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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한설야 저 | 국학자료원(새미,이소 | 200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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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2064302 / 528쪽 / 686g /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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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930년대 대표적인 리얼리즘 소설의 중심에 한설야의 [황혼]은 놓여 있다. 본격적인 장편 노동소설이라는 외형적인 성과와 더불어 30년대 후반에 식민지 조선의 노동 현실과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투쟁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자 한 작가의 의식적인 노력에서 더 큰 문학사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문학사적 중요성 때문에 그간 한설야 문학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행해져 왔으며 특히 그의 대표작인 [황혼]은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 읽혀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황혼]이 한설야의 월북 이후 새롭게 개작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고, 개작본에 대한 검증은 한설야의 북한문학계에서의 활동상과 관련하여 많은 연구가들의 관심사로 남아 있었다. 서로 다른 체제적 한계에 갇혀 정확한 텍스트 검증의 길마저 막혀 있던 연구가들에게 있어 개작본 텍스트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새롭게 살피는 데 더없이 결정적인 물적 증거가 될 것이요, 관심의 대상이면서도 그 실체를 정확히 볼 수 없었던 독자들에겐 북한문학의 기원을 이해하는 좋은 교과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저자 소개

  • 저자 : 한설야
저자 : 한설야
1900년 8월 3일 함흥 지역 한씨 집성촌인 함경남도 함흥군 주서면 하구리 503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직연은 청주 한씨 안양공파 31대손이며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의 문하생이다.
1915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했고, 1918년 함흥고보로 전학했다. 1919년 함흥법전에 진학했지만 같은 해 동맹휴교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제명당한다. 1920년부터 1년 남짓 베이징의 이즈(益智)영어학교에서 사회과학을 수학했으며, 중국 육군성 조선인 관리의 집에서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
1921년 귀국한 후 북청 학습강습소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시 <부벽누에셔>를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정식으로 등단할 때까지 10여 편의 창작시, 번역시, 소개문, 추도문 등을 발표했다.
1923년 도쿄의 니혼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사회과학 공부와 문학작품 습작에 열중하던 중 관동대지진이 나자 대학을 휴학하고 가을에 귀국했다. 1924년 북청에 있는 대성중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북청자전거운동회사건’을 계기로 북청을 떠나게 된다.
1925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그날 밤>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한다. 1926년 봄에 부친이 타계하자, 중국 동북 지방의 대표적인 탄광 지대인 푸순(撫順)으로 이주한다. 이 시기에도 문학평론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데 전념하며 창작을 지속했다.
1927년 1월에 귀국한 후 카프에 가입한다. 가입과 동시에 아나키즘 논쟁에 적극적으로 나서 김화산을 강력 비판한다. 제3전선파의 이북만과도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이후에도 여러 편의 문예학 및 사회과학 원론들을 발표한다. 1928년 문예운동의 방향 전환과 관련하여 박영희 등의 카프 지도부를 비판하는 <문예운동의 실천적 근거>를 발표한다. 이후 카프 내의 논쟁에서 패배한 후 낙향하여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한다. 이 논쟁을 통해 한설야는 계급문학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옹호자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1929년 여름에는 압록강과 백두산 일대의 국경 지방을 여행하기도 한다. 1930년 경성에 올라와 조선지광사에 입사하고, ≪신계단≫, ≪대조≫, ≪조선지광≫ 등의 편집에 관여한다. 1933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고, 간도에 특파돼 공산당의 경찰서 습격 사건인 ‘팔도구 습격 사건’을 취재하기도 한다. 1934년 신건설사 사건(카프 제2차 사건) 때 체포되어 전주 감옥에서 영어 생활을 한다. 1935년 12월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함흥으로 귀향한 후, 동명극장과 인쇄소를 동시에 경영한다. 1940년 6월경에 베이징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 1943년 유언비어 유포 혐의를 받고 문석준과 함께 징역형을 선고받아 투옥된다. 1944년 5월 감옥에서 병보석으로 풀려나 자전적 장편소설 ≪해바라기≫를 집필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
1945년 9월 이기영 등과 함께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결성하고, 12월 10일 분열된 문학계의 통합 논의를 위해 상경하여 아서원 좌담회와 봉황각 좌담회에 참여한다. 서울에 조선문학동맹이 결성되는 것을 보고 12월 말에 북한으로 귀환한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함경도 대표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당시 문인 중에서 가장 발빠르게 김일성 형상화에 착수했다. 1947년 7월부터 9월까지 소련을 여행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이듬해 ≪쏘련 여행기≫를 발간했다. 1949년 4월 ‘평화 옹호세계대회’ 참석차 파리를 방문하여, 세계적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51년 어머니가 타계했고, 1953년 임화를 중심으로 한 월북 문인의 숙청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1940년대 후반부터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교육문화상 등을 역임했다. 1960년 ≪력사≫로 인민상을 수상했고, 한설야 선집이 15권 계획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1962년 김창만 등이 주축이 된 김일성 세력은 한설야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12월 10일 당 4기 4차 전원회의에서 숙청이 결정되었다. 1963년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자강도 시중군의 협동농장으로 쫓겨났다가 1976년 별세했다.
  

목차

001. [황혼] 극작본을 소개 002. -아침 안개에 사로잡힌 태양이 바로 동산머리에 가까이 와서 003. 일년감 빛으로 졸고 있다. 004. -'경재 있니? 이리 좀 나오너라' 005. -토요일날 석양이였다 006. -경재가 현옥이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시간에 려순은 준식이 007. 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008. -경옥이는 녀자 보통 학교 입학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009. -안 사장이 새로 취임한 후 사무실, 특히 사장실과 거기에 010. 달린 응접실은 말끔 면목을 일신하였다 011. -여름밤, 아홉시 경이였다. 012. -락범이와 기태가 나가버린 담에야 려순은 방으로 들어왔다 013. -'얘 현옥이 있냐?' 014. -어제밤에현옥이가주고간불쾌감은오늘아침까지도개여지지않았다. 015. -여름은 무르익어 갔다. 016. -직포부 직장(織布部 職場)― 二백 대의 력직기(力織機)가 네 017. 대씩 한데 붙어서 좌우 두 줄로 길다랗게 늘어 놓여 있었다. 018. ...... 019. -쿵쿵 울리는 동필의 성난 발소리가 대문 밖에 사라진 다음 020. 복술이도 급히 집을 나섰다. 021. -사장은 극도로 흥분되었다. 자기 탁자에 놓인 로동자들의 022. 요구 조거도 다시 들여다 보지 않고 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023. -지배인이 총총히 물러나간 다음 경재는응접실에서 바로 024. 사장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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