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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어디에서 게으름을 피우는가

김개미 저 | 걷는사람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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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128777 / 154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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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자랐다. 2005년 『시와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시로 등단했고, 2010년 『창비어린이』에 작품을 발표하며 동시로 등단하였다. 2012년 『어이없는 놈』으로 제1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앵무새 재우기』, 그림책 『사자책』『나의 숲』, 시그림집 『나와 친구들과 우리들의 비밀 이야기』를 냈다.

머리말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네가 돌멩이를 내밀며
이걸 삼켜, 그러면
삼킬 생각이었어.
그러나 이젠 충분히 울었어.
골목을 빠져나가는 고양이의 야옹 소리 들리고
나는 리셋 될 거야.
2020년 7월
김개미

책 속에서


너도 알다시피 집에 뭐 있니
난 이제 누구의 식구도 아니야
난 식구들에게 안 한 이야기를 까마귀에게 한다고
조금 있으면 까마귀들이 몰려올 거야
어제보다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야겠지
그러니 집에는 너 혼자 가
누가 나를 궁금해하거든 죽었다고 해

—「참나무 아래 누워」 부분


뉴스에서 ‘내성적’ ‘은둔형 외톨이’ 이런 말이 들리면
내 이야긴 줄 알고 잠시 듣는다

전에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했는데,
이제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하지 못한다

나는 죽은 나무에 사는 벌레 같고,
이웃은 달과 별뿐인 것 같고,
손님은 바람과 계절뿐인 것 같다

혼자 오래 사는 사람은 기다리는 걸 잘한다
비든 사람이든 기다리면 올 것 같다
죽은 사람도 올 것 같고,
차가운 기체에서 태어난 유령도 올 것 같다

견디기 힘든 건
정적이면서 정적인 고독이 아니라,
정적이면서 동적인 불안이다
치유된 줄 알았던 불안은
옷장 속에 책 속에 피부 속에 잠복해 있다가
게릴라처럼 기습해 온다

혼자 오래 있으면
신의 목소리도 악마의 목소리도 듣는다
신은 내게 원하지 않는 게 많고,
악마는 내게 원하는 게 많다

—「혼자 오래 사는 사람은」 부분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얼마나 더 배를 부풀리며 심호흡을 해야
쉬지 않고 먹이를 갈구하는 욕망의 그림자가
나를 포기할까
얼마나 더 걷고 뛰고 기도해야
두통 없는 밤이 찾아올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네가 빛을 끄고 내 뇌리에서 사라질까
악마는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는가
왜 나를 보지 못하는가, 어서 와서
아직 남은 내 젊음을 가져가지 않고
늙고 싶다 빨리 늙고 싶다
극도로 무력해지고 싶다

—「극심한 오늘」 부분


나는 이 시간만 되면 부족한 것 같다
뼈도 하나 없는 것 같다
영원히 잘될 것 같지 않다

나는 망가진 채 태어난 것 같고
어려선 누가 고쳐주지 않아 망가진 걸 몰랐던 것 같고
지금은 망가진 걸 인정하기 싫어 고치기 싫다

(중략)

이제 나는 아무 일도 겪기 싫다 행복하고 싶지도 않다
괜찮고만 싶다 나중 말고 지금, 지금, 지금 좀 괜찮고 싶다

나는 거인의 박동을 가진 난쟁이다
아니 난쟁이가 가지고 노는 쥐다 쥐가 빠져나간 쥐다
눈을 다쳐 덤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어디에 발을 놓아도 편하지 않다

—「노을에 대한 내성」 부분


담 너머 아카시아 꽃이 흔들릴 때면
병들고 싶다 흔들리고 싶다

깊은 밤 구부러진 달빛이 세상을 뒤덮으면
꺾이고 싶다 취하고 싶다
왜 나는 늙지 못할까
왜 나는 달라지지 못할까
이제 그만 말랑한 너에게 닿고 싶다

노란 전등 아래 너를 데려다 앉히고
네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오늘은 정말이지 네 손톱 밑에 들어가 눕고 싶다

무료하지 않을 만큼 아프고 싶다 아프게 하고 싶다
더 이상 꼿꼿하기 싫다 꿋꿋하기 싫다

—「가시 일기」 부분

목차

1부 오래 터지는 폭탄 뱀이 되려 했어 좀비가 폭탄과 나무 꿈을 꾸는 게 좋아 춤추는 자는 노래하지 않는다 단독자 K의 근황 내가 울면 별들이 아름다워져 참나무 아래 누워 뼈가 없는 유령처럼, 나는 초경 엘크를 데려와 혼자 오래 사는 사람은 한성이 인형을 위한 시 2부 따뜻했던 입술과 따끔했던 심장 인형에게서 온 편지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내 심장은 딱딱하게 굳은 고체였는데, 안녕도 안녕 당신, 오래 아파요 네가 나를 탄생시켰으니 어떤 동거 극심한 오늘 오늘의 약 그 언덕은 지금도 겨울일 것이다 붕괴의 기억 사천 나는 암사마귀처럼 나는 이상합니다 장미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어지러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중얼거린다 3부 다른 사람의 폭풍 빙벽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찾을 거라고 믿는 남자의 전화 최 노인의 산책 거절 죽어서는 우리와 오래도록 놀았다 쌍둥이 언니 약 냄새가 나 네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나를 만지면 아무것도 보지 마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 아무것도 기록하지 마 한 번의 어제 미치광이풀 조난 또 여름인 거죠 안산 오빠 막사 노을에 대한 내성 4부 피부로 말하는 법 주머니에 손을 넣고 먼지를 뭉치는 동안 인형의 일 1 인형의 일 2 밤 같은 낮 낮 같은 밤 혈관에 별이 떠 있다 악몽 난쟁이 창고 가시 일기 눈을 뜨자 까마귀가 보인다 노끈 나는 아직도 시인의 창세 서예가 신은 모른다 만취 해설 조그만 사랑의 시 -안지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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