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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 무늬 이불 속

시리즈 : 현대시 기획선 [34]

전인식 저 | 한국문연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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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1042697 / 141쪽 131 x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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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경주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7년 대구일보 신춘문예와 1998년 불교문예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검은 해를 보았네』와 전자시집 『고약한 추억의 빛』이 있다. 통일문학상, 선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농협중앙회 경주시지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경북연합일보에 인문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머리말

 

시인의 말


만끽하자
이 즐거운 고통

 

울며 웃을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몸속 숨어 사는 것들
홀연, 일어나 춤을 추는 그날까지

 

이제 시작이다.


2020년
전인식

 

책 속에서

어머니 무덤을 파다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나의 삽질은 가볍다

염려스러운 듯 서 있는 동생들의 눈빛
아, 안타까운 우리 가족들의 보물상자

얼어붙은 땅속 깊이 내려갈수록
아늑해져 오는 아랫목 훈기
된장국이라도 끓여 놓았을까
잡채도 만들어 놓았을까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나의 삽질은 가볍다

룰루랄라
룰루랄라
나의 삽질은 즐겁다
나의 괭이질은 즐겁다

만나면
왜 그리 급히도 가셨냐고
묻고 싶던 말들은 하지 말아야지
젖꼭지부터 찾아야지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나의 삽질은 가볍다

입 대었던 모유의 기억
어머니는 똑똑히 기억하고 계실 거야
부드럽게 이마 쓰다듬으며
이쁘게 젖꼭지를 물려주실 거야   

그대로 잠이 들고 말 거야 
눈보라 치는 섣달그믐날 
여기는 모란 꽃무늬 이불 속

방안의 파도



세상 저 멀리에 있을 파도가 언젠가부터
둘 사는 작은방에 출렁출렁 거리기 시작했다
자고 나면 사라질 것 같던 파도는
잠잠했다가도 일터에서 돌아오는 밤마다
더 큰 물살로 출렁거렸다

발등을 적시고 하반신을 잠그며
급기야 목까지 차올랐을 때
반신반의했던 서로를 따져대기 시작했다
출렁대는 파도 때문에 몸이 출렁거리고
마음까지 출렁거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며
파도를 데리고 들어온 건 바로 당신이야 당신이라고
서로 따져대며 싸울 때마다
부서진 리모컨은 금방 새것이 되기도 했다

철썩 찰싹 철썩 찰싹
서로서로 뺨을 때려가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파도는
둘 사이를 출렁출렁 흔들어대며
싸우는 법과 용서하는 법을 동시에 가르치며
파도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그 길지 않는 며칠 사이가
잠시 행복할 수 있는 시간임을 알고부터는
은근히 우리들이 먼저 파도를 기다릴 때도 있다
선인장, 마흔 근처



잠깐 졸았을 뿐인데 눈 떠보니 사막 한가운데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 길인지 희미하다
분명한 것은 머리맡에 놓인 서너 개의 보따리들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모래언덕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

무거운 짐 싣고 갈 낙타는 꿈속에 보았던 동물
밤하늘 별빛 해독할 점성술을 익혔으면 좋았을 텐데
잠시 쉬었다 갈 오아시스가 어느 쪽에 있는지
기러기 날아가는 곳이 남쪽인지 북쪽인지 알 수가 없다
바람이 등 떠미는 쪽으로 가면 행운이라도 따를까

어디로 가야 할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엄마와 아버지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왜 미리 사막 건너가는 법을 물어보지 않았는지
여태 정신 팔고 다녔던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호수 하나 만들고도 남았을
흘렸던 눈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간절하게 그리운 눈물방울 하나하나
몸 안에 숨길 수 있는 선인장을 닮아야 할까
꽃도 버리고 잎도 버리고
온몸 가득 가시를 달아야 하는 
사막, 마흔 근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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