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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왜 내 입안에 집을 짓는 걸까

손남숙 저 | 걷는사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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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128982 / 132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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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손남숙 시인은 자연을 질서 또는 순환의 메타포로 상정한다. 이번 시집에서 자주 사용되는 시어인 꽃과 나무, 바람과 파도 등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며 생장한다. “산과 바다는 원래 한 덩어리였으나 부단히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둘을 나누어야만 했던 바람이 끝끝내 이어 주려고”(「숲의 나무들에게 물결을」), “나무는 다정한 새를 느끼고/새는 나무가 즐거워할 일을 궁리하고”(「새의 질문」) 등의 시구들이 특히 그렇다. 시인은 그러한 생태주의의 마음으로 자연 속에 동화된다. “언덕의 바람을 마시고 들판의 향기를 저장하”(「걷는 사람」)며 “입김을 불어넣어 생명을 갖게”(「걷는 사람」)하고, “발등에 마른 풀을 끼얹으며”(「걷는 나를 위한 시」) 다만 걷는다. “아직도 나를 흘러가지 않았습니까?”(「당신은 흘러갔습니까?」)라고 질문하기도 하고 물질문명의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생명력을 가진 것들과 하나 된다. “길이 먼저 걷고/그다음 나무가 걷고/그다음 풀이 걷고 돌이 걷고/마지막이 나였다”(「걷는 나를 위한 시」)라는 고백처럼. 시인은 그 하나 됨을 자연의 경이로움을 찬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엇갈려 지나가며 삶과 죽음을 교차했다”(「내가 돼지를 만날 때」)는 대목에서는 인간의 이기성을 조명하기도 한다. 문학평론가 임동휘의 표현처럼 “산업화 이후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첨예해진 도시화에 따른 공동체의 붕괴와 피폐해진 개인”이다. 손남숙은 “빈집에 나무와 나무만이 서로 울어”(「꽃이 운다면」) 주고,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왜 울지」)고, “철골만 남은 하우스들”(「하우스」) 같은 장면을 통해서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농촌 현실의 피폐한 풍경을 담담한 듯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삶의 각박함을, 모순을, 참혹을 견뎌내기 위하여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손남숙은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걸음 속에 깃든 빛과 색, 소리의 우거짐을 발견할 때야말로 우리 생의 구심력이 회복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소개

  • 저자 : 손남숙
저자 : 손남숙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으며 ‘일과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우포늪』, 생태 에세이집 『우포늪, 걸어서』 『나무, 이야기로 피어』를 냈다.

머리말

시인의 말

놀라워라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너는 아는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다만 잎사귀에 스민 애벌레의
조용한 마음이기는 했고
주름을 거느린 꽃의 진심이기도 했고
날개를 가진 생명들이 붕붕거리는 것이기도 하여
어둠 속의 흰 눈
소리가 나지 않는 꿈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묻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네

2020년 겨울 입구
손남숙


 

책 속에서

우리는 매일 사라진다
멈출 수가 없다 사라지는 일을
매일 사라지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집으로 간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조금씩 죽어 가는 우리
아침이 밝아 온다
계속 죽어 갈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사라진다」 전문

어린 날 구슬치기 딱지치기보다 더 재미있었던 건
한 가지 주제에 미치는 것
가령 만화책을 보는 것
공동묘지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
이상한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고
이상한 방법으로 이상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
이상한 일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때
그제야 말을 하지
풀에 미친 사람은 봄을 기억하지 않고
사랑에 미친 사람은 이별을 기억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어떤 것에도 홀리지 않는 사람은
제 삶에 구멍을 내어 술술 속셈을 흘려보낸다
차디차게 물렁해진다
가볍게 단단해진다
벗어나면서 얽매인다
꽃에 미친 사람들이 언덕의 풀을 짓밟고
길에 미친 사람들이 비를 두려워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버린다
새는 왜 울지
—「왜 울지」 전문

밤하늘이 한 발자국씩 이동하고 있다
겨울에서 봄이 오고 있다
아득하던 오리온 별자리가 환하게 눈에 들어온다
빛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고
지구는 돌아가고
우리의 이별은 차고 이지러지는 달처럼 자연스럽다
삼월의 마늘밭은 아침이면 더 푸르게 목을 늘일 것이다
저 계절에서 이 계절로 넘어온 깊은 물결
나의 남루함이 새로운 남루함을 걸친다 해도
따스하게 반겨야 할 얼굴이 있다
매일 달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듯이
어떤 계절에 걸쳐진 밝음은 어두운 숲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어쩌면 너의 가장 아름다울 시절이 여기에
나는 지금이 좋다 착하고 명랑하게
매일 눈뜨는 아침이
—「지금이 가장 좋다」 전문

나무는 죽어 가면서 제 몸에 구멍을 낸다
무얼 보려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부탁을 하려고
오월에 찾아올 새들에게 부디 잘 이용하시라고
개미와 거미가 눈치껏 드나들고
오색딱따구리의 긴 부리와 박새의 작은 눈도 들어갔다 나온다
무수한 눈들이 노크하고 지나갔다
흰눈썹황금새는 방금 잡은 애벌레를 어린 새끼에게 가져다주었다
새끼들이 부리를 종긋하게 내밀었다
새의 부리는 봄에 돋은 새싹 같아져
포식자는 새인지 나뭇잎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어미는 하루 수백 번 날갯짓을 하며 구멍 안에 뛰어든다
나무의 부탁을 적극 듣고 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
새끼들 몸에서 날개가 돋아 구멍 안이 꽉 차는 것이다
나무는 더 이상 새의 새끼를 안아 줄 수가 없다
나무의 살점을 다 나눠 먹었다
달라진 새를 볼 수 있다
—「새는 왜 내 입안에 집을 짓는 걸까」 전문

사계절 뜨거운 태양과 바람이 비닐을 시험한다
비닐은 비닐을 위해 살지는 않았다
강풍과 폭우에 찢어지면 조각조각 흩날리어 쇠와 시멘트로부터 달아난다
전봇대에 붙고 나뭇가지에 걸리어 가볍고 무한히 썩지 않는 성질을 펄럭인다
비닐하우스는 너덜너덜한 거죽만 남는다
비닐 없는 하우스들이
철골만 남은 하우스들이
빈 들판에 남아 있다
시골 마을엔 뼈대가 삭은 노인들이 살고 있다
—「하우스」 부분

우린 지금 첫사랑을 시작했어
너의 이야기를 다 들어 줄게
별과 함께 어두운 길을 밝혀 줄게
들어 봐, 나무가 가만히 불러 주는 호흡이야
얼마나 오래 걸어온 걸음인가
너에게 가려고 수백 년 전에 늘어뜨린 그늘
휘어지는 가지마다 수백 송이 고백이 너를 따라 흐른다
꽃이 피었어
오직 너에게만 들릴 노래
—「회화나무가 걸어와」 부분

 

목차

1부 꽃이 운다면
우리는 매일 사라진다
꽃이 운다면
숲의 나무들에게 물결을
걷는 사람
새의 질문
올바른 삶
찰칵
텃밭의 노래
의심하는 사회
물들메나무
포위당한 자연
가장 밝았다
아름다워지려고
왜 울지

2부 새들은 색을 잘 사용한다
큰고니는 달린다
왜가리는 인테리어를 알아
작은 새도 아는 것
이것은 재난영화가 아니다
회화나무가 걸어와
새가 된 나무
선물은 흥겹게
밤이 되어
당신이 원하는 색
새는 왜 내 입안에 집을 짓는 걸까
이제 와 무슨
새의 기억법
여름 우포늪
그래 보는 거다

3부 너는 나를 만나려고 거기서부터 시작했고
누군지도 모르고
살구나무는 생각하겠지요
어느 날 사내들이 들판을 걸어간다 며칠 후 사라진다
난 그저 걸어 다니는 사람일 뿐
수탉
나와 같이 동거하는 거미
논
하우스
들여다보아야 한다
너는 나를 만나려고 거기서부터 시작했고
들판은 나의 것
우거진 물속은 어떻게 나무의 흔들림을 정박하였나
땅콩은 알았던 거지
치아 상태를 점검하는 오후의 진료

4부 시절의 서약은 어디에 두었지
잘 모르겠지만 잘 모르겠어
걷는 나를 위한 시
당신은 흘러갔습니까?
물의 저녁
오래전 바다
물의 우거짐
엄마의 자끄
내가 돼지를 만날 때
벼
우포늪
오래 빛나는 새
지금이 가장 좋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모두 걷고 있다

해설
스미고 번지는 것들을 위하여
-임동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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