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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거울이 될 때

안미선 저 | 민음사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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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72091 / 288쪽 13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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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태어난 지 오래 되지 않은 아이. 세상과 앞날이 아름다울 거라고 순진하게 막연히 믿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는데 가슴이 메어 오며 눈물이 갑자기 흘러내렸다. 잊고 있던 얼굴이다. 그 얼굴을 잊고 혼자 세상에 실망하고 마음의 문을 닫으며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 얼굴에 사과하고 싶었다. 때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그 믿음을 저버릴 뻔한 순간들에 대해, 세상은 살 만한 거라고 믿고 있는 얼굴 앞에서. ―「물에 띄운 사진」 중에서 “집은 사람들의 진심과 비밀들로 젖은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집들이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하나하나 되돌려 준 그림자들 집은 여성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지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팬데믹은 사람들을 ‘안전한 집’으로 밀어 넣었고, ‘집을 지키는 엄마’의 역할이 여성에게 더해졌다. 저자의 시선은 집을 ‘안전한 집’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에게로 향한다. 돈도 벌고, 꿈도 이루어야 하고, 엄마도 되어야 하는 나의 생활은 이런 식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쓸지 밥을 할지 고민한다. …… 요즘처럼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집에 내내 있는 때에는 세 끼 식사를 척척 차려 내며, 설거지에 빨래까지 하면서, 아이에게 집안일을 하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장을 보면서, 책상에 앉아 있을 자투리 몇 시간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집 안에 날아든 새」 중에서 ‘엄마’에게 집은 일터이자 싸움터이다. 집안일에 휩쓸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틈조차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바깥과 달리 집 안의 ‘엄마에게는 도통 거리를 둘 생각을 않고 더욱 밀착해 오는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린다. 그러면서 장독대 앞에서 한숨을 쉬었을 어머니, 학창 시절에 옥상으로 내몰린 나를 붙잡고 내려와 준 친구의 두툼한 손, 끈질기게 응원하며 자전거 타기의 행복을 알려 주고도 ‘혼자 다 해냈다’고 응원해 준 아이 친구의 엄마를 떠올린다. 지난날을 정리하는 일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마련해 준다. 유년 시절의 그림자를 해방시키면서, 답답한 현실에 주먹을 내지르면서, 그럼에도 집을 지탱해 온 사람들과 악수하면서, 결국 ‘행진’을 시작한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 안미선의 행진은 함께 오늘을 걸어가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응원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안미선
저자 : 안미선
내가 살던 집들을 떠올리고 찾아 나서며 오래된 한옥과 마당 깊은 양옥, 숨 가빴던 아파트와 담담한 빌라들을 만났다. 집에 비친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이야기로 쓰면서 이번에는 나를 똑바로 마주해 보았다. 숨어 있던 이 세상 집들의 두런거림과 그 목격담이 더 많아지면 우리가 더 빛날 것 같다.
작가로서 여성의 목소리를 오랫동안 기록해 왔다. 저서로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여성, 목소리들』, 『언니 같이 가자!』, 『똑똑똑, 아기와 엄마는 잘 있나요?』, 『모퉁이 책 읽기』,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공저로 『엄마의 탄생』,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 『마지막 공간』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벽을 쳐다본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은 수백 년 동안 방 안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벽 자체에도 여성의 창조력이 스며들어 있습니다.”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어머니도 자기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해 그렇게 성을 내고 마는 것일까? 새벽에 깻잎에 간장을 바르던 어머니가 기대어 있던 벽, 자다 깨어 우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쳐다보던 벽, 내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다가 마주 보게 되는 벽, 새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는 벽. 그 벽 안에는 무슨 말이 켜켜이 있을까? 벽이 모두 거울이라면 여자들은 자기 얼굴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을까? -48~49쪽

엄마가 들은 말, 엄마가 들어서 나에게 전해 주는 말. 집에 있으면 집에 갇혀 있었던 여자들을 향한 이런저런 소리가 떠오른다. 미신, 통념, 학대, 편견. 그런 악의로 찬 속담이나 저주들이 떠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그 말들에 맞서 한 걸음씩 내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집 안에 있어도 나는 집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과 싸운다. -51쪽

나는 이 집에서 살면서 말 잘 듣고 착한 딸이 되고자 했을 뿐, 묵묵히 공부만 했을 뿐 “아파요. 괜찮지 않아요.”라고 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나의 집을 지키고자 할 뿐 집들을 맘속으로라도 우그러뜨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휘청이고 무너지는 집의 그림자를 이고 양손으로 귀를 막고 소리를 질러대는 나의 그림자를 마주한 것이다. -90쪽

어머니는 여자가 배우지 않으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남편이 셔츠를 던지든, 딸이 도시락을 팽개치든 다 견뎌 낼 수 있었다. ‘내 딸은 가르치고 말겠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견뎠다. 세상의 엄혹함과 어두운 현실을 아는 어머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에게 자신의 진짜 경험을 알리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배우지 못하고, 반말을 듣고, 자고 싶어도 뜬눈으로 밤을 새워 일해야 했다. 아직 어린 자신의 월급에 기대어 사는 동생들이 다섯이나 있었고 심지어 어머니와 할머니까지도 그에게 기대었다. -109쪽

해마다 나는 내가 왜 서울에 있을까, 서울에 계속 살 수는 있는 걸까, 그냥 내년에는 고향에 내려가 버릴까 생각하며 집세 걱정에 시달렸다. 단 하루도 집세 걱정을 하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다. 집세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몸이 지쳐도 내키지 않는 일이어도 집세를 충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일을 맡아 해내곤 했다. -124쪽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에는 낮은 가옥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고, 처진 전깃줄들이 드리워 있는데 호젓하고 한적한 느낌이 든다.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마치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리게 하는 그 조용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가만한 걸음들과 쓸쓸한 한숨들과 정답게 두런거리는 이야기들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 만들어 내는 것이다. 풀들이 바람에 소리 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아 주는 이 없어도 살아가는 자리가 만들어 내는 흔들거림인 것이다. -128쪽

이제 길에서 마스크를 코끝까지 눌러쓴 사람을 마주치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기 전에 감염에 대한 두려움부터 일어난다. 사람을 만나 먼저 몸이 움츠러지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나는 생각뿐 아니라 몸의 감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잠깐 같이 서 있는 게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134쪽

그는 나처럼 싸우고 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그만의 집을 지키기 위해, 그가 오늘 내린 선택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다른 이들도 그랬다. 마스크를 쓰고 나가 보면 집과 삶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위험과 맞서 일하는 이들의 얼굴이 있다. -139쪽

방에만 있었으면 듣지 못했을 사람들의 소리, 보지 못했을 사람들의 모습, 느끼지 못했을 다양한 감정, 그런 것들이 있어 사람들은 카페를 지키고 드나들었다. 조명이 꺼지고 인적이 끊긴 카페 안을 창밖에서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만들어 내었던 활기와 확고함이 그립다. -214쪽

어머니가 맞바꿀 수 없는 것은 이 집에 배인 자신의 시간이었다. 누런 벽마다 배어 있는 식구들의 흔적이었다. 매년 자란 아이들의 키 높이대로 새로 난 눈금들이 있고, 손때가 묻어 있는 낡은 벽. 벽에서 차가운 외풍이 들어오고, 올가을부터 급기야 비가 새기 시작해서 누전의 위험까지 있는데도 어머니는 이 집을 사랑했다. -248~249쪽

집이 부서지고 나서 흙더미만 남은 자리를 아버지는 사진으로 찍어 나에게 보내 주었다. “우리 집이 이렇게 되었단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없이 흙더미만 쌓인 자리를 마지막까지 ‘우리 집’이라 불렀다. -270쪽


목차

들어가며

1. 다시 만난 빛들
오래된 집의 그림자 | 골목에서 마주친 새 | 물에 띄운 사진 | 나무가 끊긴 자리

2. 거울이 된 방들
집 안에 날아든 새 | 벽에서 나온 얼굴 | 내가 보고 싶은 날 | 지난 빨래의 끝에서

3. 남아 있는 그림자들
빗방울의 여행 | 거미와 잎사귀 | 장독대에 비친 둥근 | 내 머릿속의 시계

4. 빛이 머무는 집
우연한 손자국 | 튀어나온 주먹 | 자전거를 처음 본 날 | 담쟁이가 해낸 일

5. 돌아온 아이
해 질 녘, 운동장에 들어선 | 금이 간 오월 | 저녁의 맨발 | 마지막 방과 푸른 계단

6. 그림자가 부른 세상
둥근 하늘 아래 풀 하나 | 어떤 갠 날 | 억새를 만나다 | 하늘이 덮다

7. 부서진 집을 떠나는 그림자
눈짓으로 하는 인사 | 다락에 걸린 얼굴 | 그림자에 닿다 | 행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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