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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시작 시인선 (천년의시작) [300]
반디앤루니스 리뷰
출판사 리뷰
이은봉의 열두 번째 시집을 원고로 읽는다. 때로 미소 짓고 때로 감탄한다. 시집에는 「그때 우리는」이나 「폭포」 같은 작품에서처럼 열정에 가득 찬 청춘의 행적이 들어 있고, 「구절초 이별」이나 「저녁 길을 가며」 같은 작품에서처럼 원숙한 깨달음의 경지가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주로 꽃과 나무와 별과 이웃 등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노래의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객지에서의 오랜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에 돌아와 텃밭을 가꾸며 자연에 감응하며 살아가는 시인 자신이야말로 이 시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이 들어 낙향하는 것은 예전 선비들의 오랜 관행이었다. 젊은 시절 공직에 나아가 여러 임지를 떠돌다가도 때가 되면 물러나 귀향길에 오르는 것은 글 읽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로망이었다. 하지만 농촌공동체의 붕괴와 더불어 이제 우리 모두는 ‘고향 상실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은봉의 시들이 특별하게 읽힌다면 그것은 「근대 적응」 같은 작품의 예리한 역설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향에 뿌리내린 건강한 삶을 확고하게 지키면서도 감수성의 바탕에 선비다운 고전적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은봉의 시들이 끊임없이 자연 풍경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우국憂國의 정서를 감추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한국 서정시의 가장 치열한 전통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 시단으로서는 이 얼마나 귀한 자산인가. 칠순 가까운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예민한 감각과 섬세하기 그지없는 언어의 운용, 그리고 전진적인 역사의식을 가장 짧은 형식 안에 압축한 송곳 같은 시 「내일이여 역사여」를 읽어 보시라! “따스한 봄바람으로, 부드러운 봄볕으로, 은여우의 꼬리털로, 당신의 꽉 닫힌 가슴, 활짝 열어 젖히고 싶은,// 시여 내일이여 역사여.” ―염무웅(문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길
사막을 지나고, 평원을 지나고, 진흙 구렁을 지나고, 이윽고 산골짜기마다 콸콸콸 시냇물이 흐르는 숲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숲속에는 잣나무도, 개금나무도, 밤나무도 아름을 이루며 그늘 많은 잎사귀를 피우고 있다고.
거기 어디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오막살이가 있고, 상추와 부추와 쑥갓과 아욱이 자라는 텃밭이 있고, 마침내 시원한 물이 퐁퐁퐁 솟아오르는 두레우물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앞마당에는 중병아리 몇 마리 까막까치를 불러 모이를 쪼고 있다고.
바깥마당에는 토끼가 깡총대고, 고양이가 얌얌 세수하고, 강아지가 까무룩 졸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더러는 반쯤 벌거숭이인 어린아이가 머리칼이 파뿌리인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뛰어놀고 있다고.
…… 돌이켜 보면 아직도 이들 숲속 마을까지의 길은 멀다. 숲속 마을 대신 여전히 역한 냄새로 가득한 시멘트 빌딩 속을 헤매는 변덕스러운 마음만 여기저기 거친 언어로, 조악한 리듬으로 아프게 흩어져 있을 뿐.
2021년 봄
월산재에서
그때 우리는
그때 우리는, 아무 데나 머리를 들이미는
하루살이 날벌레, 아무렇게나 튀어 오르는 철부지 땅강아지, 목이 꺾인 버러지 풍뎅이……,
물인지 불인지 따져 볼 겨를이 없었다
계속되는 밤, 밀려오는 땅거미
멀기만 한 새벽, 두렵지 않았다 타오르는 생명들, 뛰어내리는 청춘들……, 매일매일 최루탄 속으로, 백골단 속으로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화염병으로, 사랑으로, 짱돌로
급하게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이지 않아도,
뿌지직 온몸이 타올랐다 숯이 되지 않아도, 재가 되지 않아도 좋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지 않아도
하루하루 가슴 벅찼다 그때 우리는.
시인의 말
제1부
해解\t13
중립의 새싹들\t14
초록비\t15
지구 아가씨\t16
생강나무, 샛노란 봄꽃\t17
마음나무\t18
걸어 다니는 별\t20
코로나 태풍\t22
때\t23
장맛비\t24
잎새들\t25
코스모스여\t26
그때 우리는\t27
꽃을 피운다는 말은\t28
쥘부채\t30
닦는 길\t32
줄넘기 놀이를 하며\t34
제2부
산길을 가며\t39
별별 죽음들\t40
저 대나무들\t41
은빛 마음 좀 봐\t42
공\t43
폭포\t44
울컥울컥\t45
반성\t46
별\t47
진리의 뺨\t48
착하고 예쁜 사람\t50
달콤한 적\t51
더는 피할 수 없다\t52
좌판 위의 정의\t54
얼음 천국\t56
어슬렁거리는 탑\t58
걱정의 파뿌리\t60
제3부
오토바이 소리\t63
시름시름\t64
햇볕 좋은 날\t65
깨진 항아리\t66
시든 꽃다발\t67
낡은 수건\t68
심장들\t70
보석\t71
구절초 이별\t72
세월\t73
책들\t74
우울의 가슴\t75
코로나-19\t76
멸망\t77
근대 적응\t78
화살나무\t80
너희들의 난생설화\t82
제4부
내일이여 역사여\t87
윤집궐중允執厥中\t88
김장 김치 한 통\t89
산길을 걷자\t90
먼 곳\t91
자화상\t92
동백나무, 늙은 곰\t94
술\t96
굴참나무 잎사귀\t97
잔디밭에 종이를 펴고 엎드려\t98
직소폭포한테 듣는 말\t100
저녁 길을 가며\t102
섞어찌개\t104
당신\t106
시론들\t108
뿌리라는 말\t110
이놈 파충류\t112
고백\t114
해설
오민석 저 순한, 봄의 시학\t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