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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81636 / 156쪽 130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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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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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어수룩한 개는 아무거나 주워먹었다 쥐약과 건넛산에 놓인 달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달이 어렴풋이 뒤뜰에 지면 홀린 듯 달려갔다 (…) 잠자리에 들 때마다 머리가 핑 돌았다 핏발 선 꽃들, 힘세고 오래가던 어지럼들 닭 뼈다귀를 화단에 던져주면 수국은 혈육처럼 그러안고 밤새 핥는 것이었다 _「흰색 가면」 부분 책장을 넘기면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시 「흰색 가면」에서부터 우리는 처절하리만치 강렬한 그리움의 정서를 맞닥뜨린다. 어쩐지 박지웅이 그려내는 그리움은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온기어린 애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럼’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며 닭 뼈다귀로 형상화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그에게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먹은 그리움에는/ 왜 뼈가 나올까”(「꽃무늬 흉터」)라고 말하는, 물리적 실체로서 감정을 감각할 줄 아는 시인의 낯선 언어는 익숙한 듯했던 감정을 재인식하게 한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생을 이루는 것들을 감각하는 시인의 운명은 「놋쇠황소」에서 알레고리 형태로 나타난다. “옛 팔라리스왕은 나를 놋쇠황소에 집어넣고/ 배 밑에 장작을 쌓았다 불을 땠다/ 내 몸에 있는 춤을 모조리 꺼내었다/ (…) / 오래전 나는/ 내가 살아 있는 것에 반대하였다”. 고문기구인 놋쇠황소는 그 안에 갇힌 사람의 비명이 웅장한 저음으로 울려나오도록 설계되었는데, 이 잔혹한 형틀에서 첫번째로 죽임을 당한 자는 다름 아닌 기구를 설계한 페릴루스였다. 그의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처럼 웅장하게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놋쇠황소는 예술가의 운명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얘기되곤 한다. 우리에게 익숙할 수 있는 감정들을 누구보다 깊게 느끼고 그것을 언어화하는 시인의 운명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이러한 연유로, 박지웅에게 시쓰기란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을 동반한 모든 정념이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것은 결국 한 사람을 이룩하는 자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시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청춘은 성냥개비 같은 어깨를 가졌지요 스치는 대로 불이 붙는 곳이었지요 손짓 한번 조심스럽던 날들 이토록 감싸는 건 내게 당신이라는 훌륭한 불행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_「훌륭한 불행」에서 지금도 슬픔과 햇볕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문틈에 서 있거나 눈을 찌르거나 엉겁결에 안고 잠드는 투명한 거잖아요 _「흉」에서 시인은 이러한 마음으로 고통과 슬픔과 상실을 받아들인다. 상실은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쌓아가는 것이라는 자의식이 시집 전반을 통해 엿보인다. 그동안 시인의 시집에 끊이지 않고 등장한 ‘나비’라는 오브제는 『나비가면』에서 상실의 미학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제목부터 사뭇 중의적인 표제시에서 우리는 “나비가 지고// 첫눈에 빠지는/ 사람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라는 시구를 발견하게 된다. 여러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이 짧은 시구를 통해 우리는 상실의 구체화된 이미지를 잠시나마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집의 말미, 「함석지붕 원고」에 이르면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저 빛나는 획순을 따라나선 당신의 문장에서 이 모든 꿈이 시작되었지요 어떤 고래는 구름의 전생을 거쳐 폭우가 됩니다 함석지붕 위로 고래 한 마리가 울며 지나갑니다 저 울음이 나의 서식지입니다 빛에서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는 비문으로 아무렇게나 흐르겠지요 괜찮습니다 죽은 손이라도 흔들어 나를 불러주세요 내 손가락들도 해저에서 높이 떠오를 것입니다 _「함석지붕 원고」에서 “저 울음이 나의 서식지”라고 말하며 “나는 비문으로 아무렇게나” 흘러도 괜찮다고 하는 시인. 하지만 “죽은 손이라도 흔들어 나를 불러”달라고, 그러면 내 손가락들도 “해저에서 높이 떠오를” 것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하는 시인의 마음이 비단 시인 혼자만의 마음뿐일까? 타인의 문장에서 고통과 아름다움과 상실과 그리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박지웅의 ‘어지럼’과 ‘슬픔’과 ‘훌륭한 불행’이 내심 반갑게 느껴진다고 해도 미안해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시인의 말
1부 가끔 다 타지 않은 편지가 나왔다
흰색 가면/ 여우구슬/ 새의 훗날/ 득음(得音)/ 텔레비전은 재밌다/ 밀대가 가능한 동작에 대하여/ 잘 가/ 이발사의 세번째 가위/ 놋쇠황소/ 사흘/ 속상한 일/ 갈치는 어디에나 있고/ 별에서 자꾸 석류향이 났다/ 가끔 타지 않은 편지가/ 천직/ 붉은 비 혈석전각/ 금침(金針)/ 아무도 믿지 않아 모두가 버린 이야기/ 뜻밖의 세계/ 맹지(盲地)
2부 별로부터 나는 얼마나 오랜 뒤의 일인지
누군가의 남해/ 꽃무늬 흉터/ 흑백의 새/ 드라이플라워/ 왜 사과는 표범이 되었나/ 거북의 털/ 꽃내권역/ 입속에 먼길이 생겼다/ 찬밥/ 흰색의 역사/ 수목장/ 창술/ 국자별 창고/ 여치/ 동업/ 백지농법/ 물방울 속의 코끼리/ 하늘처럼/ 파도경전/ 흉
3부 검은 하느님이 달아나고 있다
편의적 인간/ 사피엔스의 새벽/ 사회적 새벽/ 유해동물/ 노력/ 일도 열심히 하고 엄청 착했다/ 숲속의 잠자는 물건들/ 시가 쏘아올린 작은 공/ 테트리스 방식으로 말하자면/ 플레이어/ 그 많은 뻥들에 대하여/ 나비가면/ 실어(失語)/ 서쪽들의 밤/ 훌륭한 불행/ 데스마스크/ 개 속으로 들어간 사람/ 종이 위의 모래의자들/ 어른이나 당구장이나/ 서점에서 팬티 사기
4부 누군가 물속에서 등잔불을 흔들듯
백년과 나비의 어디쯤에 당신이/ 혼불들/ 밤이 며칠째 가지 않는다/ 봄과 키스와 문득/ 홍옥/ 페루에서 온 시가/ 발화의 예/ 흡혈/ 포옹/ 곁에 없는 말/ 호랑이의 등/ 신(神)이 하나 깨졌다/ 부부의 일/ 짚시나방/ 우리가 사랑한 모든 거짓말들/ 돌의 활동/ 나는 빗소리 들으러 유튜브에 간다/ 함석지붕 원고/ 종의 깊이
해설| 백지를 위한 파반느 | 엄경희(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