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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벌과 사대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과 대명의식

이규철 저 | 역사비평사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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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961419 / 304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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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태조, 대외정책 기조를 수립하다 : 국익을 위해서라면 명도 공격할 수 있다 조선의 대외정책 기조는 이성계, 정도전과 같은 건국 핵심 세력의 주도하에 수립되었다. 그들은 공민왕대 대외정책의 시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공민왕대 추진되었던 대외정책 기조는 조선 건국 후에도 연결되었다. 조선은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태조의 터전이었던 동북면과 두만강 일대의 여진 추장들을 귀부시켜 압록강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자국의 영역을 설정했다. 하지만 여진 세력의 지배 문제는 조선과 명의 대립을 야기했다. 조선은 건국 후 왜구에 대해서 새 왕조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마도 정벌을 단행했다. 그리고 명과의 정면대결을 감수하면서까지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 비록 요동 정벌은 좌절되었으나 조선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명도 공격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태종, 대외정벌 정책을 추진하고 국제관계를 조율하다 : 대명관계 개선과 여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 왕자의 난을 통해 국정을 장악하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태조대와는 달리 명과의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태종은 누구보다 사대명분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외교적 사안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여진 초유 문제에서는 명과 대립하는 양상도 보였다. 당시 조선은 여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명에 입조했던 동맹가첩목아 처리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대명외교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조선·여진·명 삼자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태종 10년 단행된 올적합 정벌은 모련위 지역에 대한 조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행동이었다. 정벌의 시행과 이와 관련된 내용을 중국에 보고했던 조선의 태도를 통해, 태종의 집권으로 인해 대외정책의 방향이 변했지만 목표까지 변경된 것은 아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태조대의 대명 강경론자들이 북방 지역 경략을 위해서는 명과의 군사적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는 견해였던 것에 비해, 태종대에는 북방 지역 경략을 위해 명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태도의 차이가 나타날 뿐이었다. 태종은 국정과 외교관계의 안정을 위해 사대를 더욱 강조했다. 세종, 정벌을 통한 영토확장과 왕권강화를 노리다 : 파저강 정벌을 통해 노린 것과 얻은 것 정벌을 중심으로 한 대외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후대의 국왕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임금은 세종이었다. 세종은 지성사대를 강조하면서도 여진 정벌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에 구애받지 않았다. 세종은 정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황제의 지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세종은 두 차례에 걸친 파저강 정벌을 단행했고, 정벌의 성과를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세종은 정벌 이후 재위 전반기보다 더욱 강한 정치적 통제력을 행사했다. 특히 세종은 정벌의 추진 과정에서 신료들의 반대의견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국왕이 대외정벌을 활용해 군주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정치 주도권을 확대하고자 했음을 설명해준다. 태종이나 세종은 대외정벌의 실패가 가져올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의 조치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국왕 주도하에 보다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외정벌이었다.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성과가 훨씬 컸기 때문에, 조선 초기의 국왕들은 신료들의 거센 반대에도 정벌의 시행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세조, 명의 견제 속에서 대외정벌 정책을 계승하다 : 모련위, 건주위 정벌 이후 조선과 여진의 관계 세조는 계유정난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이후부터 여진 세력들의 내조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명은 사신을 파견해 조선과 여진의 통교를 문제 삼으며 압력을 가했다. 조선은 명의 견책에 대해 해명하고자 노력했지만 명이 실제로 요구했던 여진과의 교류 중지는 거부했다. 조선은 명에 대한 사대 자체를 부정하거나 정면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하면서도, 국익을 위한 대외정책을 유지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였다. 명의 건주위 출병은 정벌을 통해 조선을 견제하고 여진 지역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였다. 세조대의 조선은 명의 청병 요구에 응하면서도 정벌 성공의 가늠자가 되는 적의 총수 포획과 처형에 성공함으로써 여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은 사대명분을 지키면서 여진 지역에 대한 영향력도 유지했다. 성종, 대외정벌과 사대 사이를 방황하다 : 대외정벌 정책의 실패와 왕권의 약화 성종 재위기는 국왕의 정벌 추진에 대한 신료들의 반대 양상이 더욱 확대되어 나타난 시기였다. 또한 국왕과 신료 모두 이전 시기보다 사대명분에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명은 세조대처럼 건주위 정벌에 조선의 지원을 요청했다. 전대의 국왕들에 비해 국정 장악력이 떨어졌던 성종이 사대명분에 의탁해 국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했다. 명이 건주위 정벌에 다시 나섰던 데는 해당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조선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성종대의 조선은 사대의리를 지키는 일에 급급해 여진 지역에 대한 영향력 감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는 여진 지역에 대한 조선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성종 22년의 북정은 대간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정벌군 편성으로 단행되었다. 하지만 북정은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 상황은 이전과 달리 언관의 활동과 공론 등이 국왕의 정치적 주도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했다. 성종대를 중심으로 조선의 사대의식은 명분과 국익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얻고자 하던 태도에서 점차 명분과 국익이 하나가 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되었다. “15세기 조선은 한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외정벌을 자주 시행했다. 조선왕조 500년은 물론 한국사 전체를 살펴봐도 찾기 어려운 독특한 사례이다. 조선의 정벌은 국가와 국가가 대립했던 대규모 전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사실상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행위였다. 따라서 15세기 조선이 대외정벌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행했던 의도를 설명하는 것은 조선 초기의 국가적 역량과 국제관계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조선의 대외정벌은 표면적으로는 여진과 왜구에 대한 군사행동이었지만, 실제로는 명·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 문제였다. 15세기 조선의 국왕들은 ‘사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대외정벌의 필요성 역시 강조했다. 그들은 대외정벌의 시행이 사대명분과 충돌한다는 비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5세기의 조선은 ‘사대’를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가치로 인식했던 것이 아니라 국정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정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했다.”

저자 소개

  • 저자 : 이규철
저자 : 이규철
조선 전기 국제관계사와 역사콘텐츠 연구자로서, 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다. 15~16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조선의 대외정책을 통해 파악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기존의 조선시대사 연구를 심화하면서 역사 속 내용을 현대사회에 활용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논저로는 「연산군 대 대외정벌 추진 과정을 통해서 본 외교 역량의 약화」(2019), 『고려에서 조선으로―여말선초, 단절인가 계승인가』(공저, 2019)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1부 태조대 대외정책 기조의 수립과 대마도·요동 정벌
1장 건국 후 대외정벌 정책 수립의 배경
2장 1396년 대마도 정벌의 의미
3장 건국 직후 대명관계와 요동 정벌의 추진

2부 태종대 대외정벌 정책의 추진과 시행
1장 태종대의 대명의식과 모련위 정벌
2장 1419년 대마도 정벌 이전 왜구의 활동과 명의 상황
3장 명의 정왜론에 대한 조선의 논의와 대마도 정벌

3부 세종대 대외정벌 정책의 본격화와 파저강 정벌
1장 파저강 정벌 이전의 국제정세
2장 여연 사건과 파저강 정벌의 결정
3장 파저강 정벌 단행과 조선의 대명의식
4장 파저강 재정벌의 준비와 단행
5장 영토 확장과 대외정벌의 위험성

4부 세조대 대외정벌 정책의 계승과 대명의식
1장 모련위 정벌의 의미와 대명의식
2장 건주위 정벌 단행과 명의 출병 요청

5부 성종대 대명의식 변화와 대외정벌 정책의 한계
1장 명의 출병 요청과 대명의식의 변화
2장 북정 실패와 왕권의 약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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