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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489379 / 268쪽 / 268g / 113 x 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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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낯선 관계 속의 ‘신뢰’와 ‘소통’, 그 속에 비쳐나는 고독한 삶의 빛깔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세 번째 소설인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는 전작들의 배경이었던 한국(『속초에서의 겨울』, 2016)과 일본(『파친코 구슬』, 2018)에 뒤이어, 이번엔 러시아의 국경선 근처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무대와 객석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1992년생인 저자는 이번에도 늦가을의 풍경을 아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늦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즌. 공연이 없는 황량한 서커스 울타리 안에서 세 명의 단원이 러시안 바 훈련을 한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러시안 바를 어깨 위에 올리고서 트램펄린 챔피언이었던 안나를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울란우데에서 열리는 국제 서커스 경연대회를 준비 중인 이들은 3회전 공중제비 연속 4회 성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로가 최고 수준의 유대감을 갖춰야 한다. 가까워졌다가도 어느 순간엔 “마치 원자핵이 터진 것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야 하는 그들은 고독한 존재들이다. 의상 제작을 위해 러시아에 온 나탈리는 이미 친분이 형성되어 있는 이들 팀에 끼어들려고 애쓰지만, 왠지 자신감이 없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러시안 바’라고 하는 서커스 종목을 통해 의사소통을 이루고 서로 간 ‘신뢰’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섬세하고 감미로운 소설.
내 임무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만들어야 할 의상들.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나에 대한 그들의 신뢰가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난 경험이 거의 없다. 울란우데 경연대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다 더럭 의심이 든다. 우린 서로를 잘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들의 신뢰가 비정상으로 느껴진다. 실력도 검증되지 않은, 잘 알지도 못 하는 여자한테 맡길 정도라면 의상 제작이라는 내 역할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확률이 높다. (p. 54)
일상의 침묵과 긴장된 삶 속에 유연함을 만드는 적절한 거리와 암묵적인 동조
러시아인이며 65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안톤은 젊은 파트너인 니노를 여덟 살 때부터 훈련시켰고, 니노는 독일에서 서커스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리고 공중 곡예사인 안나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전직 트램펄린 챔피언이었으나 최근 이들 팀에 합류했다. 레옹은 퀘벡 출신의 기술 전문가이자 트리오 공연의 연출가이다. 서커스 무대 의상을 제작해본 경험이 없는 젊은 여인이자 화자인 나탈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 코카서스인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모두가 함께 섞여 사는 공동체 삶의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애쓴다. 이들 각자에겐 내면의 고통이 존재한다. 완벽한 운동선수였던 안나는 이전에 겪은 사고에 대한 강박이 있지만 이를 외면하며 거짓말을 하고, 관객의 퇴폐적인 욕망을 두려워한다. 안톤은 자신이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톤이 바를 놓친다고 상상해봐. 그가 자기에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평생 해오던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걸 넌 어떻게 알 수 있을 거 같아?” (p. 174)]
니노는 중압감을 떨치기 위해 열네 살 때부터 술을 마시곤 했었고, 지금은 속귀에 문제가 있다. 속귀의 문제는 균형 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지만 그는 그것을 고백하길 거부한다. 나탈리는 때로 자신이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듯 각자가 지닌 비밀스러운 고통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점차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모두가 서로에게 이방인으로, 내면의 긴밀한 관계가 없는 이 인물들은 공동의 창조적 행위 안에서 결속되어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서로를 돕는다. 적절한 거리와 암묵적인 동조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를 찾는 일인데, 신뢰야말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에 맞서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균형 감각이 사라진 허벅지를 있는 힘껏 양손으로 꽉 움켜잡고 있었다. 어떻게 당신들을 믿고 쓰러지라는 거야? 난 속으로 화가 났다. 아무 보호 장비도 없이 바닥에서 1미터 60센티나 떨어진 데 떠올라 있다니! 등 뒤에서 니노로부터 계속 지시가 떨어졌다. “당신은 다칠 수가 없어요. 절대로 안 다친다니까요! 그냥 똑바로 서 있기만 해요. 그 상태에서 그냥 레옹 쪽으로 쓰러지라고요. 허리에서 움직임이 나와야 해요. 그 자세를 똑바로 유지해요.” (p. 131)
무거움과 가벼움, 무력과 긴장감 사이의 아름다운 균형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긴장된 근육이 보이고, 도시까지 올라오는 바다 냄새가 나고, 새콤한 사탕의 맛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글쓰기는 그녀가 묘사하고 있는 관계들만큼 아름답다. 자신에게 충실한 그녀는 문화들과 대륙들이 서정적인 입맞춤을 하게 만든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스펙터클. 《르 피가로》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게 숨는 것. 이 침묵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글쓰기 특징이다. 그녀는 환경 속에서 비밀의 비율을 훌륭하게 측정한다. 《텔레라마》
이 소설의 이야기 속에는 서커스 아티스트들의 얼굴에 젖어 있는,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닌 그런 묘한 미소가 떠돌고 있다. 왠지 불편한 어떤 것이 지속되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작가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수수께끼를 공들여 다듬어낸다. 《르 몽드》
이 소설에는 작가의 전작들에서 독자들이 사랑했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 무력과 긴장감 사이의 균형. 눈길을 끄는 화려한 러시안 바 공연에 저자는 요란한 북소리도, 지나친 탐구도 없이 신중한 기술과 단음계적 색조를 부여한다. 하지만 더 확실한 건, 이 젊은 작가가 우아함과 유연성을 잃지 않으면서 힘과 포용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리브르 엡도》
안전그물이나 눈속임 없이 삶의 실체를 붙잡아 낸 놀라운 작품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는 작가와 실제 ‘러시안 바’ 트리오와의 만남을 통해 탄생했다. 작가가 만난 이들은 부모로부터 스타라이트 서커스단을 물려받은 서커스 아티스트 조니 가세가 구성한 트리오였다. 작가가 그들을 만난 것은 대륙횡단 열차 여행 도중 경유한 모스크바에서였다. 낯선 세계 속에 빠져든 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소설 속의 화자와 같았다. 서커스 세계에 문외한인 초보 의상 제작자를 화자로 그린 것에 대해 작가는, 소설 속 여주인공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하나의 피부 같은 의상, 즉 정체성을 창조해야 했다고 말한다. 의상은 하나의 상징성을 덧입히기 때문이다.
[난 다시 의상에 대해 생각했다. 안나는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옷이 꽉 조이지 않고 그녀의 동작과 혼연일치를 이뤄야 한다. 피부처럼 착 달라붙지만, 너무 꼭 끼지는 않게. 관객에게 안나의 몸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보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p. 189)]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지 않으면서 암시하거나 떠올리게 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엘리자 수아 뒤사팽에게 필적할 사람이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 감동적인 표현 같은 것은 없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인물들의 감정을 추측하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감정들을 느낀다. 그녀가 다루는 깊이 있는 주제는 신중한 접근, 첨예한 연구, 효과적인 글쓰기로 표현되었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이 세 번째 소설은 서커스의 안전그물이나 눈속임 같은 것 없이 뛰어난 솜씨로 작품을 성공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엘리자 수아 뒤사팽는 그녀가 단어들을 사용해서 공중 곡예를 시킬 줄 안다는 점을 또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난 말이죠, 관객이 오는 건 그저 서커스가 아직도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려는 거죠. 사람들은 꿈을 원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바라는 건 흠을 찾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단점이나 결함 같은 걸 발견할 때, 오히려 자신은 안심하게 되거든요.” (p. 83)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
1992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파리와 서울, 스위스의 포렌트루이를 오가며 자랐다. 비엔 스위스 문학연구소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살고 있다. 첫 소설 『속초에서의 겨울』은 스위스 문학상인 ‘로베르트 발저 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문필가협회 신인상’ 그리고 프랑스어로 쓰인 첫 번째 소설에 한해 심사하는 ‘레진 드포르주 상’을 수상하는 등 출간과 동시에 유럽 문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속초에서의 겨울』로 작가의 입지를 굳힌 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두 번째 소설 『파친코 구슬』에서 도쿄를 무대로 태생의 뒤얽힌 실타래들을 풀고, 한국전쟁 후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의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한다. 한국을 배경으로 정체성 탐구의 여정을 시작한 첫 작품에 이어 두 번째 작품에서 일본을 배경으로 가족관계와 소통의 단절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면, 이번 세 번째 작품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상에 있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낯선 이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에서는 한국인, 일본인, 러시아인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공중 곡예를 선보이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 투명하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주경 옮김: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불문학과를 졸업. 프랑스 리옹 제2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수료 후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눈표범』, 『엄마를 위하여』, 『달콤 쌉싸름한 꿀벌』,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멋진 놈』, 『살해당한 베토벤을 위하여』, 『성경-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레 미제라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1, 2, 3』, 『흙과 재』, 『교황의 역사』, 『80일간의 세계 일주』, 『신은 익명으로 여행한다』, 『어리석은 철학자』, 『인간의 대지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 『인생이란 그런 거야』, 『토비 롤네스』 외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