옳다고 누가 그랬어’라고 되뇌기도 했다. 공부하며 겪는 상황들과 그 순간의 우울, 감정, 기분 때문에,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다는 말도 위로가 되었다. 그런 한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지금껏 열심히 달려온 내가 택한 이 길을 놓을 수 없었다. - 100p 그럼에도 우리가 5년 넘게 계속 만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대학원생이라는 점이었다. 수험생 입장에서, 상대가 회사에 다니거나 일을 하고 있었다면 서로 공감할 수 없는 상황과 너무 다른 생활패턴 때문에 결국을 헤어졌을 테니 말이다. 석사과정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그의 대학원 생활은 박사과정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만큼 서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그 마음으로 우리는 이어져갔다. 그가 석사에 이어 박사를 수료하고, 박사 논문을 쓰는 동안에도 나의 공부는 계속되었다. 서로가 처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연애였다. 쉽지 않았던 만큼 대학원생으로서, 임용고시생으로서 각자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 110p 하지만 퇴근하면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아니, 사실 학교에서도 마음만은 수험생에 더 가까웠다. 때로는 교무실이 어색하기도 했다. 공강 시간에는 업무와 수업 준비를 모두 끝낸 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책 한 장이라도 더 보려고 전공 서적을 펼치기도 했다. 야자 감독을 할 때는 제일 소란스러운 반에 들어가 함께 책을 보기도 했다. 근무 학교가 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렸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퇴근 후 학교 근처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밤늦게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 128p 그렇게 2차 수업 실연을 보기 좋게 망쳤다. 4~5년 동안 닳고 닳도록 공부하고 외우고 했었는데도, 긴장한 탓인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을 잊어버렸고, 선조를 인조라고 하는 명백한 실수를 했다. 특히 1차 점수가 높지 않던 탓에 누구보다 완벽했어야 하는 나의 2차 수업 실연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 150p 5년. 길고 긴 시간 동안 차근차근 나만의 속도대로 한 단계씩 밟아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위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혼자 해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위기가 있었다. 몇 번의 실패, 내 눈앞에서 문이 닫히는 경험, 누군가의 성공, 스스로에게 위태로웠던 순간들도, 그리고 마지막 2차 시험에서의 살 떨리는 위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잘 넘길 수 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155p 그렇게나 되고 싶었던 교사의 꿈을 이루어 첫발을 내디디고, 겨우 한 달도 채 안 되어 마주한 건 상실감과 허무함, 자격지심이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더니, 딱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공부할 때는 그저 되고 싶다는 간절함만 있었고, 되기만 한다면 너무 감사히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막상 되고 보니 8호봉이니 뭐니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161p
들어가며 -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chapter 1 - 어쩌다 보니, 임용고시생
오춘기, 방황의 시작
엉망진창 우당탕탕 초수생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법
여전히 제자리걸음
취업열차 마지막 탑승객
자세가 틀렸다
시험이 뭔데
이게 살아있다는 거구나
모두 개똥 같은 소리였다
공부하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기
chapter 2 - 행복이든 꿈이든 개똥 같은 소리였다
잃어버린 생일
내 인생의 롤모델
나는 들러리였구나
시험 중 일상
위로와 응원들
멘탈 건강
상처는 또 한 뼘 자라게 합니다
위로가 되는 것들
김 선생님, 김 선생님
이미 보통의 연애는 글렀다
새벽 5시 30분
chapter 3 - 퇴근하면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무경력자의 처음
처음 선생님이라 불리면서
퇴근하면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었다
올인해서 준비하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1차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이상으로 모든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왜 자꾸 선조를 인조라고 말씀하셨어요?
chapter 4 - 저는 8호봉 막내 선생님입니다
최종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달라진 세상
저는 8호봉 막내 선생님입니다
합격 후 하고 싶었던 것들
술 한잔해요
첫 학교, 첫 학년, 첫 학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