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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유태 저 | 문학동네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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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82107 / 116쪽 130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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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출판사 리뷰

기린의 뿔이 떠다니는 방에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냈던 음이 지나가는 중이었고 복도는 기억과 후회로 쌓아올린 벽이었다 마침내 인기척이 없고 뒷모습과 기린의 그림자가 없고 나무도 없는 빈방을 찾아냈을 때 집주인은 부러진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지나왔던 모든 방이 빈방이었다고 여러 개로 쪼개진 모든 방은 시간으로 꿰매진 하나의 같은 방이었다고 입관이 곧 시작된다고 _「임차」 부분 시집의 서두에 놓인 「임차」에서 우리는 여러 차례 감각의 전복을 경험하게 된다. “일사분란하게 모여”드는 그림자와 “알비노 기린 한 마리의 털을 몽땅 잘라 만들었다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색채의 낙차,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냈던 음”과 “인기척이 없”는 방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리의 낙차. 그리고 이처럼 환상적이고 불가능한 감각의 전복 속에서 실은 “지나왔던 모든 방이 빈방”이었으며 “모든 방은 시간으로 꿰매진 하나의 같은 방”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우리는 공존하는 삶과 죽음, 혼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맞닥뜨린다. 이 시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시들의 화자들은 살아 있지만 죽은, 죽었기에 더 생생히 살아 있는 존재의 양극단 사이에서 삶 속의 죽음을, 죽음 속의 삶을 동시에 호흡한다. 어두울수록 선명해지는 검음, 나의 그림자를 너라 부를까 덜 아문 칼자국 같은 달 밤새 펄펄 끓던 이마를 우리는 숨긴 채 방금 버려진 꽃을 무덤가 주변에서 한 다발씩 주우며 무릎을 굽힐 때마다, 서로 같은 모양이던 검은 멍을 우리는 함께 문지르면서 _「검은 원」 부분 죽음의 죽음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인간이란 탄원서는 언제나 별 아래에서 울지 나도 서둘러 죽음 곁에 앉아 울어버렸다 _「검은 원」 부분 형상은 수면 아래로 잠기는 한쪽 귀와 아직 잠기지 않은 세상의 눈을 요구한다 반쯤 얼굴을 내민 사과는 죄인의 심장소리를 들려준다 빛과 소리 사이를 흘러가는 강 물의 잔해로 모여드는 흰 사슴떼 _「검은 원」 부분 시집에는 「검은 원」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가 다섯 편 수록되어 있다. 러시아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동명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이 「검은 원」 연작은 추상회화가 매개하는 이미지들의 물성을 시적으로 전유한 시도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시인은 거대한 관념의 중력에 무감한 일상의 감각과 언어를 정면으로 충돌시킴으로써 관성에 젖은 말과 이미지들의 외피를 산산이 부서뜨리고, 채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오래된 말들의 불씨를 읽는 이의 맥동과 숨결 속에 뜨겁게 옮겨놓는다. 죽어가는 새의 명멸을 천천히 확인하는 일 새의 뼈에 일부러 찔려 뼈에 새겨진 이름을 단 한 번만 더듬곤 했던 일 함께 어둡게 죽고 다시 햇빛에 깨어 이름을 잃고 바다에 서는 일 그런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_「죽지 않는 마을」 부분 시집의 표제를 제공한 이 시에서 “함께 어둡게 죽고/ 다시 햇빛에 깨어 이름을 잃고 바다에 서는 일”이라는 구절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시의 화자가 “내가 잊은 나의 이름 하나를 찾으러” “종말의 바다”에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러하다. 다른 아무 일도 없이 오직 일어난 일은 “뼈에 새겨진 이름을 단 한 번만 더듬”고는 다시 햇빛에 깨어 이름을 잃고 바다에 선 것뿐이다. 이는 시적 언어를 통해 삶을 구성하는 관념적 실체들을 탐지하고자 하는 시도의 반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잠시 더듬고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말. 이러한 반복이 시인의 운명 그 자체가 아닐까. 어쩌면 김유태의 시를 읽는 일도 그럴 것이다. 그의 시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무겁다. 그러나 그만큼 뜨겁고 에너지로 끓어넘치는 그의 시들은 때로 우리를 어둠의 심연 속으로, 하얀 극지로 안내한다. 우리는 그의 시들을 읽으며 그 안에서 일상의 표면에 드러나는 불온한 순간들을 마주칠 것이다. 정신으로서의 언어와 신체로서의 언어 사이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말해진 적 없는 울음들과 함께 걷고 흔들릴 것이다. 심연으로부터 온 불길한 화인들과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섬뜩하고 불가해한 눈빛들에 기꺼이 응할 것이다. 그런 일들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김유태
저자 : 김유태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가 있다.

머리말

 

느리고 분명한, 불안의 풍경 안에 나무를 붙잡고 우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나무 앞에서 영원히 마지막 들숨을 들이마시는 중이다. 최후가 궁금했던 나는 그의 불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불안에 몸을 기대는 밤에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 불안의 풍경이 나에게는 내가 붙들어야 할 안온한 부표처럼 느껴진다. 나의 사랑은 불안이다. 내 눈동자에 짓는 공화국의 율서는 불온한 잠언으로 읽히기를 희망한다. 읽을수록 의지를 상실하는 위험한 외경 한 권이 나의 온몸이 되기를 바란다.

쓰고 싶은 글은 써야 하는 이유가 자꾸만 없어지고, 묻어뒀거나 잊어버린 지 오래인 글은 제집을 잃어버렸던 고아 유령처럼 다시 나를 찾아온다. 꺼내기 어려웠던 책장의 목록과 작성되고 있던 것들의 시작되지 않은 최후. 쓰지 않았으나 쓰일 예정이었던 미래 나의 책장 같은 것. 잠에서 깨면 내가 그은 적 없는 선들이 그어져 있다. 그것은 내가 오래전 그었거나 긋고 있는 선이 맞나. 연필을 잡은 나의 손은 나의 것이 맞나. 태어나지 않았으나 이미 죽어버린, 죽어버렸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활자들.

 

2021년 9월
김유태

 

책 속에서

 

 

목차

시인의 말 1부 빈방을 찾고 있었다 임차/ 낙관(落款)/ 죽지 않는 마을/ 샬레/ 오래된 감염/ 검은 원/ 검은 원/ 임시 가설 통로/ 물의 자막/ 검은 원/ 죄의 페이지 2부 흰 뼈 같은 꽃이 핀다 Pierrot/ 파양/ 버드 스트라이크/ 안구건조증/ 타르/ 폐원/ 하나의 작은 균열/ 나의 갠지스/ 추상13/ 검은 원 3부 앙장브망 Pierrot/ 사인칭(四人稱)/ 로미오 포인트/ 피와 촛불/ 앙장브망/ 기만하는 거울/ 검은 서사/ 선(線)의 세계사/ 예기불안/ 목욕하는 도모코 우에무라/ 나무화석/ 나스카 라인 4부 우리의 혀를 태워 떠나보내네 슬픈 레시피/ 십일월/ 무국적 체류자―북양에서/ 무국적 체류자―남양에서/ 프랙털/ 것들의 역사/ 거울과 거푸집/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심장의 편자/ 검은 원/ 섬망 해설| 림보로의 초대 | 이철주(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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