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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폭발 이수익 시집

시리즈 : 황금알 시인선 [118]

이수익 저 | 황금알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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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205652 / 120쪽 12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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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수익 시인의 산문을 통해서 시집 『조용한 폭발』을 얘기할 수 있다. 시인은 사물 속에 하염없이 던져져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기분 나쁠 것도 없고, 또는 크게 투정 부릴 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게 희망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시인의 일과는 대체로 정해 있다. 그는 다소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또 다른 하루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가끔 심심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는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거울은 팔십을 바로 앞둔 시인의 모습을 정직하게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시인의 머리카락부터 이마, 얼굴, 가슴, 배, 손과 발 등이 하얗게 드러난다. 시인은 말한다.
“그래, 내 나이만큼 늙었지. 늙는다는 것은 순응하는 것이라니까, 틀림없이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내가 있겠지. 어떤 사람들은 늙음을 거역하기라도 하듯 몸매에 신경을 쓰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손등에 드러난 주름들을 껴안고서라도 열심히 살아갈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시인은 쓰고 있는 시에 대해서 간략하게 생각해본다. 그는 지금까지 절제된 정서와 명징한 이미지, 따스한 관념 등에 의해 작품을 써 왔는데 후회하질 않는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우리 인간에 대한 고통과 불행을 시로써 표현해보고자 하는 데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것은 없는 사람, 소외된 친구, 상처받은 이웃들이 그 대상이었다.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4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남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우울한 샹송』, 『야간열차』, 『슬픔의 핵』, 『단순한 기쁨』, 『그리고 너를 위하여』, 『아득한 봄』, 『푸른 추억의 빵』,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지훈상, 공초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함.

머리말

*시인의 말

“대장간에서는 모든 것이 거칠다.
망치, 집게, 풀무 등이 등 이 모든 것들이
심지어 쉬고 있는 순간에도
강렬한 힘을 내뿜는다.”

바슐라르가 한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내면의 충격을 어찌 할 수 없는
시인은 불행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2020년 봄
이수익

책 속에서

1부

포커페이스


고양이가
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지는
4천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고양이는 그것을
제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일 같기도 하고
또는 알면서도 그저 모르는 척
할 수도 있는 것

그렇게 고양이는 전혀 포커페이스의
은밀한 양동 작전에 휘말린 채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을
찬찬히 바라다보고 있는, 그 민첩한 교활성
때문에

나는
고양이가 좋다
고양이의 우아한 발톱과 유혹적인, 날 선 눈빛
캄캄하게 내부를 숨겨둔 채 하얗게 피어오르는 교만함과
질투, 앙칼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외교적 처세법을 터득한
고양이에게
나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고 싶다

모두들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만
믿어대는 우리 바보들에게
고양이, 너의 화려하고도 세련된 기품을
전해주고 싶다


생존


악에 받친 듯이
독을 품고 커다랗게 입을 벌린 족속, 아귀
아귀는

죽여 달라는 것이다
아니, 살고 봐야겠다는 것이다

낚싯대에 걸려든
이 치욕스러운 순간이
허망하게 단 한 번 칼질에 쓰러져
버리기에는

너무,
너무나도 억울해!

강한 이빨로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는
경골어류
한 마리가
하얗게 악을 쓰면서 소리치고 있다, 병원

중환자실
그 어느 자리에서인가
40대의 젊은 가장 한 사람이,

잠시 지나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들이 울려 퍼졌다
귀신이 앞을 가로 막고 선 듯
날카로운 속성의 끔찍한 징후들이 몇 초간
이어졌다

액자 속의 여자가 하얗게
웃었다

나는 그때야 고개를 내밀고서
난간 저 아래로 굽이치는 사람들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검은 상복을 입은 무리들이 춤추며 노래하다가
서로서로 어울리는 모습들이
대낮 같았다

처음으로 꽃들이
물들면서
환히 피어났다
머무르지 않고서, 잠시 지나가는


나를 낳으실 제


사기그릇처럼 깨어진
삶에는
하나하나 맞출 수 없는
놀라운 오류가
끼어 있다
침대에는 방향을 기록하는 장치가 그대로 있어
엄마가 나를 낳은 날은 언제이며, 내가 방바닥에서 일어설 때는
언제이고, 내가 탁상 위의 꽃병을 깨트린 날은 언제인지 등을
알뜰하게 챙겨주는 수호신 같은, 그런 조력자가 필요한 것이겠지만
이미 나는 부서져 내린
사기그릇
맞출 수 없이 깨어진 틈 속에서, 젊은 날
아버지 어머니의 거룩한 침묵의 밤이
고여 있다


돌멩이 하나


슬픔에 깊숙이
얼굴을
기댄

죽음과는 밀교처럼 성스럽게
하나만을
이룬

최후의 얼굴이
바로
이것이라는 듯,
살과 뼈가 고스란히 맞붙어있는

절대의
벽!
절대의
고독!

그리고
절대의
침묵!

저 불붙은
돌멩이
하나


벼랑 끝에 잠들다


이젠 떠나가리, 믿고 약속했던 허망한 욕구여, 슬픔이여

나는 잠들어
저 높은 하늘 끝 벼랑 위에
편안한 휴식의 자리처럼 황홀하게도 부풀어 올라

안온하게 꿈꾼다
저녁별처럼 찬란하게 빛났던 저 어둠 한가운데에서
끝내 나는
백비白碑를 세우리

여름 지나면 가을, 가을 지나면 겨울,
그리고 봄,
나는 죽음에 길들지 않은 견고하고 투명한 입자가 되어
하늘에 섞일 것이다, 따로 또한
같이

너무나도 많은 빚 과분하게 져서
돌로 머리를 깨뜨려도 피처럼 살아 있을 평생의 죄
머얼리 구름에다 띄우고
나의 이력履歷 분분히 흩어져 갈 때

잘 가라, 믿고 약속했던 허망한 욕구여, 슬픔이여,
그리고 새로움이여

목차

1부

포커페이스·12
생존·14
잠시 지나가는·16
나를 낳으실 제·17
돌멩이 하나·18
벼랑 끝에 잠들다·20
성게·22
괴물·24
누드화·26
죽어도 좋아·28
움직이는 사막·29
불가사리·32
생명·34
골목길·35

2부

자두, 굴러가는 생각·38
하얀 얼굴·40
가벼워!·41
각본·42
고래·44
오라, 겨울이여·46
숙취·48
터전·50
차디찬 손·52
담배는 달다·54
희수喜壽·56
동성애자 1·57
동성애자 2·58
자존심·60

3부

그런 새벽에·64
사라졌다·66
빚·68
클로즈업·70
귀머거리·72
아마도 그럴 거야·74
어머니·77
나의 자유·78
잡초·80
모서리가 불안해·82
몇 마디·84
떠나야 할 당신·85
숲은 유령처럼·86
풍진세상·88

4부

여백·90
화음 한 줄기·92
영화 팬·93
함께 놀았다·94
행복·96
빗줄기 속을 헤치면서·98
셔틀콕·101
굴욕·102
아마존의 슬픔·104
슬픔이 얼굴을 덮고서·106
비둘기 죽음·108
두 손에 대하여·110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112
오, 일곱 개의 포도 잎과·114

시인의 산문
서정시 속의 리얼리즘·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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