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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 잠겨

시리즈 : 쏜살 문고 [64]

히구치 이치요 저 | 강정원 역 | 민음사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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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29736 / 200쪽 113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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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돈 없는 사람도, 돈 많은 사람도, 돈에 놀아나는 돈의 세상 한가운데에서 하여간에 돈의 세상에서는 고상하다느니 정교하다느니 해 봤자 결국은 거래되는 시세 위에 놓이는 것이다. 도매상이 좋은 평판의 물건을 가장 고마워한다는 건 무릇 어디서 나오는 말일까. 역시나 나라를 팔아먹는 간사한 장사치들에게 휘둘려 값을 깎고 또 깎는 것일 터다. 그러잖아도 미약한 기술은 목이 꺾이고 있는데 아직도 무명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지에 맞지 않게 도매상에서 하청받은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아끼고 비용을 줄이니 열 개가 하나 값인 조잡한 그림에 함부로 붓을 놀리는 것이다. ㅡ「파묻힌 나무」에서 실력은 있지만 뒷배 보아줄 사람이 없어, 세상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파묻힌 나무」 속 라이조의 어려움은, 꼭 지금 이야기 같다. '돈의 세상'에서 '고상'과 '정교'를 추구하는 미련하고도 고매한 이상을 좇는 것은 일견 이치요 작가의식의 반영일 터다. 다른 작품 「섣달그믐」은 이치요의 문학에서 보기 드문 유쾌한 희극으로 돈에 관련한 소동을 다룬다. 부모 없이 가난한 삼촌 집에서 자라다가 살림을 돕기 위해 부잣집의 하녀가 된 오미네의 쌀통 하나 없는 처지는 비극으로서의 충분조건이지만, 막다른 처지에 몰려 주인의 돈에 손을 댄 오미네에게 수호신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다감하다. 주인집의 철부지 아들이 돈을 홀랑 들고 가출하면서, 오미네의 위기는 극적인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한 가락 거문고 소리가 구원하는 한 생의 무게 그런데 마음 깊숙한 곳에 잦아든 다정함이 삼경 월하의 거문고 소리와 어울리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달빛이 점점 맑아지는 밤, 울타리에 핀 국화의 향기가 논바닥을 메우는 가운데 밤바람이 세차게 불며 마음의 구름을 날리자 다시 타는 거문고의 소리는 과연 백년의 벗이 될까, 백년의 번민을 남길까. 긴고는 이로부터 백화난만한 세상으로 나섰다. ㅡ「거문고 소리」에서 녹록지 않은 세태 속에서 이름난 도적이 되어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는 「거문고 소리」의 긴고는 어느 날 거문고 한 자락을 듣는다. 이날의 거문고 소리는 \"덧없는 세상에 사람 한 명을 낳\"는 온정을 베푼다. 구시대적 활기와 메이지 시대의 어둠, 아이다운 익살과 유년 끝의 슬픔이 교차하는 이치요의 대표작 「키 재기」의 주인공 미도리는 쾌활한 예비 유녀다. 미도리가 내심 짝사랑하는 신뇨는 주지의 아들로, 절을 이어받아 운영해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를 짊어지고, 승려 수행에 나서기 전에 수선화 한 송이를 미도리의 집 격자문에 몰래 꽂아 두고 떠난다. 히구치 이치요가 1년에 걸쳐 잡지에 연재한 이 작품은 모리 오가이, 고다 로한 등 당대 문학가들에게 격찬받으며, 이치요를 일약 문단의 총아로 자리매김시켰다. 어릴 적부터 서로 키를 재 보던 허물없는 사이에서 어느덧 사랑의 미묘한 감정에 번민하는 성인의 문턱에 선 존재들을 예리하고 아름다운 문어체로 포착한 이 작품은 연약한 존재들이 가난과 세상의 풍모에 스러지기 전에 빛을 발하는 찰나의 화양연화를 오롯이 담아낸 히구치 이치요 문학의 정수다.

저자 소개

본명은 히구치 나쓰. 일본 근대의 서막이 열린 1876년 도쿄의 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적인 재능을 보여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고전을 가르치고 습작하게 했던 하기노야라는 가숙에 들어갔다. 나쓰의 아버지는 본래 농민이었지만 에도 시대의 지배층이었던 무사 계급이 되고자 했고, 마침내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얼마 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막부가 붕괴하자 그 역시 무사에서 부르주아 시민으로 거듭나야만 했다. 이에 운반청부업조합을 세워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로 끝났고, 결국 번민으로 죽어 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16세의 나이에 호주가 된 그녀는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정혼자와도 파혼을 당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써서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아사히신문에 소설을 쓰고 있던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이 무렵부터 나쓰는 달마대사가 타고 강을 건넜던 일엽편주에 빗대어 ‘이치요’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20세 때 데뷔작인 「밤 벚꽃」에 이어 「매목」을 발표했지만 큰 수입은 못 되었고, 전당포를 드나들었다. 돈이 바닥나자 그녀는 어머니와 변두리 상점가에 잡화점을 열었다. 그러나 잡화 가게도 얼마 뒤 접고는 혼고 마루야마 후쿠야마 정(丸山福山町)으로 이사했는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 

23세 때 『문학계』에 「키 재기」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문예구락부』에 「탁류」, 「십삼야」 등도 연이어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갈림길」, 「나 때문에」 등을 발표했으며, 「키 재기」 또한 완성함으로써 문단의 총아로 부상했다. 당시 특권 계급의 여류 소설가들은 상류 사교계 등의 협소한 세계를 소재로 취하거나 대단원으로서의 결혼을 플롯으로 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치요의 소설은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고뇌를 언어화했다. 대표작인 「키 재기」에서는 요시와라의 구시대적 활기와 메이지적인 어둠, 사치와 빈곤, 해학과 슬픔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의 성장을 그렸다. 

그러나 젊음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이치요는 1896년 과로로 인한 폐결핵 악화로 24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적인 삶과 대조적으로 이치요는 사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부터 당대 최고의 여성 소설가로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때부터 일본 근대 문학의 정전 목록에 올라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역자 소개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도토리』(데라다 도라히코 수필선), 『밑손질&조리 방법』, 『열등감 버리기 기술』이 있다.

목차

파묻힌 나무
거문고 소리
꽃 속에 잠겨
섣달그믐
십삼야
키 재기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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