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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카의 여행

원제 : Cilka’s Journey

헤더 모리스 저 | 김은영 역 | 더난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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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하나의 세계사의 비극이었던 소련 강제노동수용(Gulag)에서 그보다 오랜 세월을 갇혀 지내야 했던 실존 인물, 유대인 실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헤더 모리스의 이름을, 세월과 함께 묻혀 있던 역사의 뒤안길에 빛을 비추는 비범한 이야기꾼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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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791582 / 488쪽 135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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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삶으로 인도하는 치유자가 된 놀라운 여행 “당신은 나를 망가뜨릴 수 없어. 꿈도 꾸지 마.”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열여덟 살 소녀. 전쟁이 끝나고서도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녀의 죄목이었다. 1945년 1월, 열여덟 살의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유대인 소녀 실카는 3년째 갇혀 있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마침내 풀려난다. 그녀가 전쟁 포로로서 상습적으로 강간당한 것을, 적군에게 몸을 팔아 살아남은 것이라고 지목한 소련군 내무인민위원회는 그녀를 크라쿠프 몬텔루피치 감옥으로 이송시킨다. 그곳에서 실카는 매춘에 스파이, 나치와 결탁한 죄로 노역 15년형을 선고받고, 고향이 아닌 또 다른 곳으로 자신을 데려갈 기차에 올라탄다. 어디로 실려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서로 부대끼며 몇 날 며칠이 지나고 적잖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고 역에는 러시아어가 적혀 있다. 실카는 기차에 실려 아우슈비츠에 처음 도착했던 3년 전을 떠올린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끝나는 날을 알고 있다. 15년, 이 끝은 믿어도 될까? 시베리아의 북극권 내 보르쿠타에 자리한 강제노동수용소. 철조망 너머로 지평선까지 뻗어나간 황량하고 척박한 땅덩이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이 밖으로 나간다 해도 생존이 불가능하리라고 실카는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슬픔에 잠긴 동시에 험악해 보인다. 공동숙소인 막사엔 침상도 없이 매트리스와 담요만 있고, 양동이 두 개가 화장실 대용이며, 식당에서 배급받은 양철 컵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죽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카는 새롭게 받은 번호표를 옷에 바느질하며 살아남을 것을 다짐한다. 처음으로 접한 어마어마한 탄광에서 실카는 양동이에 석탄을 담아 옮기는 일을 한다. 매일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노역하는 수용자들 사이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떠돈다. 절망감에 휩싸일 때마다 실카는 열여섯 살 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25구역에서 세상의 마지막 날을 맞는 여자들을 보며 마음도 감각도 닫히던 것을 회상한다. 조시, 나탈리야, 마르가레테, 올가, 엘레나, 한나 등 29번 막사 여자들은 음식 이야기, 가족 이야기로 바깥세상에 대한 기억을 금세 떠올리지만 실카는 과거를 떠올리려 할 때마다 고통스럽고 낯설다. 실카는 그녀가 잃은 모든 사람들을 떠올려보지만 차마 입 밖에 꺼낼 수가 없다. 어느 날 밤, 올가가 실카에게 묻는다. “클라인…… 아주 흔한 유대인 성씨지, 안 그래?” 실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요.”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난다. “가서 석탄 좀 가져올게요.” _(‘15년의 시작’ 중에서) 수용소 생활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나 실카는 친구 조시의 화상 치료를 돕기 위해 병동에 동행하고 그곳에서 정직하고 맑은 미소를 지닌 의사 옐레나 게오르기예브나로부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실카는 특혜를 받아들이길 두려워하면서도, 경황없고 배울 것투성이인 병동 일에 열중하다 보면 끔찍한 기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카는 시계를 쳐다보며 ‘약하고 불규칙한 맥박’이라고 기록한 시간을 기준으로 정확히 15분마다 맥박을 잰다. [...] “침대 옆에서 계속 기다리고 서 있을 필요는 없어. 가서 다른 일을 하다가 15분마다 오면 돼. 정확히 15분이 아니더라도 괜찮아. 알겠지?” “아, 고맙습니다……. 저는, 저는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거야?” 실카가 고개를 떨군다. 수북이 쌓인 바싹 마른 몸뚱이들이 섬광처럼 지나간다. 필사적인 마지막 외침. 그 냄새. “맞아요. 충분히 겪었어요.” 실카는 무심코 말을 내뱉는다. “그런 얘기를 들어 마음이 안 좋군.” 옐레나가 잠시 말을 멈춘다. [...] “언젠가, 마음이 내키면, 내게 네 얘기를 털어놔도 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_(‘다시 죽음 옆에서’ 중에서) 난생처음 겪어보는 극심한 추위, 그리고 몇 달이고 계속되는 여름의 백야. 시베리아의 사계를 보내면서 막사 동료들은 옷과 물건들에 자수를 놓고, 밖에서 물건들을 몰래 가져와 누추했던 세간을 늘린다. 남자 수용자들의 상습적 강간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그녀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들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함을 안다. 어느 날 막사 동료인 한나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병동에서 가져오지 않으면, 실카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일군과 잠자리를 같이한 죄로 이곳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실카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 가족이 된 친구들과 동료들을 다시 잃어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한나를 위해 약품을 빼돌린다. 실카가 한 의사가 방치한 환자를 살려냈다는 이유로 병동에서 쫓겨나고, 궁지에 몰린 친구를 위해 잘못을 뒤집어쓰고 지하 감옥에 한동안 갇히는 등 온갖 고초를 겪는 와중에 한 남자 수용자가 그녀의 마음에 서서히 들어온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할 미래를 꿈꿀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다시 자기 앞에 닥친 일들로 뛰어든다. 옐레나의 배려로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하게 된 실카는 갓 태어난 건강한 아기를 처음 안아보고 감동에 휩싸인다. 태양이 여전히 하늘 높이 떠 있는 어느 날 밤, 실카가 침대에 누워 조시에게 묻는다. “이 일이 내 소명이라고 생각해?” “무슨 말이야?” 조시가 묻는다. [...] “내가 엄마가 될 수 없다면, 엄마가 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은 할 수 있을까?” 조시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아, 실카, 나 임신한 것 같아.” _(‘소명’ 중에서) 자신의 상황에 절망을 느끼고 목숨을 끊으려는 조시를 실카와 막사 동료들이 가까스로 구해낸다.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 첫날 조시의 진통이 시작되어 자정께 여자 아기가 태어난다. 그녀들 앞에, 그리고 실카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이 작은 생명 앞에 얼마나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길이 놓여 있을까. “오늘부터 네 삶의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나티아. 네가 네 엄마와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단다. 저 밖에는 더 나은 세상이 있단다. 내가 봤거든. 그리고 기억하고 있지.” _(‘생명의 탄생’ 중에서) 『실카의 여행』에 쏟아진 찬사 “굴라크 안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인간애가 추진력 넘치는 이야기 안에 담겼다.”_《퍼블리셔스 위클리》 “감정이 절제된 한 명의 여성 영웅이 태어났다. 그녀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써 자신만의 특별한 구원을 역동적으로 추구한다. 실카의 여정은 치열하고 위험천만하다. 고대 서사시의 영웅 오디세우스마저 파멸시켰을지 모를 험난한 장애물들이 그 안에 있다. 그럼에도 실카는 신뢰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은 적이 없다. 이 가슴 아픈 생존기가 시대의 가장 캄캄한 심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_《북트립》 “경악스럽고 믿을 수 없는 생존기가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문체로 표현된다. 사실이라는 소재가 사려 깊은 기교로써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_《선데이 모닝 헤럴드》 “아우슈비츠와 다른 강제수용소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추적하는 페미니스트 역사가와 그 외 학자들은 이 작품을 조명해야 할 것이다. 마음을 울리는 훌륭한 역사 소설이다.”_Carl J. Rheins, 유대인 도서 자문위원회 “불행과 고난 앞에 선 실카의 놀라운 용기와 살아남기로 한 결의는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남을 것이다.”_《선데이 익스프레스》 “모리스의 소설은 인생이 때로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어떤 존재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어려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자기 안에 억눌린 온갖 감정들을 자유롭게 풀어낼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꼭 읽어야 할 작품.”_《콘크리트 플레이그라운드》 “마음을 사로잡고 아프게 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덥히는 이야기. 실카는 당신의 마음을 산산이 부서뜨릴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잊지 못할 감동을 또한 남길 것이다. 그녀는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존자였다.”_《선 데일리》 “사랑, 증오, 인내, 우정처럼 다면적인 인간 감정을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로써 탐구한 소설. 실카의 여행은 가슴을 아프게 하고 사유를 불러일으킨다.”_《페미니즘 인 인디아 닷컴》 “그야말로 놀라운 책이다. 일반적으로 후속작이란 전작만 못하다는 신화를 이 책은 완전히 무너뜨렸다. 북 클럽의 완벽한 선택, 별 다섯 개가 반짝반짝 빛날 만한 책.”_《재닛의 북 코너》

저자 소개

뉴질랜드 테아와무투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테아와무투대학과 캔터베리대학교, 모내시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95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모내시 메디컬센터 사회복지과에서 20여 년간 일해왔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던 작가는 1996년 자신의 꿈을 좇기로 결심하고 오스트레일리아대학 전문 극작가 과정에 등록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서 열리는 수많은 극작과 과정 및 세미나, 워크숍에 참여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하여 처음 쓴 대본이 아카데미상 수상작가 파멜라 월리스에게 채택되었다. 
2003년 어느 날, 작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졌다는’ 한 노신사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랄레 소콜로프’라는 이름의 이 노신사를 만난 날 두 사람 모두의 삶이 바뀌었다.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트면서 랄레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금 돌아보기로 결심했고, 결국 그의 삶에서 가장 내밀한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추후 작가 헤더 모리스는 랄레의 이야기를 시나리오 각본으로 집필했다. 이 원고는 인스팅트 엔터테인먼트에 채택되었으나 영화화로 진행되진 못했다. 하지만 결코 포기를 몰랐던 헤더는 ISA상(국제시나리오작가협회상), 파이널 드래프트 상 등에 출품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2016년 국제독립영화상을 수상했다. 이때 랄레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에 고무된 작가는 랄레의 이야기를 소설화하여 자비 출판하기로 결심하고,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킥 스타터에서 후원자를 모집했다. 이 과정에서 랄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출판사 에디터 앤젤라 메이어의 도움으로 책으로 출간된 소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는 극한의 현실에서 희망을 움켜잡는 용감하고 위대한 휴머니즘 여정으로 사람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선사하며 벌써 15개월째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는 현재 싱크러니서티 필름에서 2020년 1월 방영 일정으로 드라마화를 진행 중이며, 올해 10월 16세에 수용소로 끌려가 기구한 삶을 살았던 여성의 삶을 재조명한 후속작 《실카의 여정》이 출간될 예정이다.

역자 소개

  • 역자 : 김은영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에서 영어교육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옮긴 책으로는 『수이사이드 클럽』, 『포터링』 등이 있다. 현재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책 속에서

“간단하게 묻지. 나치와 잤나?”
“그들은 나의 적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끌려온 전쟁 포로였고요.”
“나치와 잤나? 그렇다고 들었는데.”
“이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처럼 나를 이곳에 끌고 온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첫 번째 요원이 일어선다. “세실리아 클라인, 너를 크라쿠프로 보낸다. 그곳에서 너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실카를 쳐다보지 않는다.
실카가 일어선다. 이럴 수는 없다. “안 돼요. 나한테 이럴 순 없어요. 나는 전쟁 포로일 뿐이에요.” (15-16쪽)


옆에 앉은 사람에게 이름을 묻는 소리가 다른 곳에서 들린다. 금세 화차 안이 속닥거리는 소리로 가득 찬다. 서로 언어가 다르다 보니 이 언어 저 언어가 왔다 갔다 하며 국적이 한데 뒤섞인다. 그래도 대화는 통한다. 빵집을 하던 한 폴란드 여자는 나치에게 빵을 파는 바람에 나치를 도왔다고 고발되었다고 했다. 다른 여자는 독일 선전물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여자는 나치에게 잡혔는데 같이 있었던 것으로 오해받아 스파이 혐의를 받고 기소되었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던 가운데 놀랍게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24-25쪽)


실카가 햇살이 부셔 눈을 가린다. 작은 도시를 닮은 수용소를 바라본다. [...] 경계선 너머로 작은 언덕이 보이고 그 위로 크레인처럼 생긴 커다란 장비가 우뚝 솟아 있다. 그들을 둘러싼 철조망 여기저기에는 감시초소가 흩어져 있지만 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위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카는 철조망 꼭대기를 유심히 쳐다본다. 전기가 흐르는지 알 수 있는 절연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철조망 너머로 지평선까지 뻗어나간 황량하고 척박한 땅덩이를 보고 있자니 전기 철조망 따위는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밖으로 나가면 생존이 불가능하리라. (48-49쪽)


누군가 뒤에서 조시를 세게 밀친다.
조시는 몸을 가누려고 손을 뻗다가 그만 난로 연통을 잡고 만다.
그녀의 비명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 퍼진다.
조시가 마치 몸에서 떼어버리려는 듯 팔을 뻗는다. 다치고 병든 여자들의 모습,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 실카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든다. 안 된다. 조시는 안 된다. 실카는 조시를 붙잡고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가 드문드문 쌓이기 시작하는 눈 속에 조시의 손을 파묻는다. 조시는 이 사이로 숨을 거칠게 내쉬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쉿! 조용히 해.” 실카가 자신이 의도했던 것보다 조금 더 가혹하게 말한다. (77쪽)


의사는 실카를 유심히 살핀다. “당신은 언어에 재능이 있어요. 알다시피, 이곳은 환자 수에 비해 일손이 부족해요. 여기서 일해보지 않을래요?”
기회다. 수용소에는 밖에서 하는 육체노동처럼 힘든 일도 있고 편한 일도 있다. 그곳에서 ‘편한’ 일은 음식과 온기를 의미했다. 하지만 실카에게 그 일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착취당하고 캠프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을 목격하는 일이기도 했다. 25구역장, 그것은 그녀에게 형벌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실카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왜 늘 눈에 띄는 것일까? 또다시 알 수 없다. 조시를 바라본다. 만약 그녀가 이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친구를 배신하는 일이 된다. 막사에 있는 모든 여자 수용자들을 배신하는 일이다. (92쪽)


수용자들은 못이 박혀 있지 않은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슬쩍 가져오는 법을 알게 되었다. 식당의 양철 컵을, 장교들 막사에 버려져 있던 다리 하나가 부러진 작은 테이블을, 난로 위에서 지금도 쉬지 않고 끓고 있는 찌그러진 주전자를 슬쩍해 왔다. [...] 막사는 점점 아늑해지고 있다. [...] 시트 끝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예쁜 도일리가 막사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실카는 계속해서 버려진 붕대를 모아 끓는 물에 빤 다음 자수팀에게 가져다주었다. 여자들이 머리에 두르는 머릿수건에도 가장자리를 따라 섬세한 자수가 놓이기 시작했다. (137쪽)


“내게 약을 계속 가져다주지 않으면 저기 있는 사람들에게 다 말해버릴 거야.”
그녀가 고개를 돌려 막사를 가리킨다. “네가 나치와 붙어먹었을 뿐 아니라 모피 코트를 입고 저승사자처럼 서 있었다고 말이지. 거기다 동족 수천 명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거야.”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카는 꽁꽁 얼어붙는다.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한나에게 설명하고 싶다. 나는 열여섯 살이었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어, 그 어떤 것도. 나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야.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 막사 동료들에게 얼마나 의미 없는 발악으로 들릴지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녀가 옆에 있는 것도 참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저주받은 악녀로 비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환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약을 한나를 위해 훔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인 친구들을 잃을 수도 없다. (158쪽)


올가는 바로 디자이너로 임명되어 여자들의 시트 끝을 살피며 30센티미터 정도 여유가 있는지 본다. 수를 놓게 된 수용자들은 새로 태어날 생명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며 흥분한다. 한나가 무리 뒤쪽에 앉아 혐오스럽다는 듯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어쨌기에 그렇게 다들 착각에 빠지는 거야?”
“한나.” 올가가 딱 잘라 말한다. “어둠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는 일은 잘못된 게 아니야.”
[...] 올가가 바늘땀을 풀며 단호하게 말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조시,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
수용자들이 모두 함께 응원해주자 조시가 점점 더 크게 운다. “미안해.” 눈물로 목이 멘다. “정말 미안해. 난 못 하겠어.”
“아니, 넌 할 수 있어.” 실카가 힘주어 말한다. “할 수 있어. 꼭 해내야 해.”
“할 수 있어, 조시.” 엘레나의 말에 다른 수용자들도 그 말을 따라 하며 손을 뻗어 그녀를 보듬어준다.
“이제 조시는 괜찮을 거야. 각자 담요를 가져가서 좀 더 자. 내가 옆에 있을게.” 실카는 화가 나 어지러울 지경이지만 조시 옆에 웅크리고 누울 것이다. 조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것이다. 조시를 안아줄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모두들 고마워. 우리는 뭉쳐야 해. 우리에겐 우리가 전부야.” (242-243쪽)


29번 막사 여자들이 그녀에게 남은 전부다. 그녀는 비르케나우에서 만난 랄레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어째서 그녀가 용감하다고 말했을까. 또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용감하다고 말했을까. [...] 그녀가 해야 할 용감한 일이 한 가지 더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실카!” 마르가레테가 달려와 그녀를 부둥켜안는다. “어떻게 된 일이야? 위험하잖아.”
실카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다.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 (441-442쪽)

 


목차

작가의 말

1 끝나지 않은 여행
2 기차 안의 여자들
3 또 다른 세계로
4 15년의 시작
5 지켜주고 싶은 마음
6 행복해지기 위해
7 다시 죽음 옆에서
8 시베리아의 사계
9 희망과 절망 사이
10 어떤 가족
11 해피 하누카
12 지하 감옥
13 소명
14 생명의 탄생
15 전염병 병동
16 왼팔에 새겨진 숫자
17 위험한 대면
18 사랑이란 것
19 살아남는 법들
20 무너진 탄광
21 악몽
22 봄꽃
23 가족에 대하여
24 엄마의 마음
25 특별한 작별
26 다시 살아남다
27 또 다른 가족
28 보르쿠타의 반란
29 살기 위한 거짓말
30 세월
31 희망을 품다
32 가장 용감한 사람
33 모두 다, 시
에필로그

실카를 찾아서
실카의 삶
보르쿠타, 하얀 지옥-오언 매슈스의 후기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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