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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424893 / 148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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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다르면서 같게, 같으면서 다르게 몇번이고 다시! 반복되는 질문으로 ‘시’를 만나고 ‘너’를 만나다 시집을 펼치면 절묘하게 짜인 애너그램을 활용한 시들이 단연 눈에 띈다. 애너그램은 ‘라임의 미학’을 이루기도 하여, 마치 랩을 듣는 듯 시의 운율을 만끽하게 한다. 그러나 정끝별의 시에서 애너그램은 단순히 시적 리듬감을 위한 형식이나 언어유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동일한 모음과 자음을 재조합해 연결한 “정교한 적요” “무한한 하문” “살벌한 발설” “미망의 마임”(「시다 시, 다 시다!」) 같은 표현들은 ‘시’ 자체를 은유하고 있다. “우직한 궁지에 몰린 염소의 소명” “고통의 옥토에서 응전하는 증언”(같은 시) 등의 시구 또한 언어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시’의 모습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시의 “형식과 내용이 이토록 정교하고 아름답게, 우발적이며 감각적인 방식으로 결합하며 시가 무엇인지, 시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보여주”(황인찬, 해설)는 시집이 있을까.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애너그램 기법은 가히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 시집에서 도드라지는 또다른 특징은 반복되는 시어들을 질문의 연쇄로 쏟아낸다는 점이다. “모래는 뭘까?” 하고 모래의 정체를 탐구하는 질문들이 연속되지만, 붙잡으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들처럼 “뿔뿔이 흩어”(「모래는 뭐래?」)질 뿐 답을 들을 수 없다. 여기서 시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노력, 동시에 본질을 완전하게 담아낼 수 없는 시의 한계가 드러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시인은 실패를 내정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세상을 탐구하고 질문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무구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묻는다. 시의 지향과 그로 인한 숙명적인 좌절,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를 쓰고 존재에 다가서고자 하는 이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은 시의 도전이 필연적으로 실패할지언정 절대 무의미하지는 않음을, 또 무의미하게 두지 않겠노라는 시인의 결기를 의미한다. 모래에 접근하기 위해 변주되며 반복되는 질문들은 그리하여 “모래가 너일까?”(「모래는 뭐래?」)라는 새로운 질문에 다다른다. 무의미로 와해되는 질문의 반복 끝에 마침내 ‘나’는 ‘너’와 만나게 되고 새로운 의미와 접속하게 되는 것이다. 시 쓰기를, ‘너’와 만나기를 멈추지 말기를 주문하는 시인의 우직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이건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 정끝별의 시는 시종일관 또렷하게 “인간에 닿아 있”(추천사)는데, 여기서 ‘인간’은 ‘비(非)인간’을 포함한 생명 전체로 확장된다. ‘지금-여기’에서 ‘저기-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에 대한 경외가 서려 있다. “지느러미를 팔다리 삼아/기다란 송곳니를 지렛대 삼아”(「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 살 곳을 찾아 해안가 절벽을 기어오르다 최후를 맞는 바다코끼리, 몸속이 “쓰레기로 꽉 찬 폐기물”이 되어 “죽어서도 썩지 못하”(「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후예」)는 갈매기 등 각종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인해 세계가 감당하고 있는 죽음과도 같은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시시각각 스러져가는 운명을 인간 또한 피할 수 없음을 엄중한 목소리로 선포한다. 지진과 태풍 등 기후재난이 수챗구멍의 역류하는 하수처럼 쏟아지는 “소멸의 풍경”(「떼까마귀 날다」)은 동물의 멸종뿐 아니라 “제 이빨로 저마저 물어뜯어 모두의 끝을 보고”(「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 마는 탐욕스러운 인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만인의 평등, 만물의 상생, 만유의 자유는 시가 꿈꾸는 아름다운 가치들”이며, “불가능의 가능성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시의 가치이기도 하다”고 피력한 바 있다. 그렇기에 시인은 “남자들을 위해 씻고 닦고 빨고 삶고 낳고 먹이”(「언니야 우리는」)는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맞서야 하는 타자화된 주체로서의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 소수자 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형태의 강요와 폭력에도 저항의 몸짓을 내보인다. 차별과 편견의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세가 바뀌면 지평이 바”뀌고, “지평을 바꾸다보면 탈출할 수 있으니 무엇이든 돼! 돼! 돼! 무엇이어도 괜찮아”라고 북돋우며 아직은 우리에게 “두 발로 써야 할 길의 역사”와 “타들어가면서도 마주해야 할 빛의 역사”(「이 시는 세개의 새 시입니다」)가 있음을 직시한다. ‘사랑의 마음’과 ‘믿음의 연대’로 “참담한 허무와 실존적 고독의 세계”(해설)을 헤쳐 나간다. 세상 모든 것이 모두 시라고 정의하는 시인은 계속해서 시를 써 나가리라는 소망을 피력한다. 삶이 남루하고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끝나지 않는 희망이 시”라서 시인은 순결한 시심을 가다듬으며 언제나 “시를 살고자 한다”(「어느 시인의 인터뷰에서」). 그러하기에 견결하고 생기로운 “시의 언어들이 내딛는 안간힘”(「이건 좀 긴 이야기」)을 그러모아 희망의 서사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소외된 곳, 죽어가는 곳, 억압받는 곳을 지치지 않고 응시하며 만물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긴 시를 써 나간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간절하고 애절한 시인의 노래에 귀기울여보자. “첫눈처럼 참았다 눈물처럼 녹아”(「노시인과의 카톡」)들 듯 시를, 삶을, 사람을 속절없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한 날개는 금세 도망칠 쪽으로 한 날개는 끝내 가닿을 쪽으로 기우뚱, 날개 밖 풍파의 서사를 날갯짓의 리듬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그 새에 대해 누가 노래할까? 다행이야 응, 아직 울 수 있어서 2023년 5월 정끝별
제1부 · 이 시는 세개의 새 시입니다
디폴트값
칠할의 칠일
이 시는 세개의 새 시입니다
아무나는 나이고 아무개는 걔이다
이 시는 다섯 발톱의 별 시입니다
모래는 뭐래?
제2부 ·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고양이 시간
회복기
버뮤다 삼각지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뽀또라는 이름의
그루밍 블루
사막거북
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
동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건 좀 긴 이야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후예
무구와 무고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
우리가 넘치나이다!
떼까마귀 날다
제3부 · 이건 좀 오래된 이야기
너였던 내 모든
소금이 가고
모방하는 모과
모과 타투
두부 이야기
강릉 점집
네 눈동자를 보는 내 눈동자
폭풍의 언덕
청파동 눈사람
곡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갈매기의 꿈
이건 좀 오래된 이야기
여름 이야기
언니야 우리는
응암동엔 엄마가 산다
가을장마
제4부 · 방 구합니다
분홍 설탕 장미
고로쇠 한 철
방 구합니다
바다와 절벽
시는 어디에?
시인은 누구?
이중섭의 「소」를 보면
노시인과의 카톡
애착시어사전
시다 시, 다 시다!
어느 시인의 인터뷰에서
처음에서 다음까지
한줄 농담
저주받은 걸작
해설|황인찬
시인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