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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6914875 / 320쪽 133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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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창밖은 빈틈없는 설경이다. 눈이 풍경을 장악하고, 산을 으스러뜨린다.
-p.13
그 이래 하늘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기다림이 풍경을 지배하고, 모든 것이 봄으로 미뤄진다.
자연은 잠시도 놓아주는 법이 없다. 산자락은 지평선을 가르고, 숲은 사방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눈은 우리의 눈을 가린다.
-p.18~19
깊숙한 은신처에서, 젊은 사내들은 최대한 바쁘게 뭔가에 몰두하고, 눈앞에서 숲이 다시 닫히는 광경을 오랫동안 바라봤어. 그들은 옷을 깁고, 카드 게임을 하고, 사냥 도구에 광을 냈어. 이따금 긴장이 흐를 때도 있었고, 경계 순번을 바꿀 때면 동료를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보기도 했지.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 살아남으려면 추위에, 배고픔에, 지루함에 함께 맞서야 했어. 그러면서 재빨리 깨달았지.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서로에게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일이라는 사실을.
-p.54
나는 매일 아내를 보러 갔어. 아내의 눈동자가 빠르게 흐릿해졌고, 그런 다음엔 모든 게 편안해 보였어.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되돌아왔어. 아내는 축복받은 그 외딴섬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더군. 아내는 내가 매일, 거기, 자기 옆에 있으리란 걸 알았어. 매일.
-p.58
알다시피 우린 사는 세계도, 세대도 달라. 한참 떨어진 세대지. 그런데 진짜 완고하고 무뚝뚝한 노인네는 너야, 내가 아니라. 뭐로 보나 그래. 우린 둘 다 폐허 속에 살고, 오직 말만이 나를 너처럼 불수 상태로 만들지 않는 거야. 그게 내 생존법이고, 작동 방식이고, 영리한 절망이지.
-p.61~62
넌 속으로 신중히 혼잣말을 할 거야. 폭풍을 원망하면서 겨울의 두께를 계산하겠지. 상처의 상태를, 가득한 고독을, 느리게 찾아오는 봄을, 우리한테 남은 식료품을 헤아릴 거야. (…) 조만간, 아니, 어쩌면 벌써, 난 두 사람분을 싸울 힘을 소진할 거야. 굼뜬 내 몸짓 뒤에, 혹은 조각조각 기운 희망 뒤에 더는 숨지 못할 거라고. 그래도 나는 그런 척할 거야. 네가 회복하리라 계속 믿을 거고, 낮이 길어지고 눈이 녹을 거라 계속 믿을 거야. 대장간의 불씨를, 도시의 진보를, 아내의 웃음을 되살리고 또 되살릴 거야. 너한테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어, 필요하다면 지어내서라도.
-p.63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마리아를, 그녀의 말투를, 내 침묵에 대답하는 미소를, 상처를 살펴보는 부드러운 손길을, 그녀를 볼 때면 불쑥 떠오르는 추억을 생각한다. 마리아는 오래전에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다. 시간이 상처를 치유한다지만, 해소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여기 누워,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을 지켜본다.
-p.75
끝끝내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누구나 언젠가는 말문이 열리지.
-p.93
창 너머는 바다 한복판 같았다. 어디서나, 바람이 일으킨 거대한 눈의 파도가 우리를 덮치기 직전 굳은 채로 있다.
-p.113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냄비 손잡이를 수선하면서, 전적으로 확신한다. 우리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큰 의미는 없다고. 우리가 뭘 하건, 어떻게 하건, 결국 다 하찮을 뿐이라고.
-p.153
나는 내 발밑에 묻힌 세계를 생각한다. 왜 이곳으로 돌아왔을까. 왜 과거가 기억의 비밀 속에서 혼자 꺼지게 놔두지 못했을까. 나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를, 상황을 바꾸기를 원했고, 둘 다 실패했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전에 아버지는 죽었다. 이제 내가 뭘 하고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나는 영원히, 아버지처럼, 정비공이다. 내 인생의 굵직한 선택은 오래전에 끝났고, 나는 그 선택들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p.241
어둠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굶주린 밤이 육식동물 같은 눈송이들을 떨어뜨린다.
-p.256
잘될 거야. 마티아스가 머리맡 탁자에 있던 책을 흔들면서 말한다. 정전, 네 자동차 사고, 이 마을, 이 모든 게 우회, 미완성의 이야기, 우발적인 만남일 뿐이야. 겨울밤과 여행객의.
-p.260
그가 떠나리라고 상기시킬 때마다 나는 도시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전기가 들어와 일상이 되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쩌면 늙고, 아프고, 가장 약한 사람들을 남기고 모두 떠났는지도 모른다. 여기처럼.
p.278
나는 의아해하며 속으로 묻는다. 마티아스 나이까지 산다는 건 대체 뭔지.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한다는 게 대체 뭔지. 그 여자를 다시 못 볼까 봐 두렵다는 게 대체 뭔지. 혼자 죽는다는 건 대체 뭔지. 저 호숫가 집 노부인처럼.
-p.29

1 미궁
2 다이달로스
3 이카로스
4 날개
5 다이달로스
6 이카로스
7 태양
감사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