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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1963800 / 148쪽 120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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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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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김경란, 김근아, 김은주, 박경란, 박선영, 박혜란,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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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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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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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사물과 언어의 매개자, 한트케 문학 세계의 뿌리 책에는 물론 생트빅투아르산을 찾은 두 번의 방문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책을 세잔의 그림에 관한 미술 에세이, 혹은 세잔의 주요 모티프였던 생트빅투아르산을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기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책의 형태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평론가와 연구자들 간의 여러 논의가 있었다. 그리하여 대체로 일치된 의견은, 자전적인 1인칭 화자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가 작가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고 에세이와 유사한 형식을 일부 갖추고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픽션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한트케 자신은 이 작품을 어느 정도는 매니페스트(표명, 선언)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한트케는 책에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글쓰기가 어떻게 외부와 내부, 인식된 현실과 보여진 현실, 사물과 언어, 개인과 주변,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독자, 아이디어의 서술과 실현 가능성, 그 두 가지 극 사이에서 연결과 전환의 역할을 하고 조화와 화합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예술가는 외부와 내부의 중재자이자, 사물과 언어의 매개자이며,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전환을 이루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책에는 예술에 대한 성취와 문학을 통한 실현이 가로 놓여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트케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과 문학의 아름다운 교차’를 일궈냈다고 볼 수 있다. 한트케는 책에서 화가의 ‘현실화’ 과정을 거꾸로 추적한다. 가장 먼저 세잔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림의 주변 환경을 거슬러 화가의 작업 장소인 아틀리에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그림의 대상인 산으로 간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정돈되어 서술되지는 않는다. 한트케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책 전체에서 사유와 사색의 향기가 진하게 흐른다. 치열한 작가정신이 곳곳에서 번뜩인다. 조심스럽게 독자를 생트빅투아르산으로 인도하다가도 멀어지게 하고, 다시금 뛰어들도록 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의 선명한 실체는 결국 자신 안에서 인식한 것이며 이렇게 인지한 사물의 형상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음을 역설한다. 페터 한트케 문학의 향취를 살린 14년 만에 전면 개정 출간 “나는 번역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가 예리한 언어로 커다란 아치를 그리며 느리게, 하지만 동시에 논증이나 설명을 생략하고 직접 화살처럼 사물 안으로 꽂히듯 핵심으로 진입하는 특유의 서술 방식, 그것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축해나가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했다.”_옮긴이의 말에서 2006년에 출간되었다가(당시 출간명 『세잔의 산을 찾아서』) 14년 만에 전면 개정되어 출간하게 된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의 번역은 소설가 배수아가 맡았다. 그는 지금까지 유수의 독일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서 원문의 의미를 수려하고 적확한 한국어로 독자에게 전달해왔다. 한트케의 사색적인 문장과 합치를 이루는 배수아 작가의 번역을 살펴보는 것 역시 이 책을 감상하는 또하나의 즐거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근에 나는 운터스베르크1의 눈 덮인 정상에 서 있었다. 내 머리 바로 위, 거의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공중에 까마귀 한 마리가 바람 속을 활공하고 있었다. 까마귀의 몸통으로 당겨진 발톱의 노란색은, 새의 이상적인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햇살을 받아 빛으로 일렁이는 날개는 금색이 섞인 갈색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푸른색. 그 세 가지는 드넓고 편평한 공중에 널찍한 색채의 띠를 만들며 흘러갔고, 그래서 순간 나는 허공에 휘날리는 세 가지 색의 깃발을 본 듯했다. 그것은 주장이 없는 깃발, 오직 색채만의 사물이었다._(14쪽)
나는 화가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감사조차 저버리고 있었다. 부속물이라고 오해하기는 했지만 간혹 가다 최소한 시력검사판 역할이라도 해주었고, 되풀이되는 생명과 환상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 적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색상과 모양 자체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항상 그림으로 그려진 어떤 특별한 대상 자체였다. 대상이 없는 색채와 형태는 너무 무의미했고, 익숙한 일상의 자리에 있는 대상은 너무 흔했다. 여기서 ‘특별한 대상’은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원래는 평범한 물체인데, 이를 화가가 특별한 모습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내가 이것을 비로소 ‘마술적’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_(19쪽)
나는 항상 무지를 궁핍으로 느낀다. 거기에서부터 특별한 목적이 없는 지적 충동이 일었다. 그것은 호응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관념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뭔가 이해할 만한 계기가 하나 주어지면, 그것으로부터 ‘정신의 단초’가 싹튼다. 그렇지 않다면 늘 막연한 갈망 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던 탐구가 그런 계기를 만남으로써 진지한 결과를 낼 수도 있다._(33쪽)
왜 나는 하필이면 쓴다는 권리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불특정한 사랑의 순간에 왔다. 그것이 없으면 당연히 글쓰기도 없게 되는, 그런 순간. 샛길 안쪽 깊숙한 곳에 서 있던 뽕나무 한 그루가(실제로는 먼지투성이 흰 길에 떨어진 붉은 과즙 얼룩이) 내가 최초로 이성적인 기쁨을 생각할 수 있었던 1971년 여름 유고슬라비아의 붉은 뽕나무즙과 신선한 섬광 속에서 합치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시선이? 내 눈동자가? 어두워졌으며, 동시에 모든 형상들이 둥글고 깨끗하게 보였다. 또한 침묵이 있었다. 침묵과 함께 평범한 자아가 순수한 무명으로 변했고, 나는 변화의 충격 속에서, 단순한 무형 이상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다._(68~69쪽)
최종적으로 나는 결국 그것이 ‘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나는 지리학자인 조르거를 이미 나 자신의 내면으로 들여다놓았고, 그러므로 그는 어차피 수많은 시선으로 동행하며 계속 작동하는 중이었다). 나는 ‘발명’하지 말고, 가르침에 따라서, ‘현실화’(개별 경우에는 결국 발명도 그 안에 포함되는)해야만 했다. 또한 내 개인적인 확신은, 이야기 내면의 빛으로서 괴테의 ‘선한 자아’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것은 독자를 밝히고 고양시키며 책을 읽는 동안 우선적으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그렇지 못한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_(97쪽)
커다란 아치
색채의 언덕
철학자의 고원
늑대의 점프
뽕나무 길
그림들의 그림
차가운 들판
팽이의 언덕
커다란 숲
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