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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왜 음악이 되지 못하는 걸까 걷는사람 시인선 34

정이경 저 | 걷는사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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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262056 / 144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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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정이경의 두 번째 시집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걷는 자의 오감으로 담아낸 ‘숨결과 기록’이라고 할 것이다. 시인 정이경은 성실한 직장인이면서 오지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여행자다. 그는 아프라카와 중앙아시아의 험난한 길들을 옮겨 다니며 ‘나’를 찾는 일에 골몰한다. 이러한 그의 여정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일인 동시에 그가 동경해 왔던 ‘먼 곳’을 향해 가는 일이다. 그는 신비로운 역사가 깃든 ‘응고롱고로’(세계 최대 휴화산 분화구), ‘우후루피크’(아프리카 최고봉), ‘타클라마칸’을 지나면서 자연스레 ‘뽈레뽈레’(천천히, 천천히)와 같은 아름다운 정신의 언어를 몸에 새긴다. 저 멀리를 향한 동경, 숭고로 비약할 수 있는 정신이야말로 정이경을 추동하는 힘이며 ‘다른 삶’, ‘시의 삶’을 가능케 하는 엔진이다. 도시 일상의 삶에 “만년설”을 불러오고, “세렝게티의 초원지대”와 같은 전혀 다른 세계를 불러오는 일이 바로 정이경 시인의 시 쓰기다. 물론 고산 등반이 인간에게 삶의 숭고함만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처럼, 지극히 높은 세계로 향하는 길에는 비극적 운명도 나란히 놓여 있을 것이다.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어쩌면 눈 뜬 내내 삶은 “걷고 걸어도”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 “꿈속까지도 사막”(「명사산」)일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서쪽’을 향해 가겠다고 각오한다. 시인이 말하는 서쪽은 진리가 담긴 경전이 있는 곳. “한 발짝 내디딘 발자국 아래가 다 허방이어도”, “발아래 핀 꽃은 허공에서도 활짝, 활짝/길을 가득 메울 것”(「시시각각, 히말라야」)이라는 믿음으로, 정이경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저자 소개

  • 저자 : 정이경
저자 : 정이경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1994년 《心象》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노래가 있는 제국』을 펴냈으며, 제1회 경남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머리말

시인의 말

눈 닿는 곳곳,
서류더미들 속에서는
오롯이 시인으로만 살 순 없었다
또한
시인도 시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내가 만든 나와 함께 갈 것이다
오지에서
오지를 오가는 쉽지 않은,
아직 작동되지 않은 것들에게로


2020년 겨울
정이경

책 속에서

자연에서 얻지 않은 것은 없다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느라 옮겨 다니지만
맥박은 그지없이 평온합니다
게르의 문 자주 여닫히고 사람들도 둥글게 모여듭니다
한꺼번에 왔다 가 버릴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이
저녁과 함께 새끼 양을 안고 들어선 남자의 표정은 모든 것을 품습니다
이것은 어떤 마음입니다
새벽까지 난로의 불씨를 걱정하는,
광야의 바람과 보이지 않는 짐승의 소리를 끌어와 리듬을 만들어 냅니다
꽁꽁 언 두 손이 흐미를 듣게 된 귀를 어루만집니다
그날 밤 게르 밖의 별들도 둥근 모음으로만 빛났습니다
─「몽골, 겨울 그라피티」 부분

아마 동쪽에서 왔을 것이다
저 울음은

무릎을 꺾어 가면서까지 온전하게
제 등을 내어주는 늙은 낙타의 순종은
걷고 걸어도 사막

꿈속에서도 사막
자고 나도 사막일 것이다

일찍이 깃들지 못한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현기증 나는 증발이 사방에 펼쳐져 있고
아직 도착되지 않은 내일이
성긴 가루가 되어 발가락 사이를 더 넓게 벌려 놓았다
움푹 팬 기억을 더욱 구부려 울음을 새겨 넣는 일은
바람이 시키는 일일까

거친 숨소리와 방울 소리 낙타의 느린 발자국마저
바람이 세우고 허무는 어제와 오늘

별 하나
귀를 세울 때마다 나는,
서쪽에 있었다
─「명사산」 전문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퍼부어대는 비
밤늦도록 여린 울음소리들,
한데서 비 맞고 있을 저들은
평온을 찢고 들어온 돌풍과 막다른 시간에 숨이 막힐 것이다
오늘 밤 안식처를 끝내 잃고 만 불안하고 두려워 어찌할 줄 모를,
작고 여린 저 울음소리
숨어들 곳 없는 평원에서의 길고 긴 밤이라니
느닷없이 출몰할 포식자의 시선을 피하려
서성이는 발아래로 어미는 계속하여 검은 밤과 싸우게 되리라
창밖보다 더 어두운 풍경화 한 점 내걸리는 사이로
비는 왜 음악이 되지 못하는 걸까요
이 말을 하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요
─「먹먹, 세렝게티」 부분

출근길의 교통방송을 그대로 둘까 하다가
눈사람에게 주파수를 맞춘다
퇴근길인 까닭이다

집으로 향하는 차들과 다른 자세로
서 있는 가로수는 어제와 같은데 건너오는 바람은 중저음이다
반사되는 불빛과 어긋나는 눈들이 잠깐 머물던,
점멸등이 켜진 교차로를 천천히 통과하지만
오늘 밤도 여전히 그루잠을 잘 것이고 그사이에
내 발목이나 무릎께 정도는 저 먼
북유럽에라도 가 있겠다
또는
이미 헤어진 그녀와는 상관없이 무작정 그녀의
고향에 가 보고 싶다는
한 시인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을 죄다 끊고 사는 일보다
스스로 갇히고 마는 걸 마다하지 않듯
문득 길가에 차를 대고 얀바밍을 하고
싶어지는 12월
누군가는 자작나무로 만든 소인이 찍힌
눈사람의 우편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눈사람 주파수」 전문

먼 곳의 이야기는
방향을 알 수 없는 거센 눈보라를 날리고
폭설에 폭설을 더한 계절 내내
수없이 다녀간 왼쪽과 오른쪽이 있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 내야 했다

자주자주자주……

손가락 두어 마디 같은 비가 내리자 간지럼을 타던 옆구리가 생겨났다

자목련 한 그루가 마구 쏟아내는 빨강과 보라 사이의 눈물이
가지와 가지 위에다 기어코 새 떼를 올려놓았다
─「기어코」 부분

목차

1부 건기와 우기를 한참 지나쳐 왔다
탄자니아산産
반야용선, 아프리카
응고롱고로 연가
세렝게티에서의 두 가지 표정
먹먹, 세렝게티
친절한 배후 세력
킬리만자로에서 사라진 입
결국은 우후루피크
커튼콜
그녀 정강이뼈에서 나는 소리
랑가르의 별
몽골, 겨울 그라피티
연해주의 나날들
아무르강 연대기

2부 눈사람 주파수
동어반복
7024번
동명이인
눈사람 주파수
선인장 꽃말
그 후
기어코
기어코 그녀
꽃밭의 수사학
골목
모빌
드라마를 보는 저녁
일요일에도, 일요일인
작달비
슬픔의 알고리즘
표면장력
호수공원 김 씨

3부 꽃은 허공을 어떻게 건너왔을까
유등축제
흑산성당
장복산 한철
벚꽃이 피었다
벚나무 시편
갯벌의 기록
진달래를 보는 방식
매화산
봄, 지리산
여름, 지리산
사백 년 후
늦게 도착한 시詩

4부 서쪽에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다시, 나는
안나푸르나를 그리는 눈썹 두 줄
나마스테
아직도 자라는 꼬리
내가 없는 당신
사흘이 지나도 나의 셰르파
안나푸르나 ABC
시시각각, 히말라야
싱잉볼
경전이 익다
고창고성에서 듣는 설법
애써, 타클라마칸
명사산

해설
숭고와의 마주침을 위한 보행의 시
- 이성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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