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91160407891 / 248쪽 128 x 188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박솔뫼, 성혜령, 임솔아, 장희원, 정기현, 황시운
-
오야마 세이이치로
-
천선란
-
박경리
- 15,300
- 16,200
- 15,300
- 19,800
출판사 리뷰
“세상은 유령이 살기에 더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덤덤하고 세밀하게 일상을 관조하는 유령의 글쓰기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는 주인공 ‘나’는 20대에 정리해고를 당하고, 급하게 이직한 회사마저 경영 악화로 폐업을 하자 돌연 ‘백수’가 된다. 학생, 대학생, 취준생…… 익숙했던 ‘생’의 자리를 박탈당한 나는 무엇이든 되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채용 사이트에서 발견한 한 약국에 취직한다. 나이 무관, 성별 무관, 학력 무관, 경력 무관이라는 채용 조건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임과 동시에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임을 ‘나’는 알고 있다. 면접 자리에서 만난 약국의 국장 김 약사는 대뜸 “유령이 또 왔네”라며 나를 유령이라 부르고, 나는 “상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유령이 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또 한 명의 유령 같은 인물, 조 부장에게 일을 배우며 기꺼이 유령이 된다. 비슷한 약의 이름을 외우고, 처방전을 입력하고, 약값을 계산하고, 조제를 돕는 일상은 다른 듯 다르지 않게 흘러간다. 땅부자 할아버지, 문신 토시를 착용한 남자, 갈색 푸들을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 치약값을 깎는 중년 여자, 판피린을 사 가는 할머니 등 소설에는 실제 어느 동네, 어느 약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이 핍진하게 묘사된다. 그 속에서 나는 사업 실패로 빚을 지고 이혼한 듯한 조 부장과 조금씩 친밀해지지만 역시 그 이상으로 관계가 발전하지는 않고, 자신의 20대에 깊은 영향을 끼진 ‘혜’라는 인물과 멀어지면서 거스러미 같은 상실의 날들을 담담하게 이어간다. 그렇게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은,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멍 자국조차 남지 않은 나의 모습이라거나, 문신 토시의 남자가 피를 철철 흘리며 약국에 찾아오거나, 한 중년의 여자가 김 약사를 향해 화를 퍼붓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토시가 피로 물들면서 검푸른색 용무늬가 지워져갔다. ─식겁하게 저런 걸 입고 다녀. 다시는 안 왔으면 좋겠네. (…) 남자가 더듬더듬 지갑을 주워 일어섰다. 팔을 타고 흐른 피가 손목에 고이다 뚝 떨어졌다. 문을 흔들어대는 바람 소리가 황량하게 들려왔다.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남자의 발에 차인 물건이 계산대 앞까지 굴러왔다. 장난감 달린 비타민이었다. 언제 유령이 됐는데요? 밀물이 다가오듯 얇게 깔린 물이 순식간에 차올라 실내를 가득 채웠다. 물속에서 두 개의 빛이 다가왔다. 미지의 생물이 입을 쩍 벌리고 내려와 나를 한입에 삼켰다. _본문에서 어렴풋한 존재들, 어렴풋한 사건을 관조하면서 그 이음새 사이사이 스파크가 일듯 벌어지는 조그만 환상들을 놓치지 않고 표현해내는 저자의 화법을 ‘유령의 글쓰기’로 부를 수 있을까. 한국문학의 새롭고 특별한 발견이 될 고민실의 서사는 소설의 주인공인 ‘내’가 그리고 독자인 우리가 살아온 유령 같은 삶과 대비되어 더욱 몽환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가끔 사진을 확대해볼 때가 있어. 어디선가 한 칸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작은 픽셀이 모니터를 꽉 채우는 걸 보면 위안이 돼.” 아주 작은 존재들이 모여 이루는 픽셀의 바다 그렇다면 1이 되지 못한 0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0들의 존재감은 그렇게 흐릿하기만 한 것인가. 소설의 2장에 그 실마리가 담겨 있다. 나는 열심히 할 의지도 이유도 없이 다녀야 하니까 다니기로 했던 약국을 그만두고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기 시작하고, 평소 활동하던 모임의 사람들과 함께 주말 집회에 참석한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0이 한데 모여 같은 곳을 향해 외칠 때, 그 소리는 분명 어떤 형태와 목적을 가진 ‘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말한다. 0은 어떤 값도 나타낼 수 없는 숫자이지만, “다른 숫자 뒤에 채워 넣기만 하면 얼마든지 큰 수를 표기할 수 있다”고. 픽셀처럼 작은 존재들이 모이고 모이면 ‘픽셀의 바다’와 같은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영의 자리》는 과도화된 경쟁과 뛰어넘을 수 없는 불평등 속에서 더 좋은 자리를 점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면서까지 아등바등 조급하게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소설에 나오는 ‘나’가 무수한 영의 시간을 지나 회복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던 것처럼, 0도 하나의 삶의 단위이자 자리이고 그 자리를 숨 고르듯 지켜내다 보면 뜻밖에 기회나 사건에서 큰 전환점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이야기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우리 곁이 아닐까. 자신이 불투명한 삶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므로. 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면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습니다. 영에 어떤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를 영으로 바꿉니다.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책 속에서 20대라도 정리해고될 수 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열정을 투자하라던 사장은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기 시작하더니 2년 만에 계약을 종료했다. 급하게 이직한 회사는 경영 악화로 1년을 겨우 넘기고 폐업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구직활동을 시작하면서 취준생 대신 백수라고 불렸다. 익숙했던 ‘생’의 자리를 박탈당하자 무엇이든 되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_11쪽 0에서 1로 변모하는 과정은 설레면서 우울하다. 곧 1이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므로 0에 가까운 자신을 체감하게 된다. 첫 출근 날에는 0.0000001쯤 되는 기분이었다. _34쪽 하얀 눈썹을 찡긋거리듯 밀려오는 파도. 수평선 위에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구름. 습한 바람에 헝클어지는 머리. 백사장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향기로운 차와 달콤한 케이크…… 그리움이란 시공간을 복기하는 행위이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만이 아니라 공기의 감촉과 향기까지 모조리 끄집어내 되새김한다. 복기를 끝내는 순간 이별이 완성되겠지만 나는 여전히 썰물 속에 다리를 묻은 채 서성이고 있었다. _56쪽 혜는 책을 많이 읽었다. 주로 소설과 인문학 서적이었다. 나는 혜가 선택한 책을 같이 읽기 시작했다. 독립영화를 찾아 보고 전시회를 관람했다. 풍족한 문화생활에는 돈이 들었다. 혜의 취향을 쫓아가기 버거웠지만 성장의 기쁨이 생활의 결핍을 충족해주었다. 나의 20대는 그를 빼놓으면 성립하지 않았다. 혜라는 창을 통해 온전히 세상을 바라본 시기이기도 했다. _73쪽 ─언제 유령이 됐는데요? 시간을 되감듯이 같은 목소리와 같은 표정으로 아이는 질문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어느 한 지점을 곱씹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부모님에게 보증금으로 사용할 돈을 빌렸을 때, 혜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헤어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에 취업했을 때, 화장을 그만두었을 때, 덕질을 시작했을 때, 유령을 보았을 때…… 꿈과 현실을 혼동할 나이였다. 한밤의 어둠보다 까만 시선에 꿰인 채 유령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날카로운 적의는 몸에 남아 침전되었다. 유령을 무서워하던 내가 유령이 되었구나. _77쪽 혜를 집에 데려다준 뒤로 단단한 기둥 같았던 사람이 연약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식된 면이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자리에 머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자리를 옮겨 앉는 순간 어긋난 틈을 메우지 못한 채 자꾸 벌어지기만 했다. 관계가 허물어지는 소리는 짧은 알림음과 긴 적요의 반복이었다. 매일 주고받던 메시지가 점차 길을 잃었다. 나는 짐이 되지 않는 기쁨과 짐이 될 수 없는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_130~131쪽 과거 흑사병 앞에서 기도는 무용했다. 의심을 품게 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신뢰를 거두면서 인문주의가 싹트고 의학의 발달을 촉진했다. 이제 의학은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약까지 만들어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미신을 믿는다. 건강에 해로운 줄 알면서 단 거를 먹고 담배를 피운다.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그저 견디기 위해서는 진통제라도 필요했다. 어쩌면 신이 사라진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물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_180쪽 나는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0은 다른 숫자 뒤에 채워 넣기만 하면 얼마든지 큰 수를 표기할 수 있다. 어쩌면 인도에서는 신의 무한한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0을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선창을 시작했다. 나도 피켓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함성에 묻히는 것 같아도 분명히 제대로 하나의 소리를 더하고 있었다. _233쪽
1장
2장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